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강철 : 그 우리 부대 뒷산에 있잖아요. 이렇게 큰 아름드리 잣나무들이 쫙 서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쨌든 그 잣나무로 관을 짜야 되잖아요. 사람 돌아가니까. 그니까 우리 부대에서는 죽은 사람이 없는데, 근데 여기 우리 주둔구역에 옆에 있는, 주둔구역에 돌아가신 분들이 있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걸 우리가 나무를 베서 관을 자서 다 해주었죠. 그래서 부대 뒷산에 있던 나무를 몽땅 베어버렸어요.
유영호 : 그 정도로 많이 희생되었다는 거죠?
홍강철 : 예, 많이 돌아가시긴 했죠.
김련희 : 군부대 같은 경우에는 저도 남편이 군의관이라서 10년 동안 지방에 내려가서 고난의 행군 시절에 군사복무를 했어요. 1998년부터 2008년까지를 지방에 내려가서 살았거든요. 그래서 고난의 행군을 10년이라고 하는데 북에서는 95년부터 2005년까지 그때 3년 동안을 98년까지 평양에서 고난의 행군을 했고,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 동안을 지방에 내려가 있었던 거예요. 제일 많은 시간을 지방에서 고난의 행군을 했었죠. 근데 아무래도 군부에서 저도 군인 가족으로 살다보니까 군부에는 삼시 식량을 무조건 대줘야죠. 군대니까. 인민들은 뭐 "하루에 한 끼 먹는다", "두 끼 먹는다" 뭐 이런 말이 있어도 군대는 무조건 삼식을 했어요. 그 대신 저녁 같은 경우에는 감자 다섯 알씩 한 끼로 준다거나 이런 것도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부대에서는 "저녁에 감자를 다섯 알 이렇게 사발에 하나씩 줬다"하게 되면 아침과 점심은 애들(군인들)이 먹는데 저녁은 그 감자를 다 싸가지고 안 먹고 도루 다 나오는 거예요. 부대식당에서 종이에 다 싸가지고 나와서, 부대라는 것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부대에 인민들이 농민들이 다 주둔해 있거든요. 그 지역에 내려가서, 어린이 있는 집들 앞에 가서 그 엄마들한테 준 거예요. 굶고, 그것을 다 가지고 나와가지고 어디 가나 했더니 그 동네 어린이 있는 집들에 가서 엄마들한테 주는 거예요. 그러면 다음날 아침이면 엄마들이 우리 부대 정문 앞에 쫙~ 몇 명이 서 있어요. 항의를 하는 거예요.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먹어야지, 어떻게 우리가 이것을 먹냐?"
유영호 : 아~ 음식 준다고 항의를...?
김련희 : 예. "어떻게 군인들 고생하는데, 나를 지키는데 어떻게 우리가 이것을 먹을 수 있냐?고 해서 "다시는 절대 이런 짓 하지 말아라"라고 부대에다 막 항의하고 그랬거든요. 그러면 군인들이 다시는 엄마들한테 안 줘요 항의할까봐.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집, 농촌같은데 가면은 토방이 있어요. 토방에다 종이로 싸서 놓고 도망치는 거예요. 어느 부대 누가 줬는지 누구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엄마들한테 줬을 땐 같이 몇 년을 사니까 다 얼굴 알아요. 친해요. 주변 인민들하고. 그러니까 모르게 하려고 일부러 토방에다 싹 놓고 도망치는 거예요. 그렇게 그런 일들을 하면서 저도 군인가족으로 살면서도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한창 때 20대 초반 청년들이죠. "거 힘들고 군사훈련 하고 농사일 하면서도 어떻게 한 끼를 굶고 저렇게 한다는 게 웬만한 생각 가지고 될 수 있을까." 이런데 대한 가슴이 뜨거운 이런 감정을 많이 느꼈는데, 군부대 같은 경우에는 한 끼도 건너는 게 아니라 주기는 주었다는 거죠. 근데 인민들은 정말 더 힘들었어요. 군대보다.
홍강철 : 북한사람들 보게 되면 어느 집에 손주, 손녀, 아들, 딸 등 군대가지 않은 집이 거의 없거든요. 그러니까... (울컥)
김련희 : 눈물나~
유영호 : 그러니까 자기 집안 가족 중에 젊은 사람들이, 거긴 특히 여자들도 군대를 많이 가니까 거의 안 간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한 집안처럼... 좋게 말하면 '군민일체'다.
홍강철 : 요 전날 말하지 않았어요. '하나의 대가정'처럼 지낸다고. 그런 것처럼. 그니까 내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군대한테는 그렇게 군량미를 보내 주거든요. 근데 우리도 부대에서, 우리는 이렇게 '오룡리'라는 곳이 산골이거든요. 그리고 거기에 말목장이 있어요. 근데 사람이 먹을 것도 없는데 말 먹이를 못 주잖아요. 사람 먹을 게 없는데. 그런데 말목장에서 종자말들만 내놓고 9반인가까지 작업반이 있었거든요. 한 개 작업반에 말이 한 100필도 나마 됐어요, 거기에. 근데 그 말 죽였죠. (말이) 허약해지기 전에 죽여야 되잖아요. 그래야 고기 맛이 맛있잖아요. 맛있다고 말하면 안돼지. '동물(보호)연대' 끌려가겠어. 어쨌든 그 말을 잡아서 군대들한테 보내줬죠. 그래 우리 말고기 죽실나게 먹었어요, 그 해에. 사람이 먹을 것도 없는데. 말은 또 알곡을 먹어야 된다 말이에요. 풀만 먹고는 안돼요, 말은. 그래서 군대에 보냈거든요. 그래서 우리 말을 많이 먹게 되면 그 마굿간 냄새가 나거든요. 식당에 들어가면 "아~ 이제 끓이지 말라"고. 그리고 산나물이랑 캐서 풀밥 해먹어요, 우리. 여기서는 그게 건강식품이죠. 그때 당시는 그런 생각(풀밥=건강식)을 못 했거든요. 그래 풀, 산나물 가지고 이렇게 풀밥 만들어서, 비빔밥 만들어서 우린 먹고 나머지 쌀이 남잖아요. 그래 나머지 쌀, 남는 쌀 가지고 이렇게 그 주둔지역에 가서 주는 거예요, 인민들한테. 그랬어요.
홍강철 : 그 시기에는 또 제가 강건종합군관학교 다닐 때거든요. 그때 평안북도 동림군 인두리라는데 거기에 우리가 농촌지원 나갔더랬어요. 나가서 7월 말...
유영호 : 그 명령을 받고 강철씨 있는 부대도...
홍강철 : 전쟁 일어나는 줄 알았어요. 나는 그 해에. 밤에 자는데 북한은 그러잖아요. 비상소집하면 '폭풍'하잖아요. '폭풍'하는 거예요. 그래 아무것도 모르다 당한 거지. 와닥닥 일어나 장구류 지고 나가서 쫙 장렬했죠. 그랬더니 '최고사령관명령' 이러며 읽어주는데 그렇게 읽는 거예요. "전군이 농촌을 지원할 데 대하여." 총 들고 농촌으로 갔다니까요, 곧장.
노연이 자신들의 “이론지”에 쏟아내고 있는 궤변들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가 아닌지 생각됩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결론 내려버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