행정적으로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전혀 없는 근대적 호적제를 도입 했기 때문에 누구나 성을 가져야 했기 때문. 수많은 개똥이, 돌쇠 등이 관공서로 달려가
자기 성을 등록만 하면 됐다. 그렇다고 아무 성이나 쓰진 않고 좀 있어 보이는
양반의 성을 갖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주인댁 성을 그대로 올려버린 경우가 비일비재 했다.
어떤 동네는 동네 전체가 김해 김씨 양반의 소작인 들이라 일제히 김해 김씨로 신고하기도 했다.
소작인들 뿐 아니라 그 댁 머슴들도 포함해서 였다 . 그들은 2-3대를 거치면서
아들, 손자에게 \'우리는 대대로 양반 가문이었다\'라고 교육 시킨다.
이렇게 조선인은 모두 \'양반의 자손\'이 되어 버렸다.
물론 이때 까지도 백정 등의 기존 천민들의 차별은 잔재로 남아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직업으로서일뿐, 행정적으로 성을 갖게 된 이상
직업을 바꾸고 몇대만 지나면 전혀 식별이 되지 않았으므로
결국 이덕에 현대 한국은 쌍놈의 자손 출신이 하나도 없는,
정말 좋은 품종의 나라가 되어 버렸다.
사실상 이것이 일제에 의한 1차 창씨 개명 이다.
양반, 심지어 왕족의 성씨까지 거저 얻게 됐으니
당시 대한제국 국민들 입장에서 일본제국은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됐다.
그리고 얼마 안가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에게 합병 당한다.
단순 식민지도 아니고 병합국인 상태에서 수십년이 지나고 나니
조선인에 대한 소소한 차별에 관하여 불만이 불거져 나온다.
일본 입장에서는 전쟁의 사이즈도 커지고 하니 슬슬 조선 청년들도
지원제가 아닌 징병으로 군에 입대시켜야 할 준비를 해야 했는데
이러저러한 차별 논란이 일어나니 진행이 영 매끄럽지 못했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조선인들도 일본식 성씨를 쓰게 하는 것이었다.
억양 차이는 어쩔 수 없겠지만, 성명이 같은 형식이라면 일단 동질감이 한층
깊어질 것이 아닌가?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창씨 개명이다.
말하자면 일제에 의한 2차 창씨개명 이었다.
그러나 수십년전 양반 성을 준다고 할때와는 달리 반응이 엄청나게 썰렁했다.
이때 창씨개명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유형은 대부분 다음과 같았다.
-진짜 양반 출신의 경우- 40년전 일본의 강요로 법적으로는 신분제가 없어졌지만, 그래도 성씨 하나로 옛 양반의 후손 이었다는걸 자랑스러워 했는데 이제는 그 양반의 흔적조차 없애려고 한다.
-양반 출신이 아닌 경우-40년전 일본 덕분에 얼마나 운좋게 얻은 양반 성씨인데 이제 와서 버리게 한다.
어이 없을 정도로 허세스러운 이유들이 주류였다.
나중에 또 차별 대우 한다고 딴소리 하지말고 빨리 바꾸라는 총독부 강요에 의해
어쨌든 최종적으로 80% 가량의 조선인들이 창씨개명을 완료 한다.
웃기는것은 창씨를 해도 꼭 그놈의 양반 흔적을 남기려 했음이다.
위에 기술한 김해 김씨의 경우 실제로 김해 김씨 가문 출신이건
40년전 얻어 탄 소작농, 머슴 출신이건 간에 대부분이 金海(가네우미)로 개명,
전주 이씨의 경우 왕족이라는 걸 티낸답시고 宮本(미야모토), 國本(구니모토)
등으로 개명한다. 여담 이지만 남(南)씨, 류(柳)씨, 임(林)씨, 계(桂)씨, 오(吳)씨는
창씨를 하지 않아도 됐다. 미나미(南)나 야나기(柳), 하야시(林), 카츠라(桂), 쿠레(吳)가
일본에 존재하는 외자 성이었기 때문에 창씨 하지 않아도 티가 전혀 나지 않았기 때문.
미나미 지로(南次郎)가 조선 총독에 부임되자 종친께서 보위에 오르셨다며 인사드리러
남원에서 일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온 한 남씨 성의 인물도 있었다.
더불어 두글자 성 중에 남궁(南宮)씨의 경우 일본 성처럼 보여서 역시 그냥 넘어가기도 했다.
애초에 기존 성씨 자체도 신라때를 기점으로 중국씩으로 바꾼 것으로,
엄밀히 따지자면 신라~고려초가 원조 창씨개명 이었음에도
그 때 얻은 중국식 성이 얼마나 좋은건데 일본식 성으로 바꾸라고 하냐면서
자살하거나 한 사람도 있었다.
식민사학자들이나 친일파들이 주절주절 써 놓은 글 읽고 진실이양 호도하지마라. 다시 잘 읽어봐. 원문을. 누가 썼는지 보고. 그 작자가 어디 출신인지 확인하고 어디 사상인지도 같이 점검해봐야지. 남의 글은 남의 글일 뿐이다.
ㄴ본문 내용에 거짓은 없지 않나?
디 거짓말이다. 성이 왜 없었어? 일본인들이 성을 가질수 있게 된게 메이지 유신 이후다. 일본인들 대부분은 성이 없었다. 한국인과 일본인을 같은 레벨에서 보다니. 이런 망칙한 상상을 할 수 있나?
ㄴ조선도 천민들 성 없었자녀
http://www.gem.hi-ho.ne.jp/sogenji/rakugaki/myouji.htm
없었다고?
애초에 부부별성제에서 부부동성제로 바꾸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실생활에 맞지 않다'는 거였단 거에서 공식적으론 금지였어도 알음알음 써오던 게 있단 걸 알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