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로셴코 동지의 주요한 오류는 그가 생산력의 역할 문제와 사회 발전에서의 생산관계의 역할 문제에 관한 맑스주의적 견해를 보지 않고, 생산력의 역할을 터무니없이 과대평가하고 또한 마찬가지로 생산관계의 역할을 터무니없이 경시하며, 사회주의 아래에서는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구성부분이라고 선언하면서 끝맺는다는 점이다.
(...) "적대적인 계급적 모순"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생산관계가 "더 이상 생산력의 발전에 모순되지 않는"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서, 이 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야로셴코 동지에 따르면 생산관계는 모든 독자적인 역할의 흔적을 상실하고 발전의 중대한 요인이기를 멈추며 생산력에 의해 흡수되는 생산력의 구성부분이 된다. 사회주의 아래에서, 야로셴코 동지는 말한다. "인간들의 생산관계는 하나의 수단, 생산력의 조직화의 요소로서 생산력의 조직화의 일부분이 된다." (C.C. 정치국에 보내는 야로셴코 동지의 편지)
만약 그렇다면, 사회주의 정치경제학의 주요한 임무는 무엇인가? 야로셴코 동지는 답한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정치경제학의 주요한 문제는 수많은 사회주의적 생산의 생산관계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생산에서의 생산력의 조직화와 과학적 이론, 경제 발전을 계획하는 이론을 정교화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전체 토론에서 야로셴코 동지의 연설.)
사실상, 그것은 왜 야로셴코 동지가 스스로 단지 스콜라적 논쟁을 유발시킬 뿐인 사소한 문제들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경제에서의 소유의 상이한 형태들(주 - 쓰딸린의 저작에 따르면 집단적 소유와 전인민적 소유가 있다), 상품 유통, 가치 법칙 등의 존재와 같은 사회주의 체제의 경제적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가를 설명해 준다. 그는 자신의 사회주의 정치경제학에서는 "매우 빈번하게 우리에게 스콜라적인 성격을 지니는 사회주의 정치경제학의 어떤 특징적인 범주들―가치, 상품, 화폐, 신용 등―의 역할에 관한 논쟁은 사회주의적 생산에서의 생산의 합리적인 조직화에 관한 건강한 토론으로, 그러한 조직화의 정당성의 과학적인 논증으로 대체된다"고 솔직하게 선언한다.
야로셴코 동지는 '생산력의 합리적인 조직화'를 배치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사회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어떤 특별한 어려움 없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것이 공산주의로의 이행에 매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회주의 아래에서는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을 위한 기본적인 투쟁이 생산력의 적절한 조직화와 사회적 생산에서의 그 합리적인 활용을 위한 투쟁으로 환원된다"(전체 토론에서의 연설)고 솔직하게 선언한다. 야로셴코 동지는 "공산주의는 사회적 생산에서 생산력의 최고의 과학적 조직화이다"고 엄숙하게 공표한다.
그렇다면, 공산주의 체제의 본질은 "생산력의 합리적인 조직화"와 더불어 시작되고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 사회주의 아래에서의 사회적 생산은 생산력의 조직화로 환원된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맑스주의는 사회적 생산을 두 개의 분리할 수 없는 측면―사회의 생산력(자신이 필요로 하는 물질적 가치들을 자연의 힘과 겨루어서 확보하는, 자연의 힘에 대한 사회의 관계)과 생산관계(생산의 과정에서 인간들 상호간의 관계)―을 가진 완전한 전제로서 간주한다. 이것들은 서로가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생산의 상이한 두 측면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사회적 생산의 상이한 측면들을 구상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것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측면들 가운데 하나가 다른 하나에 의해 흡수되어 후자의 구성 부분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맑스주의에 대한 심각한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 《스탈린 선집》 2권, 전진출판사, 275~278쪽 中.
덩샤오핑과 그 추종자들이 이 글을 읽었어야... - dc App
수정주의 정치인들의 공통점이 생산력을 주로 강조하면서 생산관계를 등한시했다는 것이죠. 보즈네쉔쓰끼도 그런 입장에 서 있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