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약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스딸린이 영향을 받은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1941년 6월 22일 이후, 그리고 전쟁 기간 내내 그는 견고하게 국가를 경영했으며, 중앙위원회 및 쏘비에뜨 정부와 함께 군사작전을 이끌고 국제적인 업무를 처리했다'는 것이다. - 루도 마르텐스, 《스딸린 바로 보기》 中


* 루도 마르텐스의 저서는 노사과연 옛 홈페이지에 번역되어 있다.






2.


미국의 한 역사가는 10년 전 쏘비에뜨 지도자의 책임 포기와 상실감에 대한 거짓말을 놓고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반론을 폈다.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쓰딸린은 개전 당일 당, 정, 군의 인사들과 11시간 동안 회의를 나눴으며, 이는 그 다음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 1990년대 초반에 발견된 자료에 의하면, 쓰딸린은 독일의 침공 직후 지속적인 회의에 매달렸고 저항을 조직하기 위한 방안들에 전념했다. - 도메니꼬 로쉬르드, 《쓰딸린: 흑색선전의 역사와 그 비판》 中


* 필자의 개인적인 번역. 로쉬르드의 책은 아직 국문으로 번역되지 않았다. 원제는 "Stalin: The History and Critique of a Black Legend".


* '1990년대 초반에 발견된 자료'는 끄레믈린 방문자 명단을 말한다. 독소전쟁 개전일 당시 쓰딸린의 대응을 살펴보기 위한 추가적인 자료로는 불가리아 공산당과 꼬뮌테른의 주요 인사였던 게오르기 디미뜨로프의 《디미뜨로프 일기》가 있다.




3.


흐루쇼프는 쏘련 공산당 20차 당 대회 연설에서 전쟁 당일 스딸린이 '칩거 했다고 말한다. 서구의 '역사학자'인 앨번스타인 역시 흐루쇼프의 주장에 살을 붙이기 위해 '개전 당일 11시간 동안 보드카에 취해 있었다'(루도 마르텐스의 인용)는 주장을 개진한다. 그러나, 1차적인 문헌과 사료들은 쓰딸린이 전쟁 당일에 '칩거'하지 않고 전략과 전술의 구성에 열중했고, 독일군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로쉬르드가 표현했듯 '당, 정, 군의 인사들과' 함께 작전을 의논했다는 사실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흐루쇼프의 철면피스러운 궤변이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