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이 몇천만명 숙청했다고 하는 놈들 반박 어떻게 함?
[일반] 대숙청 반박좀
익명(222.234)
2021-09-26 12:22
추천 2
댓글 8
다른 게시글
-
맑스레닌주의 추천도서 목록 (4) 과학적 사회주의 [2][정보] 소셜리스트(dasa1725) | 21.09.26추천 11
-
이오씨프 쓰딸린 - 중국에서 인민민주주의의 여부에 대하여 [2][번역] 레닌기치(narkomnats17) | 21.09.25추천 5
-
나는 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가? [3][정보] 라틴아메리..(safariboy) | 21.09.25추천 8
-
맑스레닌주의 추천도서 목록 (3) 정치경제학 [5][정보] 소셜리스트(dasa1725) | 21.09.24추천 13
-
박노해 - 어머니 [2][문예] 레닌기치(narkomnats17) | 21.09.24추천 3
-
맑스레닌주의 추천도서 목록 (2) 철학 [3][정보] 소셜리스트(dasa1725) | 21.09.24추천 19
-
소련 관련 질문 [21][질문] 익명(118.235) | 21.09.24추천 0
-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돌고 있다! [1][정보] 익명(125.191) | 21.09.23추천 6
-
몽골-부랴뜨 혁명 10주년: 부랴뜨 인민이 거둔 문화적 성취 [4][번역] 레닌기치(narkomnats17) | 21.09.23추천 11
-
맑스레닌주의 추천도서 목록 (1) 입문 [4][정보] 소셜리스트(dasa1725) | 21.09.23추천 14
실제적 인구와 통계수치를 그 사람들이 고려라도 했나? 공문구에 지나지 않음. 반공주의라는 것 자체가 애시당초 터무니없는 썰들이 많기 때문에, '공산주의 흑서'를 진지하게 믿는 것만큼 우스운 일이 없음.
학자들마다 엇갈리는 주제인데, 적어도 쏘련 문서고 혁명 이후로는 학자들 사이에서 '수천만 명 사망'과 같은 이야기는 다소 사그라든 편입니다. 아치 게티와 젬스꼬프 등이 1990년대 초반 미국역사평론(American Historical Review)지에 제출한 논문의 여파가 컸지요. 다만, 68만 명이라는 수치도 1954년 당시 흐루쇼프 일파에 의해 수작업을 거쳐서 산출한 수치이고, 이후 기밀로 됐다가 90년대에 들어서서 공개된 만큼 이마저도 세심한 검토는 늘 요구된다고 봅니다.
게티와 젬스꼬프 등이 참고문서로 삼은 68만 명의 수치는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의 수치를 지칭합니다. 그러나 사형 선고자의 대다수가 유기징역형으로 감형됐고, 일반 형사범(살인, 폭력적 범죄 등)과 반혁명 범죄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1936년에서 1938년까지 사형판결을 받은 사람들은 미국역사평론에 제시된 통계자료에 따르면 일반범죄와 반혁명범죄의 구분이 엄밀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지요. 90년 2월 고르바쵸프 시기 쏘련 당국에 의해 공개된 만큼 주의를 기울일 부분이 여실히 있습니다. 선고를 받은 사람들 중 실제 집행까지 이뤄진 경우, 모든 측면을 감안할 때 10만 명이라는 수치가 신빙성이 담지되어 있다고 봅니다.
당시 쏘련 공산당의 입장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사수하되 그 방법에 있어서 신중을 기울이는 것이었죠. 평당원들에 의한 비판을 장려하고 고위급 간부, 군 장성을 대상으로 투쟁을 격려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숙청은 대부분의 경우 소환과 파면, 또는 계급투쟁이 격화된 형태로서 간부에 대한 재판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이 지적될 필요가 있습니다. 예조프의 일탈적 행위에 대해 스딸린과 쏘련 공산당의 입장은 반혁명에 대해 완고하게 대처하되, 18차 당 대회가 개회되기 이전에도 사회주의적 법치에 입각하여 시행되어야 할 것을 주문했고, 지속적인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을 임무로 삼았습니다. '데스노트'를 작성하여 '숙청'을 벌였다는 고색창연한 서술은 볼고꼬노프와 정성진과 같은 사람들이 흔히 쓰는 수법으로 당대의 실상을 제대로 묘사조차 하지 않지요. - dc App
http://lodong.org/wp/archives/5907,
그리고
http://lodong.org/wp/archives/5718를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 dc App
숙청의 본질은 당원의 자질을 검사하고, 그들이 전위의 일원으로서 사회주의 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지 판별하고 검증하는 과정입니다. 여러 데마고그들은 1937년에서 1938년 사이에 '숙청'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두 해 사이에 출당된 사람들은 역대 규모에 비해 적었지요. 그만큼 정교하게 이뤄졌고, 당에서 확고한 기준을 제시한 까닭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콘퀘스트 등의 주장은 허황된 측면이 적잖아 있는데 실제로는 벨르이 군의 사례처럼 고위 간부들의 행실을 고발하고 기층부의 투표로 소환과 파면과정이 이뤄지는 사안이었습니다. 평당원과 같은 경우면 오히려 당의 핵심이자 주도적 역량인 만큼, 간부의 사례들과는 달리 중앙위원회에서 탄원을 장려했고 빠른 속도로 당적 복귀가 이뤄진 바 됩니다.
그냥 쉴라 피츠패트릭의 '러시아 혁명 1917~1938'만 들이대도 게임 끝.
피츠패트릭이 대중적인 역사학자들 중에서 전향적인 축에 속하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