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강철 : 96년도에 제가 군관학교 가기 전에 우리 황해도 평산에 땅크(탱크)수리공장 있거든요. 그게 대수리를 하느라고 가다가 자유주의해서 평양에 들어갔댔거든요. 근데 우리 친구가, 장탄수(포에 포탄을 재는 사람)하고 운전수 둘이 평양 애들인거예요. 근데 운전수네 아버지는 7총국이라고 그게 후방부의 장령공급과장이었어요. 여기로 말하면 장군들한테 후방물자 공급해주는 그런 곳의 과장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장탄수네 아버지는 저기 저 뭐야, 평촌구역 행정위원회 부위원장이었거든요. 그래서 고난의 행군 때니까. "그래도 고난의 행군 때 간부들은 좀 낫겠지!" 이렇게 생각했던 거예요, 우리가. 그래서 자유주의해서 평양에서 내려서 들어갔단 말이에요. 거기로 그 친구네 집 찾아서 그래 들어갔는데 아침이었어요. 장령공급과장네. 그 친구네 집은 광복백화점 딱 앞의 아파트거든요. 30층짜리 경비대 아파트라고 그래요 거기서는. 거기 들어갔죠. 그래 우리가 들어가니까 어머니가 막 밥을 하는 거예요. 그래 밥해서 상 차려주고 "우린 다 먹었다"고 나가는거죠. "출근해야 된다"고. 나는 또 그런데 관심이 좀 많단 말이에요. "내가 이 집에서 먹어도 되나?" 그런게 좀 있어요, 제가. "불편하지는 않겠지"해서. 그래서 걔네 부엌을 들어가봤거든요. 부엌 들어갔는데 쌀이 요만큼(손가락 몇 마디 정도) 밖에 없는거야. 그 쌀독에. 그래서 나왔죠. 밥 못 먹었죠. 그래 거기서 아들이 왔으니까, 아들 친구들이 왔으니까 해준 거예요, 밥을. 그래 그 다음에 행정위원회 부위원장이잖아, 평촌구역. 평촌구역이 커요 평양에서도. 근데 거기 부위원장이란 말이예요. 아버지가. 그러니까 "걔네 집은 좀 낫겠지. 여긴 군대니까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하고, 거기로 간 거예요. 우리 친구들이. 그래 몰려갔는데, 몰려갔다고 해야 세 명이죠. 세 명이 갔는데 걔네 집도 똑같아요. 걔네 집은 좀 나아서 두부국 끓여주더라고요. 두부국에 밥해주는데, 또 부엌 들어가 본 거예요, 내가. 근데 그 집도 쌀이 없어. 그니까 그 때 간부들도 똑같았어요. 근데 여기 와보니까 무슨 북한의 간부들은 특권층이라고 자꾸 말하고 그러잖아요. 내 전번에도 말했지만 "북한은 내 위에 김정은밖에 없다"는데요. 내 위에 최고지도자 밖에 없어요. "다 같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간부들이 노동자들이 먹지 못하는데, 먹고 못사는데 간부들이 잘 먹고, 잘 살면 안되죠.
유영호 : 종편 방송에서 보면, 아까도 "군에서 자기들한테 국가에서 제공하는 쌀을 인민들과 같이 나눠 먹었다. 인민들한테 다시 나눠주고 이랬다"고 그러는데 종편에서는 거꾸로 "뺏어 왔다"라고 방송을 하더라구. (웃음)
홍강철 : 그때 있잖아요. 김정일 위원장도 줴기밥 먹으면서 다녔어요. 그것도 내가 어떻게 아냐면 우리 군관학교 때 우리 소대에, 그게 97년이잖아요. 우리 소대에 오진우 영감, 오진우(의) 기통수 하던 애가 있었어요. 오진우가 북한에서 2인자라고 하잖아요. 오진우랑 같이 김정일 위원장이 현지시찰 가게 되면 오진우가 같이 가잖아요. 같이 가면 밥을, 자기네 도중밥을 싸가지고 왔던 거, 준비해가지고 왔던 거 먹지 못하고 그냥 가져다 준다는 거죠. 애들 기통수한테다가. 부관들은 다 별달고 큰 놈들이잖아요. 부관운전수 이런 애들은. 그니까 큰 놈들 안 주고 제일 작은 놈, 기통수가 제일 작으니까, 제일 나이 어리니까 막내니까 걔를 준다는 거죠. 먹으라고. (근데) 주는 거 보면 줴기밥이라는 거죠. 줴기밥 안에 된장 넣은 것.
유영호 : 김정일 위원장이 싸온 것?
홍강철 : 예, 김정일 위원장이 줴기밥 싸가지고 와서 오징어랑 똑같이 나눠 먹자고 하잖아요. 그래 한 덩어리씩 주면 그걸 못 먹는거야, 걔네도. 그니까 이렇게 차 타고 전국을 오다나면 보이잖아요. 자기들 눈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불꺼진 공장들. 그러니 차마 넘어 안 가는 거죠. 목구멍에. 그래 먹지 못하고 가지고 오면 (병사들에게) 주곤 했다는 거요. "그래서 장군님 줴기밥은 자주 얻어 먹었다"고 그러곤 했어요, 그 친구가.
김련희 : "당원들하고 간부들이 제일 많이 굶어 죽었다" 이런 거는 일반 탈북자들도 아마 다 알 거예요. 고난의 행군 때, 거 연형묵 총리 있잖아. 자강도 도당책임비서로 내려갔었잖아. 우리 흔히 탈북자들이 말하는 꽃제비, 그게 고난의 행군 때 생긴 건데 어린애들이 먹을 게 없어서 도로에 나가서 동냥하고 이런... 그래 그런 어린 꽃제비들을 몽땅 모아가지고 자기네 집에 같이 살았어요.
유영호 : 아~ 연형묵 총리가?
김련희 : 예. 연형묵 자강도당 책임비서가. 그래서 그 어린애들 몽땅하고, 그 다음에 누가 연형묵 동지를 시기해서 거기도 인간 사는 세상이니까 나쁜 놈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이 (신소)제기서를 잘못 올렸는데 "집에 식모를 두고 있다" 이런 제기가 올라간 거예요. "연형묵 총리가 지방에 내려가더니 집에 식모를 두고 있다."
유영호 : 아~ "자강도에서 집에 식모를 두고 산다"?
김련희 : 예. 그래서 위에서, 평양에서 내려 간 거예요. "어떻게 된 일이냐? 그럴 수가 없는데." 내려가니까 어르신들, 자식이 굶어 죽었고, 집에서 혼자 살아 남았고, 어쩔 수 없이 오갈데 없는 어르신들이 밖에 나가서 꽃제비처럼 다닌거죠. 그 어르신들 몽땅 모아가지고 집에 같이 있었어요. 이걸 잘못 알고 "집에 식모를 뒀다" 했는데, 이 어르신들이 집에서 무슨 일을 했냐면, 자강도에 있는 고아들, 꽃제비들 다 데려다 밥을 먹이고 하니까, 그 밥을 연형묵 총리가 해줄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 할머니들이 집에 같이 살면서 점심 때면 마당에다가 "큰 소여물 끓이는 큰 가마 있죠" 그것을 걸어 놓고 멀건 죽이라도 같이 많이 쑤어 가지고 그 꽃제비들을 몽땅 한 그릇씩 나눠주었대요. 간부들이 다 똑같이 공급이 되는데 그걸 가지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하고 나눠서 먹을라니까 더 많이 굶어 죽은 게 '당원'들과 '간부'들이다. 이건 다 아마...
홍강철 : 우리 아내 있잖아요. 우리 아버지도 고난의 행군 때 돌아가셨거든요. 96년 6월 30일 날에. 그리고 우리 아버지도 당원이예요. 그리고 우리 아내도 고난의 행군 때 오빠하고, 아빠가 돌아가셨거든요. 근데 그 아버지는 용성기계공장의 압연공이었어요. 그래서 압연공은 또 이렇게 힘들잖아요. 압연공 일이. 그래서 압연공은 본래 노동부호물자가 많이 나와요. 그래서 그 사람들 식량공급 기준도 다르단 말이예요. 그래서 고난의 행군 이전에는 잘 살았대요. 지금도 말하면 그러죠. "공산주의는 그때였다"고 "공산주의는 지나갔다" 그런단 말이예요. 그래 잘 살았는데 고난의 행군이 딱 들어서면서 쌀 못 주고 이렇게 되잖아요. 그런데도 아버지는 계속 공장에 출근한 거죠. 아버지도 당원이란 말이에요. 압연공이었고, 혁신자였고, 근데 굶어 죽었잖아요.
유영호 : 그러면 그 당시면 90년대, 벌써 20년 전 아니에요. 20여년 전이기 때문에 그 때 돌아가실 때면은 그렇게 연세가 많지 않았을 텐데.
홍강철 : 예, 그렇죠. 많지 않았죠. 48년생이거든요. 쥐띠 48년생이에요. 그러면 한 50, 쉰 안 됐죠. 마흔 아홉 정도 그 정도 됐어요. 마흔 아홉, 쉰 이정도 됐겠네요.
유영호 : 그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식량문제로 돌아가신 거잖아요. 지금.
홍강철 : 근데 뭐 그렇다고 해서 무슨, 북한에도 그런 말이 있기는 하죠. 당원들은 그렇잖아요. "모든 사업과 생활에서 군중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당원의 의무에 있거든요. 내 이거 국가보안법 위반하는 거는 아니겠지?
유영호 : 지난번 (녹화)에, 입당할 때 군중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면서...
홍강철 : 근데 그래요. 그러니까 어쨌든 먹을 게 생기면 먼저 나는 견딜 수 있잖아요. 네? 그렇지만 나는 준비됐으니까, 그리고 내 가족이 준비됐잖아요. 아버지 결심을 우리 아내도 따르고, 애들도 따른단 말이에요. 당원의 자식들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준비되지 못한 사람들도 있단 말이에요. 그런 사람들한테 자기에게 차려진 것을 돌리는 거죠. 근데 여기 와보면 조선노동당원은 특권층처럼...
김련희 : 특권층올 생각하죠.
홍강철 : 안 그래요. 우린 훈련도 하잖아요. 군대 때 전술훈련! 행군길 가게 되면 당원들이 힘들어도, 나도 힘들죠. 똑같이 장비 메고 똑같이 훈련길 걷는데, 그렇지만 신입병사들은 더 힘들단 말이예요, 걔들은. 그니까 그 애들 무기를 내가 메고, 베낭도 메고 그렇게 가요, 당원들은.
유영호 : 아~ 신병이 고참 것 메는 게 아니고?
홍강철 : 아~ 아니에요. 그게 "혁명적 동지애"죠. 그런 "동지애"가 없이 집단이 유지 못 돼요.
유영호 : 근본적으로 "일심단결로 버텨냈다고 제가 들었다"고 하면 맞는 건가요?
홍강철 : 네, 그렇죠. 네! 그 어떤 사명감이 있는 거 같아요. 북한 사람들은. 자~ 저도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한국에 와 있지만, 지나온 생활을 보게 되면 저도 나쁘다고 생각 안 하거든요. 북한에서 살아온 내 인생을, 40년 인생을. "참 값 비싼 인생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도. 정말 다시는 그때처럼 살라고 하면 살지 못할 것 같거든요. 그렇지만 그때 당시는 누구나 다 똑같았어요. 다 같이 굶고, 다 같이 힘들었고, 그러니까 별로 내가 힘들다는 생각을 안 했단 말이에요.
유영호 : 원래 사람이라는 거는 같이 굶으면 버텨요. 자기만 한끼 못 먹으면 억울한 거고.
홍강철 : 예. 근데 제가 자본주의 사회에 왔잖아요. 여기 와서 부익부 빈익빈의 차이를 너무나 절실하게 절감하고 있어요. 내 본인 자체가 그렇게 많이 느끼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제가 여기 와서 몸으로 체득하는 거죠, 지금.
"줴기밥 먹고 다녔다"는 말이 인상깊네요. 생각할수록 노동자연대에서 낸 문건은 할말하않이에요.
줴기밥은 주먹밥의 조선말입니다. 홍강철 씨의 말이 맞다면 소위 최고지도자도 그렇게 먹고 다녔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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