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6523cab140ab44caaf1c6bb11f11a395f05d08de8ec12aa


△ 엥겔베르트 돌푸스. 1933~34년 당시 정변을 통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파씨즘으로 대체한 장본인이다.




1.

돌푸스의 파쑈독재는 힌덴부르크에서 히틀러로 정권이양이 진행된 독일의 사례보다 명백하게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자장에서 자라났. 돌푸스(오스트리아 수상)는 서유럽 전역을 통틀어 "파씨즘에 대항하는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인식됐다. 이러한 시각은 돌푸스 자신이 파씨즘으로 이행을 꾀하고 있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당의 용인과 지원으로 나날이 힘을 얻어갔다. 노동자 봉기가 일어나기 바로 전날까지 사회민주당은 한결같이 돌푸스의 계엄독재와 의회민주주의 체제의 일시적인 기능 정지, 그리고 더 나아가 과두정의 형태를 띤 국가기관에 대해 용인하는 자세를 보이며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정치활동의 보장이라는 조건 하에서 파씨즘을 받아들인 사회민주당은 사회파씨즘 노선의 가장 노골적이고 명백한 면모를 드러냈다. 사회민주당의 "차악"책은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참담한 말로를 맞이했다.


- R. Palme Dutt, 《Facsism and Social Revolution: A Study of the Economics and Politics of the Extreme Stages of Capitalism in Decay》, p. 87




2.

《위험에 처한 오스트리아 민주주의(Der Aufstand der Osterreichischen Arbeiter》라는 제목의 팜플렛에서 바우어는 1933년 3월의 중요했던 나날들을 놓고 다음과 같이 논한다.


"노동자들은 전투의 신호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철도노동자들은 11달 후에 겪게 되는 것처럼 현장에서 참혹하게 짓밟히지 않았다. 정부측 군사조직은 당시 1934년 2월보다 현저하게 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제때에 승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에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우리는 협상을 통해 평화적인 해결책으로 여전히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돌푸스는 3월 말, 또는 4월 초순 이내로 조속한 시일에 헌법 개정과 의정에 대한 논제들을 놓고 협상에 나설 것을 우리에게 약속했다. 우리는 돌푸스의 약속에 완전히 속아넘어갔다. 피비랜내 나는 내전의 재앙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원했기 때문에 우리는 싸움을 미뤘다. 내전은 결국 일어났다. 그러나 우리 측한테 덜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돌푸스와의 타협은 우리가 저지른 모든 실수들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실수였다."


사회민주당은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부터 노동계급을 보호"했는가? 그렇지 않다. 오직 패배만을 보장했을 뿐이었다. 바우어는 1933년보다 1927년이 사회민주당에게 보다 유리한 정세였고, 1927년보다 1918~1919년에 그랬던 것처럼 "사회민주당이 1933년 3월에 행동을 개시했다면 승리의 전망이 보다 더 밝았을 것"이라고,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다"고 토로한다. "평화" 정책은 결국 내전을 예방하지 못했으며, 노동계급에게 가장 불리한 조건들을 창출했을 뿐이었다.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은 승리를 대신하여 가장 치명적인 패배를 노동계급에게 안겨주었다. "오스트리아 맑스주의"는 이른바 자멸의 길로 빠져들었다.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의 대기론적인 방침은 파씨즘이 입지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예비했다. 노동자 방위대는 불법화됐다. 공산당 역시 마찬가지로 불법화됐다. 하임스베르(Heimswehr, 오스트리아 파쑈집단의 군사조직 - 역자 주)의 통제력은 공고해졌으며, 인원 전체를 통틀어 무장이 강화됐다. 노동자들이 보유했던 무기들은 찾아낸 장소에서 즉시 압수수색이 이루어졌다. 지역 지도자들은 체포당했다. 철도노동자들과 노동운동의 헌신적인 투사들이 전략적 요충지에서 가장 먼저 요주의 대상으로 제거당했으며, 이들을 대신하여 "애국자"들이 자리에 들어섰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일체의 저항도 없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노동자들은 저항에 나설 것을 요구하며 요구의 세기를 더해갔다. 그러나 사회민주당 지도부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저지함으로써 파씨즘에 충실하게 복무했다. 1934년 2월 18일 《제 II 인터나쇼날 회보》에 나온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지도자"의 "최초보고"에 따르면,


"당국의 정책에 대한 노동계급의 분노는 날이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노동자들의 분노는 시간이 흐를수록 노동계급에게 대기할 것을 요구하며 타협에 골몰했던 당 지도부에게 향했다. 당원들은 돌푸스에 대한 공세적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주장에 강도를 더해갔다. 지난 수 달 동안 일반 당원들의 요구는 당 집행기관이 당원들에게 대기론에 입각한 정책의 필요성을 납득시킬 수 있게 하는 과정에서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난항을 초래했다."



- R. Palme Dutt, ibid., pp. 95~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