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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돌더러

박노해



모래 위에 심은 꽃은

화창한 봄날에도 피지 않는다

대나무가 웅성대는 것은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갈대가 두 손 쳐들며 아우성치는 것도

바람이 휘몰아치는 까닭이다

돌맹이가 굴러 돌사태를 일으키는 것은

바람에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함이다


대나무나 갈대나 돌멩이나

바람이 불기에 소리치는 것이다


우리는 조용히 살고 싶다

돌아오는 건 낙인찍힌 해고와 배고픔

몽둥이에 철창신세뿐인 줄 빤히 알면서

소리치며 나설 자 누가 있겠느냐

그대들은 우리더러

노동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우린 돌처럼 풀처럼 조용히 살고 싶다

다만 모래밭의 매마른 뿌리를

기름진 땅을 향해 뻗어 가야겠다

우리도 봄날엔 소박한 꽃과 향기를 피우고 싶다

우리로 하여금 소리치게 하고

바람이 드세게 몰아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노해, <노동의 새벽>,

117~1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