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햏 생각나는게 있어 또 한 번 이렇게 적어보오. 간혹 보이는 글 중에 다양한 소리를 한글에 반영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있소. 맞는 말이오. 그러면 아주 과학적이고 훌륭한 글자라 할 수 있겠소. 근데 사실 언어라는 걸 잘 살펴보면, 과학이라기 보다 미신에 가까운 부분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매우 추상적인 것이라우. 먼저 실제 음성은 음운이라는 형태로 정리되오. 모든 음성이 다 변별적인 것도 아니려니와, 대상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간의 코드를 통일할 필요가 있는데 이 과정에 일차적으로 개입하는 단위가 음운이라우. 그리고 음운은 다시 한 번 변하게 되는데 그것이 다른 음운과 연결되어 하나의 완결된 의미를 가질 때요. 그것을 우리는 형태라 부르오.(아직 문자의 단계는 요원하오) 언어가 가지는 자의성을 고려하기 이전에 이미 음성은 2 단계의 추상화 과정을 거치는 셈이오. 형태가 모여 하나의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 시간과 인과율의 지배를 받게 되고, 각각의 형태는 서로를 보완하기도 하고, 제한하기도 한다우. 그런 생각들이 서로 교환될 때 우리는 대화라 부르는데 이 과정은 사실상 또 하나의 우주를 이루오. 혹자는 이를 '전략'이라 부르오. 대화의 전략, 혹은 격률.(*1) (여전히 문자란 존재와는 상관이 없소) 그리고 문자가 있소. 다들 아시겠지만 문자란 의미를 담는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오. 여기에 미신이 있소. 그림이든, 상형이든, 설형이든, 쐐기든, 음절이든, 표음이든, 표의든 다 본질적으로 앞서 말한 것들과 상관없소. 우리의 말과 문자는 서로 보완하는 관계가 아니라, 그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요(요 부분 약간 비약이오. 한글은 인공이니 다르다 볼 수도 있소) 문자로 서로 소통하는 행위 자체는 대화의 격률과 사뭇 정도가 아니라 아주 다르오. 시간과 공간, 즉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오. 일단 이 정도로 개념을 잡고, 예를 들어 보겠소. 한 햏자께서 한글이 다양한 음성을 반영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였소.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도 같은 선상에서 발생하오. 어느 개설서에나 있는 쉬운 예로 '고기'란 단어를 봅시다. '고'의 'ㄱ'과 '기'의 'ㄱ'은 사실 다른 음성이오. 믿지 못하시는 분들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소. 하여간 다르오. 발음해보시오. '각'에서 첫소리 'ㄱ'과 끝소리 'ㄱ' 역시 다른 발음이오. 문자로 반영해야 하겠소? '아쉽다'에서 '쉬' 발음의 경우 한 문장 중에서 빠르게 발음할 경우 'ㅟ'의 발음은 드러나지 않고 영어 'sh'(물론 화자에 따라 다를 수 있소)발음이 되오. 그럴 경우 '쉬'가 아닌 다른 문자를 만들어야 하겠소? 이상에서와 같이 하나의 문장 단위까지 오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라면, 인터넷에서 채팅할 때는 무당이라도 불러야 할 태세요(그분이 오셨다우) 간단히 마무리 하자면, 생각과는 달리, 언어를 규범화하고 그것을 실제 시공간으로 반영하는 문제는 위와 같은 상황들을 다 고려해야 하오.(물론 저런 논의들은 언어학에서도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우. 전에 소햏글에서 밝혔던 수많은 언어학적 대상들에다 역사, 철학, 경제, 사회, 문화 기타등등의 다양한 담론들까지 담아내야 한다우. 기호학은 차치하고라도 말이오.) 그러니 어쩌겠소. 언어학자들은 무당일 수밖에. 그래서인지 몰라도 언어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자질은 바로 '직관'이라오.(*2) 그런 학자들의 고충도 이해해 주길 바라오. 요번에도 생각나는 데로 적어 두서가 없구려. 잘못된 부분 있으면 지적 바라오. 암튼 결론은, 현행 표기법은 무척 훌륭하다고 할 수 있소. (국립국어연구원 사람들이 보기에... 소햏은 아니오) *1 보통 화용론이라 부르오. *2 실제로 비문이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들이 보기에 어색하다 자연스럽다 이 정도라우. 역사언어학이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우. 뭔지 모르겠으니, 예전엔 어땠나 살펴보는 거 아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