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기 전에 한 판만 하고 자야지 하고 랭크를 돌렸다.

근데 상대를 보자마자 알았다.

아 이건 사람이 이기는 상성이 아니구나.

1렙부터 18렙까지 단 한 순간도 주도권이 없는 상성.

유일한 승리 플랜은 1렙 미니언 어그로 이용해서 쇼부 보는 거.

못 따면? 25분 동안 포탑 밑에서 CS나 받아먹다가 끝나는 게임이다.

근데 씨발. 2렙 타이밍을 놓쳐서 솔킬을 따였다.

그 이후는 예상 가능한 미래였다.

디나이솔킬 디나이 솔킬 정신 차려보니 0/2/0 쉬었음 피즈

타워 앞에서 프리징하면서"경험치만 주세요..."도게자 박고 있었는데

상대는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그냥 바로 다이브


그런데 여기서 우리 팀 정글이 상대 미드를 집 가는 길에 잘라먹어준다.


살았다 싶었는데 문제는 내 앞에 쌓여 있는 빅웨이브.

라인 두 개가 쌓여 있었다.


저거 안 밀어주면 대포 웨이브 다 타고 다음 웨이브까지 디나이다.


그래서 간절하게 라인 클리어 핑을 찍었다.

근데 우리 정글은"느그 CS 타는 게 나랑 뭔 상관이노 ㅋㅋ"

라는 무빙을 보여주며 바위게를 먹으러 갔다.


그 순간 깨달았다,이 게임은 쵸비가 와도 못 막는다.


CS 40개 차이.

0/3/1


상대 스킬 한 대 맞으면 귀환 눌러야 하는 피즈.

걸어다니는 300원 그 자체.


그런데 여기서 우리 정글의 명장면 89세 워윅의 라스트 다이브

상대는"뭐하는 병신이지?" 하는 표정으로 워윅을 보신탕으로 만들어버렸다.


7분

상대 미드와 골드 차이 약 3000.


나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을 뿐인 피즈가 되었다.

그런데 채팅창에 올라오는 한 마디.


"아 미드차이 ㅈㄴ 크노 ㅋㅋ"



그 순간 화가 나더라.

내 실력에 화나고.

상성에 화나고.

게임에 화나고.

정글에 화나고.

그 말에 화나고.

그래서 더 이상 이길 방법을 찾지 않았다.


"걍 져 씨발 ㅋㅋ"



당연히 팀원들은 나를 욕했다.

하지만 이미 그때부터 승패가 중요하지 않았다.
이기는 방법보다

저 새끼들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방법이 더 중요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의미도 없는 숫자 하나 때문에

패드립 치고 쌍욕 박고 서로 기분 상하게 만들고

대체 왜 이러고 있지?

게임이 끝나면 남는 건
재미없는 플레이.

상한 기분.

그리고 후회뿐인데.

아마 우리 팀도 똑같았을 거다.

나 때문에 열받고.

게임 때문에 열받고.

그렇게 끝.

생각해보니 나는 이 생각을 벌써 10번도 넘게 했다.

그때마다 롤을 지웠고.

또 깔았고.

또 지웠고.

또 깔았다.

근데 이번엔 진짜인 것 같다.

추억도 많았고,재밌었던 순간도 많았고.
친구들과 밤새 자랭했던 기억도 많다.


근데 이제는 보내주려고 한다.

롤은 정말 재밌는 게임이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도파민에 끌려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모르는 사람에게 욕하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그래서 문득 무서워졌다.

이게 원래 내 성격이었나?

아니면 게임이 만든 성격인가?

이제는 모르겠다.

아무튼 난 팀게임 접고

여자친구랑 RPG나 하러 간다.

안녕.사랑했던 롤아.


그리고 씨발아.

다신 만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