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짤은 에도시대에 유행하던 서민유머소설,
草双紙(くさぞうし) 장르의
浮世風呂(うきよぶろ)라는 작품인데,
쿠사조시 중에도 이 책은
黄表紙(きびょうし)라 하는 장르의 책임 ㅇ
보면 알겠지만 한자든 뭐든 초서체인데다
헨타이가나도 존나게 나온다
式亭三馬(しきていさんば)가 이 장르의 대가
놀랍게도 남겨진 쿠사조시 수만 해도
한국문명이 역사시대에 남긴
모든 문학작품의 분량보다 많음
목판인쇄가 민간에서도 활발했고,
민간도 상공업이 활발하여 부유했으며,
글이 지배층만의 도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게 가능했제 ㅇㅇ
문학의 발달은 문명의 단계에도 당연 영향
草双紙(くさぞうし) 장르의
浮世風呂(うきよぶろ)라는 작품인데,
쿠사조시 중에도 이 책은
黄表紙(きびょうし)라 하는 장르의 책임 ㅇ
보면 알겠지만 한자든 뭐든 초서체인데다
헨타이가나도 존나게 나온다
式亭三馬(しきていさんば)가 이 장르의 대가
놀랍게도 남겨진 쿠사조시 수만 해도
한국문명이 역사시대에 남긴
모든 문학작품의 분량보다 많음
목판인쇄가 민간에서도 활발했고,
민간도 상공업이 활발하여 부유했으며,
글이 지배층만의 도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게 가능했제 ㅇㅇ
문학의 발달은 문명의 단계에도 당연 영향
【安奈風明原】
그러면 대부분의 국민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큰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문맹이 아니였다는 것인가
아무래도 여러 도시로 분권된 일본의 환경을 생각해보자면, 도시 인근의 농민층은 문맹 아니었다 보는 게 맞을 듯
그렇구나
도시 인근의 부농들은 또 하나의 계층으로써 작용해서, 그들만의 농악 등이 남아 극의 시초가 되기도. (猿楽사루가쿠 > 조루리)
역시 일본은 위대하다. 지금의 문화가 옛날부터 스스로 만들어 지켜왔다는거잖아. 조선인들은 일본이 물려준거고..
팩트: 물려받던 것도 50년대에 반일민족주의 표방하면서 걷어참 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