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http://lodong.org/wp/archives/12284
해설: 1934년 국회의사당 방화사건 당시 파시스트 기관에 의해 재판정에 서게 된 이후, 불가리아의 공산주의자였던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는 자신의 소신을 한결 굽히지 않았다. 아래의 담화는 파시스트 재판정에서 디미트로프가 밝힌 최후진술이다. 국제공산주의운동의 가열찬 노력으로 석방된 이후로는 통일전선 전술을 심화시켜 반파시스트 인민전선의 주역이 되었으며, 1941-45년의 반파쑈전민항전 당시에는 조국전선을 주도하여 불가리아 파르티잔들에 의한 항독반파쇼항쟁의 승리를 추동하였다.
디미트로프: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의 진상을 완전히 밝히고 방화 진범을 밝혀내는 것은, 물론 미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인민재판소에 남겨진 일이다.
17세기에, 물리학자의 시조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준엄한 종교재판소의 법정에 서서 이단자로서 사형을 선고받으려 하고 있었다. 그는 마음 속 깊이 확신을 가지고 단호히 외쳤다.
“그래도 그것―지구―은 돌고 있다!”
그리고 이 과학상의 명제는 전 인류의 공유재산이 되었다.
(재판장은 격렬하게 디미트로프를 제지하고, 일어나 서류를 가지고 나가려 한다.)
디미트로프(계속하여): 오늘날 공산주의자도 옛날의 갈릴레이에 못지않은 단호함으로써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래도 그것은 돌고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돌고 있다― 소비에트유럽을 향하여, 세계소비에트공화국을 향하여!
그리고 공산주의인터내셔널이 지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손으로 밀려 나온 이 수레바퀴는, 어떠한 절멸조치, 어떤 징역형이나 사형 판결로도 멈출 수는 없다. 그것은 돌고 있으며, 공산주의가 궁극적으로 승리할 때까지 계속 돌 것이다!
(경관이 디미트로프를 붙잡고 완력으로 피고석에 앉혔다. 판사들은 디미트로프에게 발언을 계속시킬 것인지에 대해 협의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잠시 후 판사들은 법정으로 돌아와 디미트로프의 발언을 최종적으로 금지한다는 취지를 언도했다.)
그러고 보니, 9월 9일은 벌가리야(불가리아)의 근로인민대중이 파쑈세력과 군주제를 타파한 기념비적인 날로서 기억합니다. 불가리아 노동당 5차 대회 보고도 손수 작성하셨는데, 유고슬라비아의 수정주의자들을 비판하며 여러 공산당-노동자당들과 함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을 한결같이 옹호고수한 사례도 훌륭한 귀감으로 남죠. '남슬라브 연방'을 빙자한 찌또 일당의 '대(大) 유고주의'는 대세르비아주의의 변주에 다름 아니었으며, 악의로 가득찬 소부르주아적 배외주의의 철저한 지양이 시대적 요구로 됐던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