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련희 : 북에서 고난의 행군 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버렸잖아요. 다른 것도 아니고, 내 것 팔다리가 아니라 목숨까지도 버렸거든요. 근데 그게 어떤 강제된 마음, "너 무조건 영도자라든가 나라를 위해서 무조건 헌신해야 돼" 이렇게 세뇌에 의해 만들어진 강제였다면 목숨까지 못 버려요. 그리고 고난의 행군이라는 10년 세월을 못 버팁니다. 우리가 남쪽에 아파트 하나에 한 달만 전기 끊어볼면 난리날 거예요.
홍강철 : 그렇죠. 한 달이 아니라 하루만 끊어 보지.
김련희 : 난리나죠. "대통령 당장 내려와라!" 난리날 건데. 한 달, 일 년이 아니라 10년을 그렇게 살았다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누구도 반란이라든가 나쁜 마음을 먹지 않았다는 거죠.
유영호 : 사실은 '고난의 행군'이나 모든 주제가 그렇지만 한 시기, 짧은 시기가 아니고 또 참 많은 얘기가 있어요. 나도 좀 전에 "지하자원 팔지 말라" 그러는데, 저는 그런 것들을 영화를 통해서 봤어요. '우리 위원장' 맞을 겁니다. <우리 위원장>이라는 영화에서 보면은 그 공장을, 그 고난의 행군 그 시기에 다시 재건해가고 뭔가 새롭게 할려고 하는데 모 지배인인가 부위원장인가 하는 그 사람은 그 군 내에 있는, 한 일개 군(郡)인데, 군에서 많이 나는 지하자원, 화강암인가 뭔가 화강석, 그게 해외에 많이 팔린다 해가지고 그 사람은 그걸로 위기를 넘길려고 하는 건데, 그걸 막는 장면이 나와요, 위원장이. "우리 후대의 재산이다"라고 그래야 하나, 그런 식으로. 저들이 저 제국주의 일본, 일본하고 거래하는 건가 그렇게 나와요. 영화 속에서. "근데 (일본이) 제 가격도 쳐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후대의 재산이고 그거는. 그런 식으로 이 위기를 모면하는 거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 이런 식의.
("확실히 자본주의는 소리치며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약해진 마음 속에 모기새끼처럼 소리없이 기어들어오는 것"이라며 부위원장을 비판하는 위원장 -영화 <우리 위원장> 중에서)
홍강철 : 저도 기억에 의하면 저 뭐야~ <자강도 사람들>이라는 영화 있잖아요. 거기서도 나오거든요. 그 어떤 한 일꾼이 그 위기를 모면하자고 나무를 팔아서 중국에다가 나무를 팔아가지고 그 돈으로 쌀을 사오자. 뭐 그렇게 하는 건데. 그 열차에다 싣고 출발하는 거. 그 당비서가 알아서 막 막아서고. 막 이렇게 하는 거 있어요. 또 실제도 그때 평안북도 자강도 이쪽에서 그렇게 했거든요. 그래서 국경경비대에 있을 때란 말이에요. 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때 당시에, 저는 시키는 대로 안 하는 그런 스찔(스타일)이라는 말이에요, 성격이. "이거 해라!" 하면 안 하고 삐져 나가는, 그런 성격이었어요. 그때도 고난의 행군 때 주둔구역에 나가보게 되면 인민들이 굶잖아요. 그리고 잘 못 먹는단 말이에요. 먹을 것도 없고. 나라에선 "밀수, 밀수보장하지 말라"고 그렇게 하죠. 법은 그렇거든요. 그런데 제가 국경 지키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주변 인민들이 굶는다고 내가 눈감아 줬거든요. 눈 감아 주고 거기에 또 동조해줬어요. 내가 또 막 해주고.
유영호 : 아~ 밀수하는 사람을 눈 감아주고?
홍강철 : 예, 그랬죠. 내 같은 놈들도 있었던 거예요. 그때 그 이야기를 몇 분 안에, 한 두 시간 안에 말 못하죠. 며칠을 걸쳐서 그때 이야기를 하면 정말 그래요. 우리 집에서도 그때 이야기 드문이 가다가 어쩌다 한번씩 하거든요. 제가 이렇게 밥 먹을 때는 그러죠. 아내랑 밥맛이 없다고 밥 먹다가 안 먹고 그렇게 하면 "야, 불쌍한 북녘 동포들 생각해서 다 먹어라. 고난의 행군시절 생각해서 다 먹어야지." 그러긴 해요. 그렇게 말이 나오게 되면 그때 이야기를 하거든요. 꼭 울다가 끝나요.
유영호 : 그래 저는 자강도에서 "대용식품", 정상적인 식량이 공급이 안 되니까 산나물이든 뭐든...
홍강철 : 니탄도(대용식품으로).
유영호 : 난 그 영화에서 보니까 "실제 있었다" 그러더라고요. 대용식품 박람회,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다른 건 사실상 모르겠어요. 뭐 뽕잎죽, 뽕잎 이런 것들은 다 그런데(이해되는데) '니탄떡', '니탄국수'. '니탄'이 처음에 뭔가 그랬어요. 니탄이 석탄이야, 석탄. 석탄의 초기화 상태. 닥딱하게 굳기 전에....
홍강철 : 예, 그래요. 열랑이 없는... 열량이 석탄처럼 그러면 안 되는 그런 거죠.
유영호 : 그니까 쉽게 말하면 흙 같은 거예요. 흙 같은 거. 낙엽 이런 게 쌓여서...
홍강철 : 예, 회색 비슷하게 나요, 색깔이. 그런데 진흙처럼 그렇단 말이에요, 그게.
유영호 : 그걸로 떡을 만들어 먹고, 영화 속에서도 보면은 그렇게 나와요. "이걸 어떻게 먹냐?" 그러니까 "일제시대 때 그렇게 먹었다"고 그러더라고. 일본놈들이 다 수탈해갈 때 그 당신에, 그러면서 니탄 먹는 법을 일제 시대 때에 사셨던 어떤 할머니를 통해서 방법을 알고 니탄을 다 긁어 가지고 거기다가 옥수수 가루를 좀 섞어서, 거기서도 "니탄만 못 먹는다. 옥수수 가루를 섞으면 먹을만 하다."
홍강철 : 그 다음에 칡뿌리 있잖아요, 칡뿌리. 칡뿌리 이제 그 가루를 내 가지고 이거 앙금 맞춰서 그래서 그걸 섞어서 또 먹고. 그렇게 해요. 도토리도 가루 내 가지고 있잖아요, 도토리 그 도토리 그거 많이 먹게 되면 짐이 되거든요. 그래서 많이 먹으면 안되는데 그럼 그래도 먹을 게 없으니까. 그거 다 섞어서 먹죠.
유영호 : 여기서는 칡즙만 먹는데, 짜가지고. 즙을 쫙~ 내면 그거 뭐라그냐, 섬유질 같은 거 남잖아요. 그걸 먹는데.
홍강철 : 그걸 말려서 가루 내가지고 섞어서 먹고, 심지어 옥수수뿌리 있잖아요. 옥수수뿌리 털어가지고 옥수수뿌리도 말려서 옥수수랑 도토리랑 섞어서 국수도 누르고 그렇게 해서 먹고 그랬죠.
유영호 : 내 아까도 얘기했지만 대용식품 박람회에 칡뿌리떡, 그 다음에 칡떡, 배추뿌리, 배추뿌리로 떡 내고, 뽕잎죽, 뽕잎 뭐 이런 걸로.
홍강철 : 그때 그 시절에 우리 아버지 친구 분인데 우리 집에 와서, 그때 그렇게 힘들 때에도 술은 있었거든요. 그 힘들 때에도 술 파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도토리 가지고. 도토리 가지고도 만들고 해서. 그래 술 마시는데 아버지 친구 분이, 내 지금 생각나요. 그때 내 휴가 받고 집에 갔을 때거든요. (군관)학교 가기 전에. 그런데 그 친구 분이 하시는 말씀이 그러죠. 지금 애들은... 그런데 그 속에서도 결혼식도 하고 애도 낳고 했다는데요. 그렇게 어려운 속에서도 온 동네가 모여서 잔치를 하고, 다 부조해서 그렇게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친구 분이 그러죠. "요즘 애들은 애 키우는 거 얼마나 쉽게 키우는지 모른다"고. 그래 우리 아버지 있다가 "그게 무슨 소리지? 뭐야?" 그러니까. 그 친구 분이 하시는 말씀이 자기네 때는 애들 데리고 식료상점에 가게 되면 사탕 과자 가득하잖아요. 애들이 "저거 사 달라. 저거 사 달라"해서 힘들었다는 거죠. 그런데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식료상점에 가도 간장, 된장 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살 게 없잖아요. 애들이 봐도 보여야 사 달라고 하지. 그러니까 쉽게 키운다는 거죠.
유영호 : 엄마, 아빠한테 뭐 사달라고 칭얼대지 않는다?
홍강철 : 예, 칭얼대지 않는다고.
유영호 : 살 게 없다, 살 게?
홍강철 : 있어야 사지. (웃음)
유영호 : 되게 유머가 있네요.
홍강철 : 그래도 그 시기에도 그렇게 힘들었을 때도 결혼식도 하고, 환갑도 하고, 다 했다는데요. 심지어 장례하잖아요. 그 숱한 사람들이 돌아갔잖아요. 그런데 장례하게 되면 온 인민반에서 십시일반 모아요. 쌀, 옥수수, 쌀 모은단 말이에요. 그렇게 해서 그 집의 장례를 치러주고, 공장에서는 관 짜서 산으로, 자기도 먹지 못해 힘이 없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울컥) 돌아가는 사람 묻어야 되잖아요. 그래 산에 가서 곡괭이질 해서 땅 파서, 그렇게 살았어요. 그 속에서도. 그게 사람 냄새나는 세상인 거예요, 그게. 전 정말 우리 한국 사회도 그런 사람 사는, 사람 냄새나는 그런 사회였으면 좋겠습니다.
조선은 끝까지 버텨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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