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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중반에 아제르바이쟌 노동자들이 절망을 토로하며 쓰딸린을 기치로 내걸고, 정부 부처들로 돌진하여 시 당국자들을 공격하며 쫒아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흐루쇼프는 국가발전의 실패와 부조리를 의미했다. 반면에, 쓰딸린은 쏘련이 이룩한 성취와 인민을 위한 정의를 상징했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쏘비에뜨 권력을 수호하기 위해 나선 것이었다. 이들은 흐루쇼프한테서, 부조리와 자본주의로 향해가는 나라의 진로로부터 쏘비에뜨 권력에 대한 방어를 위해 나섰다. 고르바초프 하에서 자행된 이후의 참사로부터 쏘비에뜨 권력을 노동자들은 지키고자 했다.


비밀 문서고에 묻혀있는 다른 자료들에 나타난 정보들도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숨가이뜨의 근로인민은 1973년 5월 1일 노동절에서 친(親) 쓰딸린 연설을 되풀이하고자 했다. 1973년은 쓰딸린이 사망한지 2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러나 까게베(KGB)는 이전과 달리 기민하게 대처했으며, 소요를 금지하는 예방적 조치들이 가해졌다. 다른 요소들도 있었다. 쏘비에뜨 사회의 상당한 층위에서 소비자들의 광범위한 증가는 사기의 저하와 탈정치화, 노동자-농민의 탈계급화를 야기했다.


- Lavrentiy Gurdzhiev, For the Motherland, For Stalin! - From the Poltical Protests in the USSR





추신: 이리나 말렌꼬가 자신의 부모 세대, 즉 쓰딸린 시기 쏘련 당시 노동자-인민의 정치참여와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열망이 활발했다고 말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정주의에 의한 일시적이고 즉자적인 정책들은 -뽈쓰까 인민공화국에서도 기에레끄와 같은 주자파들이 그랬던 것처럼!- 일시적으로 선순환을 자아냈지만, 생산수단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계급투쟁이 사회주의 하에서도 지속된다는 레닌과 쓰딸린의 이론을 부정함으로써 쏘련에서 반혁명과 소부르주아 민족주의를 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