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소몰 공장집단에서의 단조로운 평온은 으레 처음에는 그렇게 보이듯이 하나의 대수롭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깨졌다. 중간 규모의 기계를 수리하는 부서의 세포 뷰로의 일원인 꼬스찌까 피진이 철판에 구멍을 뚫다가 미국제 드릴을 못 쓰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그는 들창코인 데다가 마마(천연두-주)가 할퀴고 간 자국이 온 얼굴을 뒤덮고 있었고, 동작이 느리고 굼뜬 인간이었다. 그는 어처구니없는 근무태만 때문에 드릴을 망가뜨렸다. 더욱 나쁜 점은 그 일이 거의 고의적이었다는 데 있었다. 이 사건은 아침에 일어났다. 중간 규모의 기계를 수리하는 부서의 고참 기술자인 호도로프는 꼬스찌까에게 철판에 몇 개의 구멍을 뚫으라고 말했다. 꼬스찌까는 처음에 그 말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그러나 숙련공의 압력에 견디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호도로프는 트집을 잘 잡기로 유명했기 때문에 전문공장에서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는 한때 멘셰비끼로 활약한 적도 있었다. 그는 사회적인 생활에 결코 빠져 들지 않았으며, 꼼소몰에 대해서는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는 하였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맡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귀신 같은 전문가였으며, 업무 역시도 성실하게 수행하는 인간이었다. 그 숙련공은 꼬스찌까가 기름을 전혀 칠하지 않은 마른 상태에서 구멍을 뚫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숙련공은 빠른 걸음으로 드릴 작업대 쪽으로 다가가서 그를 제지하였다.
"야, 너 눈깔 멀었냐? 아니면 어저께 여기 처음 왔냐?!" 그는 만일 드릴을 그런 식으로 다룰 경우에 그것을 당연히 못 쓰게 된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꼬스찌까에게 호통을 친 것이었다.
그러나 꼬스찌까는 오히려 숙련공에게 욕설을 퍼붓더니 다시금 작업대를 작동시켰다. 호도로프는 공장장에게 이 사실을 하소연하려고 갔다. 한편 꼬스찌까는 만일 공장 행정부에서 사람이 나올 경우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양으로 작업대를 그대로 가동시킨 채 기름통을 찾으러 달려나갔다. 그가 기름통을 찾아서 들고 돌아왔을 때, 드릴은 이미 부러져 있었다. 전문공장의 공장장은 피진을 면직시켜야 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꼼소몰 세포의 뷰로는, 호도로프가 젊은 열성분자를 억압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꼬스찌까를 옹호하고 나섰다. 공장 행정부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판정을 공장집단 뷰로에게 위임해야 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뷰로의 다섯 구성원들 가운데 세 사람은, 꼬스찌까의 견책에 동의하여 그를 다른 부서로 이동시킬 것에 찬성하였다. 그들 가운데에는 쓰베띠예프도 끼여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꼬스찌까에게는 전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 공장의 서클실에는 이곳으로 가져 온 단 하나의 부드러운 안락의자에 퍼지는 되는 대로 앉아서 쓰베따예프는 회의를 이끌어 나갔다.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초급 당 위원장인 호무또프가 발언권을 신청했을 때, 누군가가 문갈고리로 걸려진 문을 두드렸다. 쓰베따예프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밖에서는 계속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댔다. 까쮸샤 젤레노바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갈고리를 벗겼다. 문 뒤에는 꼬르챠긴이 서 있었다. 까쮸샤가 그에게 길을 내주려고 비켜 섰다.
빠벨은 성큼 빈 의자 쪽으로 걸음을 옮겼는데, 그때 쓰베따예프가 그를 소리쳐 불렀다.
"꼬르챠긴! 우린 지금 비공개 회의중이야."
빠벨의 두 뺨이 붉게 물들었다. 그는 천천히 탁자 쪽으로 돌아섰다.
(...) "동무들, 나는 꼬쓰찌까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여러분들께 전하고자 합니다."
꼬르챠긴의 목소리는 그가 마음먹었던 것보다 훨씬 더 날카로워져 있었다.
"꼬스찌까의 문제, 이것은 꼬스찌까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전체적인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제 그리 많지 않은 숫자를 모아 봤습니다." 빠벨은 무엇인가가 가득 적혀진 작은 책자를 주머니에서 끄집어냈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출퇴근 상황 기록원이 제시한 것입니다. 주의를 기울여 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매일같이 23퍼센트에 달하는 공청원들이 5분에서 10분 정도 지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의 규칙처럼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17퍼센트에 이르는 공청원들은 한 달에 하루 내지는 이틀 정도까지 아예 정해 놓고 결근을 하고 있는데, 이와 비교해 볼 때 비당원 젊은이들은 14퍼센트 정도만이 결근하고 있습니다. 숫자는 꼬아서 만든 채찍보다 더 나쁜 상황입니다. 나는 내친 김에 이것 저것을 몇 가지 더 적어 보았습니다. 공산당원들 가운데 한 달에 하루 꼴로 결근하는 사람은 4퍼센트이며, 지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역시 4퍼센트에 이르고 있습니다. 비당원 성년 노동자들의 경우에 한 달에 하루 결근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11퍼센트이며, 13퍼센트에 달하는 사람들이 지각하고 있습니다. 공구의 파손에 대해 말씀드리면, 파손의 90퍼센트에 대한 책임은 젊은 노동자들에게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갓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7퍼센트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이렇게 볼 때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 공청원들은 공산당원 노동자들이나 비당원 성년 노동자들보다 일을 훨씬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전일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기공들은 상당한 정도로 대장장이들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사정인데, 나머지 노동자들의 상황은 대동소이한 형편입니다. 내가 보기에 호무또프 동무는 규율에 관하여 단지 4분의 1만을 언급한 것입니다. 우리들 앞에는 이렇게 들쭉날쭉하게 진행되고 있는 제반문제를 고르게 전개해야 한다는 과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나는 선동을 하거나 회합을 준비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엉성한 일처리와 해이해진 정신상태에 각자 열심히 덤벼들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나이 든 노동자들은 대 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을 모시고 일했을 때가 더 나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주인이 된 지금, 이런 상황이 된 데에는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첫째로 꼬스찌까나 혹은 거기 있던 어떤 다른 사람이 잘못했다기보다는 우리가 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연히 했어야 마땅할 이러한 악과의 투쟁을 전개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런 저런 구실을 붙여 때로는 꼬스찌까 같은 사람들을 옹호하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방금 전에 이 자리에서 사모힌과 부뜨일라끄는, 피진은 우리의 친구라고 말했습니다. 말하자면 근로봉사를 행하는 활동분자로서 '한솥밥을 먹는 식구'라는 얘기겠지요. 지만 그는 드릴을 부러뜨렸습니다. 누구에게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그에게 발생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 문제입니까? 그런데 꼬스찌까는 우리편이라고, 숙련공은 아니다라고 하니.. 설사 어느 누구도 호도로프와 함께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해도 그게 말이 됩니까? 그 트집쟁이는 30년에 달하는 실무경력의 소유자입니다! 우리는 그에게 정치적인 입장을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지금 옳바르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록 이방인이지만 국가의 재부를 소중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에서 들여온 공구들을 마구 훼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돌아가고 있는 일을 무어라 불러야 하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지금 이와 같은 부문에 최초의 타격을 가하고 공세로 나아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제안합니다. 건달이며, 게으름쟁이고, 생산조직의 파괴자인 피진을 공청원으로부터 제명시켜야 합니다. 그의 사건에 대해서는 불만의 소리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공공연하게 벽신문에 게재하고, 이런 수치들 역시 사설에 실어야만 합니다. 우리에게는 역량이 있고, 또한 우리가 의지할 사람들도 있습니다. 꼼소몰의 기본대중은 훌륭한 직접 생산자들입니다. 그들 가운데 60명은 보야르까 건설 경험을 통과했으며, 바로 이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믿음직스러운 우리의 일꾼들인 겁니다. 그들의 도움을 받고 그들의 참여 하에 우리는 갈지자의 무질서를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우유부단한 태도는 끝까지 격퇴해야 하며, 지금이 바로 그것을 진행시켜야 할 때인 것입니다."
평상시에는 말수가 적었거니와 평온을 잃지 않았던 꼬르챠긴이 지금은 열렬하고 날카롭게 말하고 있었다. 쓰베따예프는 이 전기공의 진면목을 처음으로 목도하였다. 그는 빠벨이 옳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지금까지도 계속 가지고 있던 그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그의 의견에 동조할 수가 없었다. 그는 꼬르챠긴의 발언을 조직의 일반적인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또는 자기 자신, 즉 쓰베따예프의 권위에 대한 훼손으로 이해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 전기공을 혹독하게 비난해 주리라고 마음먹었다. 꼬르차긴이 멘셰비끼인 호도로프를 옹호하고 나섰다는 점을 비난하는 것에서부터 그는 자기의 이의제기를 직접적으로 결행하기 시작했다.
세 시간에 걸친 격렬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밤늦은 시간에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쓰베따예프는 사실들의 엄격한 논리에 의해 격파되었으며, 다수의 참가자들은 꼬르차긴의 편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쓰베따예프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그릇된 행동을 취하였다. 즉, 그는 결정투표에 앞서 꼬르차긴에게 방에서 나가 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좋아, 이것이 너에게 명예로운 일이 되지는 않겠지만 나가 주겠다, 쓰베따예프. 한 가지 미리 경고해 둘 것은, 만일 네가 계속해서 너의 방식을 고집한다면 나는 내일 전체회의를 소집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확신컨대 너는 거기서도 다수를 확보하지는 못할 거야. 쓰베따예프, 넌 옳지 않아. 그리고 호무또프 동무, 당신은 전체회의 이전까지 당 집단에 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당 집단 뷰로는 꼼소몰 뷰로의 다수의견을 승인하였다. 개인적인 과업을 통하여 노동규율의 본보기를 제시해야 한다는 중요하고도 어려운 과제가 당 집단과 꼼소몰 집단 앞에 제기되었다. 뷰로에서는 쓰베따예프를 철저하게 비난하였다. 처음에 그는 크게 분노하였다. 그러나 결핵을 앓고 있음으로 해서 건강이 소진되어 가고 있던, 누르스름한 얼굴의 중년 책임서기인 로빠힌의 공개발언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자 쓰베따예프는 굴복하기에 이르렀고, 부분적으로는 자기의 과오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 다음날 대공장의 벽신문에는 노동자들의 주목을 끌게 된 몇몇 기사들이 게재되었다. 노동자들이 그 기사를 소리내어 읽고는 열띤 토론을 전개하였다. 그날 저녁에 있었던 꼼소몰 집단의 회합에는 전례 없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거기에서는 오직 그 기사내용에 대한 토론들만이 오갔을 따름이었다.
꼬스찌까는 축출되었고 꼼소몰 집단 뷰로에는 새로운 동무, 새로운 정치 교육원, 즉 꼬르차긴이 인입되었다.
- 니꼴라이 오쓰뜨로프스끼,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열린책들, 1994, 346~3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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