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죄라고 담대하게 선포할 줄 아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예수님을 대표로, 죽음을 무릅쓰고 지속적으로 헤롯 왕에게 책망을 했던 세례 요한, 돌 맞아 죽기까지 군중을 향해 책망했던 스데반, 아나니아를 무섭게 책망했던 베드로, 각종 박해를 견디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던 사도 바울, 구약 속 대부분의 선지자들. 이들의 공통점은 "담대함"입니다. 군중이 뭐라고 하든 말든 말씀 그대로를 대언하고 악은 악이라 선포, 책망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죄를 죄라고 악을 악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교회의 풍조 속에 살고 있습니다. '판단과 정죄'라는 미명하에 말입니다. 그리고 말투나 표정 같은 주관적인 느낌을 근거로 '교만'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버리곤 합니다. 이렇게 서로의 죄를 지적하지 못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현대 교회 타락의 발판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로서로가 죄짓는 것을 이해해 주며 양심을 무뎌지게 만들다 보면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합리화하며 자연스레 구원파 신앙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교만하게 형제를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정죄이고 교만인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죄를 짓는 게 보인다면 책망하는 것이 성경적이며 절대 정죄가 될 수 없고 교만한 태도인 게 아닙니다. 되려 죄를 방관하거나 묵인하는 것이 그 죄에 동참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적해야만 하고 듣지 않으면 구별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5장 (새번역)
11. 그러나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사귀지 말라고 쓰는 것은, 신도라 하는 어떤 사람이 음행하는 사람이거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이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거나, 사람을 중상하는 사람이거나, 술 취하는 사람이거나, 약탈하는 사람이면, 그런 사람과는 함께 먹지도 말라는 말입니다.
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심판해야 할 사람들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악한 사람을 여러분 가운데서 "내쫓으십시오."
마태복음 18장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디모데전서( 딤전 ) 5:20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요한복음 8: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도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라고 죄에 대해서는 명확하고 분명하게 지적하십니다.
즉, 성경의 정죄는 결국 "심판 선고"라는 단어로 치환할 수 있습니다. 오직 심판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기에 사람이 감히 심판 선고를 한다는 것은 두려운 죄가 맞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적하는 것과 정죄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분별을 판단으로 착각해서도 안 됩니다.
마태복음 7장
15. 거짓 예언자들을 살펴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굶주린 이리들이다.
16. 너희는 그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야 한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따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
갈라디아서 2: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요한일서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거짓 형제와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해 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들을 분별하지 못하면 결국 마귀에게 속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속는 것 또한 속이는 것만큼 악하게 보십니다.(딤후 3:13)
대표적으로 사이비 교인들이나 교주가 있습니다.(이들 역시 속았을 뿐입니다.)
이들에게 속는 이유는 내 안에 말씀이 견고히 자리 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말씀으로 예수님을 미혹했지만 예수님도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셨듯이 내 안에 말씀이 견고히 서 있어야 그 어떤 방식으로 미혹이 오더라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지적하는 판단은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충고했던 확증편향적 판단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어떻게 보시는지도 모르고 욥의 속사람과 내막도 모르면서 욥의 죄 때문이라고 속단했습니다.
어떤 현상을 마주했을 때 성경에서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자기 기준"이라는 좁은 식견의 틀 속에 억지로 끼워 넣을 것이 아니라,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명확한 뜻을 기다리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따라서 죄를 책망하는 담대함과 진리를 분별하는 분별력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소양이며 이것이 더 이상 판단과 정죄라는 프레임에 흡수되어 명확한 기준도 없이 어영부영 신앙생활하는 크리스천이 더 이상 늘어나질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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