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의 시대에>
복거일
어느덧 여행에 좋은 철이 되었다. 휴일이면 아파트가 눈에 뜨이게 한산해진다. 문득 훌쩍 나서고 싶은 충동이 인다. 미리 여정을 짜고 떠나는 것도 좋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나서는 것은 얼마나 좋은가. 방랑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라면, 더욱 좋을 터이고.
방랑 – 문득 가슴에 잔잔한 물결이 인다. 방랑이란 말보다 우리를 더 설레게 하는 말이 몇이나 될까? 그 말만 들어도, 문득 트이는 가슴속으로 시원한 바람이 밀려들어온다.
막상 떠나려 하면, 그러나 우리는 갈 만한 곳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는 너무 좁다. 특히 북쪽은 휴전선이 늘 마음의 지평을 무겁게 가로막고 있다. 게다가 그냥 떠돌아다니기엔 사람들로부터 받는 눈총들이 너무 따갑다. 뚜렷한 볼일이 없어 돌아다니다가는, 남의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조심해도, 수상한 사람으로 신고되어 경관의 조사를 받기 십상이다.
하긴 떠돌아다니는 일이 마냥 유쾌하고 안전했던 적은 없었다. 근본적으로, 통치 권력은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중국에선 이미 3천 년 전 주대에 인민들에 대한 통제가 업격해져서, 인민들은 자신들이 경작하는 토지로부터 결코 떠날 수가 없었다. 고대의 주민등록증인 호패도 원에서 시작되어 고려 공민왕 때 수입되었으니, 내력이 오래다. 서양에선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통제가 더욱 심했다. 중앙 집권적 성향이 동양에서보다 훨씬 약했고 일찍부터 도시들이 독립적 지위를 누렸던 유럽에선 다른 지방이나 도시로부터 온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통제가 무척 엄격했다.
게다가 고대의 여행은 지금처럼 교통과 편의 시설이 발달한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고된 일이었다. 먼저, 배를 이용한 여행을 생각해보자. 옛날엔 정기선이란 것이 없었다. 그럴 만큼 해운이 발달하지 않았고, 설령 정기선을 운행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돛배는 바람을 기다려야 했다. 승객들은 자신들이 먹을 것과 이부자리를 갖고 배를 탔고, 날씨가 궂어도, 거의 모두 갑판 위에서 지냈다. 화물을 나르는 것이 주임무였고 승객을 받는 것은 부차적 업무였으므로, 배는 승객을 위한 편의 시설들을 거의 갖추지 않았다. 해적을 만나 물건을 빼앗기고 죽거나 노예가 되는 위험까지 있었다.
그래도 배를 타게 되면, 행운을 안은 것이었다. 배를 타고 가는 것은 길을 가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편하고 안전했기 때문이다. 길을 걸어가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말이나 나귀를 타면 훨씬 편했지만, 그것은 지배 계층이나 누렸던 사치이다. 그나마 말을 오래 타는 것은 생각보다는 훨씬 고된 일이다. 잘 곳이 마땅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고대의 여관들은 잠자리를 제공하는 일보다 술과 여자를 제공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겨서, 지난 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나그네는 자신의 침구를 갖고 다녀야 했다.
여행 자체가 그렇게 힘들었지만, 여행을 정말로 어렵게 만든 것은 도둑이었다. 옛날 얘기들에 길을 가다가 도둑을 만나는 장면이 많은 것은 얘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도둑을 만나 물건을 빼앗긴 장사꾼은 빌린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함무라비 법전의 규정은 고대에 도둑들이 얼마나 많았나 알려준다. 육로 여행이 얼마나 힘들었는가는 영어에서 여행을 뜻하는 ‘travel’이 원래 ‘일’이나 ‘괴로움’을 뜻하는 ‘travail’에서 나왔다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옛날엔 여행이 힘들었다면, 방랑은 생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실제로 방랑은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흔한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방랑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근대까지 떠돌아다닌 사람들은, 특별한 재능이나 기술을 지닌 사람들을 빼놓고는, 대부분 살 곳을 잃고 유랑한 것이었다. 서부극 덕분에 방랑자의 대명사처럼 된 미국의 목동들도 실제로는 방랑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용감하고 얽매이지 않은 존재였다는 얘기는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신화’였다. 그들은 실제로는 가난했고 무지했고 힘이 없었다. 권총은커녕 자신의 말도 없는 경우가 흔했고, 목장의 지주들에게 착취당해서,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다음엔, 떠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정치적이나 사회적으로 제약에 적어야 한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그러나 고대엔 그런 제액이 아주 심했다.
셋째, 사람들의 정신적 지평이 자기가 태어난 마을과 도시를 넘어서야 한다. 대중 교육이 보급되기 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랑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에겐 태어난 마을이나 지방이 실질적 우주의 전부였고 방랑이란 개념을 형성할 만한 지적 능력이 없었다.
이렇게 보면, 진정한 방랑자들인 히피족들이 낭만주의 사조가 서양을 휩쓴 지 2백 년이 된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방랑은 20세기적 현상으로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방랑하기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방랑은 사람들이 일상의 바퀴 자국에서 벗어나 마음의 지평을 넓히는 일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낭비가 아니다. 이런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더 많은 형태로 방랑하지 않는 것은 아쉽다.
이제 허전한 불은 검게 타버리고,
불빛은 나직이 깜빡거린다;
어깨 펴고, 봇짐 메고,
친구들은 남겨두고서 가라.
하우스먼의 충고대로 지금 훌쩍 떠나는 것이 일상의 거대한 관성에 떠밀려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무척 현명한 결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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