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한의 반골, 홍강철의 인생


홍강철 : 웃기는 이야기인데 북에서 강연하는데 강연할 때면 북으로서는 그렇죠. "남한은 교통지옥이고, 교통사고가 몇 분에 한 번씩 나고" 뭐 이런단 말이에요. 강연할 때에. 그럼 얘들이 또 그래요. "그런데서 어떻게 사냐?"고. "그런 교통지옥에서 어떻게 사냐?"고 그러죠. 그러면 제가 또 그래요. "이 새끼들이 콱! 차가 얼마나 많으면 차사고가 그렇게 많이 나겠냐?" 저는 (사고)체계가 좀 달랐던 말이에요. 거기 있을 때 달랐어요, 제가. 여기로 오니까 또 다르잖아요. "차가 얼마나 많으면 교통사고가 그렇게 나겠나? 얌마! 우리나라처럼 가물에 콩나듯이 지나가봐라! 술 먹고 취해서 운전해도 절대로 차 사고 안나는 거야." (일동 웃음) 이제는 좀 다르긴 한데, 도로가. 근데 그래도 같아요. 연유(휘발류, 디젤유)가 없잖아요. (미국이) 금수조치에 의해서. 그래서 차가 있어도 못 뛴단 말이에요. 그니까 자동차 있어도 없으나 마찬가지예요. 가물에 콩나듯 차 한대씩 지나가봐요. 그렇게 하면 차사고 안 나지. 절대로 안나요. 근데 여기는 차가 너무 많잖아요. 제가 북한에 있을 때 생각이, 제 생각이 그랬단 말이에요. 제가 영 못되게 놀았어요. 이렇게 혁명전적기 있거든요. 이렇게 전적지 답사를 가요. 가는데 여기 우리 잠덕이라는 곳에 갔는데 거기다 이렇게 썼어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1933년 3월 몇 일 도강하신 장소". 딱 썼단 말이에요. 우리 탈북하는 것 보고 "도강"이라고 말하잖아요. "도강"이라고 말하거든요. 여기서는 "탈북자"라고 말하는데 북에서는 "도강자" 이렇게 말해요. 도강자라고 이렇게 말한단 말이에요. 탈북자라고 말 안 해요, 거기서는.


유영호 : 두만강, 압록강을...


홍강철 : 그래요. 도강해서 넘어간 사람. 그래서 도강자라고 말하는 거죠. 근데 여기다 "도강하신 장소"라고 그렇게 쓴 거예요. 제가... "도강쟁이" 이렇게 부른단 말이에요. 북에서도. 도강쟁이 이렇게 불러요. 그래 제가 그랬죠. 그것을 척 보고, "야~ 수령님도 도강해 갔네..." (일동웃음) 수령님도 도강하니까 봐라 임마! 지금도 도강쟁이 끊어 안지는 것을." 제가 그런 거예요. 초급당비서가 옆에서 들었죠. 저기 군당위원회에서 누가 온 거예요. 그래 끌려가서 비판서까지 썼대죠, 제가. "혁명적 수령관이 철저히 서지 못했다"고. 제가 원래 북에서 살 때 그렇게 살던 사람이에요.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았다는 것은 아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단 말이에요, 여기에. 남한에 와 있는 탈북자들 중에. 그런데도 국정원이 나를 간첩으로 만들어 버렸잖아요. (인용자 주 : 홍강철은 국정원의 꾐에 넘어가 북한군 보위사령부 간첩이라는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7년 간의 법정투쟁 끝에 1심에서 3심까지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유영호 : 예, 저기 "(홍강철씨가) 아는 사람이 많다"고 그러는데 탈북자들 한 3만 5천 명쯤 되는데 정확한 프로테이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은 다 두만강, 압록강 국경지역에서 온 것이고, 여기 김련희씨처럼 평양에서 온 사람은 극소수예요. 극소수이고 내륙에서 온 사람들은... 그리고 또 어쨌든 국경지역인데 특히 여기 홍강철씨 고향인 무산이 많아요. 무산이 제일 많아요. 그래서 아마 여기는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람들일 거예요. 여기 탈북자들하고는. 그런 것이고.



#2. 우리가 숙청이라고 부르는 '혁명화'


홍강철 : 제가 박준영 변호사랑 같이 강연 자주 나가거든요. 강연가보게 되면 공무원들 강연이 많아요. 무슨 구청 같은데서도 많이 하고. 뭐 경찰청, 검찰청 이런 곳에도 가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공무원들한테 강연 가보게 되면 완전히 힘들어요. 여기는 웃잖아요. 공무원들은 안 웃어요. (관중 웃음) 그니까 이렇게 벽에다 대고 혼자 말하는 것처럼 완전 짜증 확 나거든요. 그럴 때가 많아요. 이렇게 웃는 게 좋잖아요. 딱딱하면 안되죠. 제 여기 와서 "공무원들이 왜 그러나?" 하는 것을 제 나름대로 생각해본대 의하면 여기는 용서하는 문화가 없어요. 용서하는 문화가. 정치인들 뭐 이런 스캔들 많이 터지잖아요. 네? 그러면 한번 매장되면 다시는 일어 못 서죠. 제 개인적으로 정봉주 전 의원도 알고 그러거든요. 제가 개인적으로. 그리고 뭐 민주당 쪽에는 아는 분들 많아요. 그릐고 평화민주당인가? 그쪽에도 아는 분들이 몇 있고 그런데. 그 분들 보게 되면 다 같더라고요. 한번 매장되면 다시는 일어 못 선다는 것을 알죠. 저도 지금 여기서 살고 있잖아요. 지금. 저도 "내가 이 사회에서 한번만 사회적으로 매장만 되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늘 머리 속에 있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언제나 절제하고, 또 재고, 또 재며 행동을 해요, 제가. 북은 북에서 간부들이 잘못하게 되면 "혁명화"를 가거든요. 혁명화는 대체로 6개월부터예요. 혁명화를 가서 노동자, 농민들 속에 다시 들어가서 함께 일하면서 "내 잘못이 뭐였나? 내가 앞으로 이 잘못을 고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 자기를 철저하게 반성하는 거죠. 그러면 같이 일하는 노동자, 농민들이 보고 "저 사람은 자기 과오를 다 고쳤다"고 인정이 되면 그 사람들이 평정서를 써서 줘요. 위에다가. (혁명화를) 마친 다음 "이 사람을 다시 간부로 등용해서 쓰라"고. 그러면 다시 등용돼서 할 수 있는 거예요, 일을. 그러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잘못도 인차 인정하잖아요. "내가 잘못했습니다." 적극 인차 말하죠. "잘못했습니다. 고치겠습니다." 고치면 되는 거죠.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거든요. 신이 아닌 이상은 누구가 잘못할 수 있어요. 그러면 그 사회가 어떻게 그 사람에게 재생의 길을 열어주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이 사회에 대한 애정이 생기는 거죠. 근데 사회가 나한테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안 주잖아요. 그러면 반사회적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만이 허물어지는 게 아니고 그 사람 가족이 다 허물어지잖아요. 참 여기 와보니까 그건 문제인 것 같아요.



#3. 경찰보다 무서운 게 '조직에서의 비판'


김련희 : 근데 그게 어쩔 수가 없어요. 자본주의인... 나도 여기 와서 놀랐던 게 우리가 여러분들이 이따금씩 범죄도 좀 저질러 주고. 아파도 주고. 그래야 변호사, 판사, 검사, 의사들도 먹고 살지. 여러분들이 범죄를 안 저질러 주면 변호사들 깡통차고 나서야 돼요.


홍강철 : 근데 여기 있는 분들 중에서는 (범죄를) 저지르실 분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김련희 : 그럼 변호사들...


홍강철 : 그니까 정치인들이, 그 다음엔 재벌들이 죄를 지어야 변호사, 검사들이 먹고 살지...


김련희 : 그것들은 빠져나가! 미꾸라지처럼... 심하게 한 놈들만 감옥에 잡히는 거야. 근데... 말씀?


홍강철 : 아이~ 하십시오. 어차피 사색 중입니다.


김련희 : (웃음) 근데 북에는 국가간에 다른게 뭐냐면, 남쪽에는 범죄자가 꼭 필요한 사회이고, 그래야 범죄자가 잇어야 누군가가 덕을 볼 수 있는 이런 게 있고. 북은 뭐냐면 예방범죄라는 시스템이 있어요. 어떡하나 범죄자를 만들지 말아야 해요. 범죄자를 만들게 되면... 우리 여기에, 여러분들 지역에 파출소라고 있지요? 근데 그 파출소에 있는 경찰들이 어느 경찰이 우리 아파트를 담당했는지 누구도 모르죠, 여러분들? 근데 북에는 모두가 담당제이기 때문에 파출소가 있다면 거기에 경찰(보안원) 한 명 있어요. 담당 보안원(경찰관)이 따로 있어요. 그래서 아파트 몇 개씩 담당을 하는데. 1년 동안 쭉 있다가 "올해 1년 동안 내가 담당한 지역에서는 범죄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하게 되면 특진하게 되고 상금도 받게 돼요. 근데 내가 담당한 지역에서 "범죄자가 이번에 3명 나타났습니다" 하게 되면 처벌(비판)받아야 돼요. 그러니까 어떻게나 따라다니면서 "제발 어떤 범죄가 있을 수 있으니까 주의하세요!" 그러거든요. 그래서 예방범죄인데 범죄자 처벌단계가 3단계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마트에 가서 라면을 하나 훔쳤을 때 제일 먼저 누가 달려와요?


관객 : 마트판매원!


김련희 : 경찰이 먼저 달려오지 않을까요?


홍강철 : 아~ 누님! 범죄도 못 저질러 보고서 무슨... (웃음)


김련희 : 아니 글쎄~


홍강철 : 여기 범죄자 있잖아요. (일동 웃음)


김련희 : 근데 우리는 뭘 잘못해서 범죄가 처음에 생기면 경찰이 무서운 게 아니라 조직이 제일 무서워요. 자기 단체(집단)에 제일 먼저 통보되어 가지고 집단에서 생활총화 때 비판을 받는단 말이에요. 그래서 단체에서 교양을 해요. 첫째가 교양이죠.


홍강철 : 여기 있잖아요. 여기는 단번에 잡아가죠. 용서라는 게 없잖아요, 네? 사람은, 내가 아까 말했죠. 누구나 잘못 범할 수 있다고. 북에서는 주의-경고-엄중경고-책벌 이렇게 되어 있단 말이에요. 처벌하는 수위가. 4번은 내가 용서받을 수 있어요. 책벌까지 벗어나면 이건 정치조직에서 주는 거거든요. 그리고 이 5번째를 넘어... 그러니까 체포영장 발포할 때 당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는 것은 "당조직에서 더는 책임지지 못하게습니다" 하고 (체포영장을) 승인한 거예요. 그래서 체포영장이 발부되거든요. 제가 나쁜 짓 많아 해서 잘 알죠. 근데 이거 본론에서 너무 나간 것 같습니다. (일동 웃음) 우리 원래 자꾸 삐져 나가기 잘 하죠, 본론에서. 이거 본론이?



#4. 북한 건달과 남한 조폭의 만남


홍강철 : 제가 지금 여기서는 말 잘하잖아요. 북에서 살 때는 이렇게 안 살았거든요. 제가 북에서는 건달이었습니다. 재심전문변호사 박준영이라고 있거든요. 박준영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 도와서 제가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래슈퍼 강도사건', 그 다음에 현재 '낙동강변 2인조 강간살인사건'. 그 사건들 재심을 도왔거든요, 제가. 그러면서 어떤 증인 한 분을 만나야 되는데, 그 증인들이 좀 무서웠나봐요. 전화가 왔는데 조폭하고 오늘 증인을 만나게 돼 있었는데, 부산에서 만나게 돼 있었거든요. 서면에서. "조폭하고 같이 나온다"고 그런더라는 거예요. 변호사님이 내게 전화왔는데, 나보고 "좀 같이 좀 나가자"고. 그렇게 나오는 거죠. 그래서 제가 같이 나갔어요. 제가 건달이었거든요, 북한에서. 그니까 박변호사도 (내가 건달인 것을) 아니까 나한테 전화 온 거죠, 그렇게. "같이 나가자"고. 제가 그런 사람이었어요. 근데... 내가 (북에) 살 때는 모르잖아요. 내가 행복한지, 어떤지 모른단 말이에요. 집을 떠나봐야 아는 거잖아요. 제가 북에 있을 때 북한법 어기고, (대북)송금도 받아주고, 탈북도 시켜주고 내가 이랬어요. 그러다 체포영장이 떨어졌단 말이에요, 나한테. 그래서 도망쳐 왔거든요. 이리로. 근데 여기 와서 그 다음에 내가 살던 땅, 내가 몸 담았던 조직을 다시 돌아보잖아요. 다시 돌아보니까 "아~ 이거는 아니구나" 하는 것을 제가 이렇게 두 사회를 대비해보니까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이 방송(왈가왈북)을 같이 하게 됐죠... (제가) 말을 너무 많이 하는데...? (웃음)


유영호 : 예~, 너무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일동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