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lodong.org/wp/archives/16428
위 글에 따르면, 자발적 복종에 기반한 규율 있는 당을 만들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질문 두 가지)
1. <좌익적 오류(맹동주의)와 우익적 오류(기회주의)를 극복한, 역사적 상황에 대한 체계적 원칙>이 이데올로기가 이데올로기이기 위해선 갖춰야 할 내용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2. 나아가, 여기 분들이 평가하시기엔 당을 만들기에 이데올로기가 충분히 발달했나요? 남한 내에서 말입니다.
(이하는 글을 읽다가 해본 생각인데, 이에 대해서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남겨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가 100년이 넘어가며 논의가 충분히 쌓였으니 문제는 그 논의를 체화하지 못한, 혹은 중론을 형성하지 못한 현재의 운동에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지만
위 글에선 과학활동의 결과물인 이데올로기(과학적 사회주의)와 집합적 실천(변혁운동)을 서로 개념적으로 분리된 것으로, 이데올로기를 실천의 선결조건으로 파악한 것 같은데요
둘이 개념적으로 분리되는 게 당연하고, 운동의 맨 처음 국면에선 당연히 어느 정도의 내용을 갖춘 이데올로기는 선결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이데올로기의 발전 정도가 완벽한 수준에 비해선 모자람이 있을지라도, 실천을 통해 보완·발전될 수 있진 않을까요? 써놓고 보니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긴 한데..
그러니까, 제가 궁금했던 건 이거였어요: 아직 남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본격적 실천을 전개하기에도 준비가 안된 것인지..?
“ ……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시대까지 지동설이 비과학이고 천동설이 과학이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같은 천문 관측 데이터를 놓고 천동설로 설명하는 것이 지동설로 설명하는 것보다 어거지 설명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지동설이 깔끔하지 못하고 자꾸 ad hoc 설명을 갖다 붙여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천동설이나 지동설이나 천체의 궤도를 완전한 원형 궤도로 보고 있었기 때문인데, 실제 천체의 궤도가 타원형이라는 것은 훗날 케플러가 밝혀낸다. 문제는 천체의 궤도가 타원형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는 것조차 관측상 반례에 부딪혔다는 것인데, 그게 바로 연주시차 문제다. 간단히 말해 천체의 궤도가 타원형이라면 실제 천체가 같은 자리에 돌아오는 시간(혹은 같은 시간에 돌아오는 위치)에 오차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관측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미세한 연주시차를 관측할 수 있을 정도의 정밀성을 가진 망원렌즈가 만들어진 이후에나 해결된다. 즉, 천문학에 있어 영웅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가능하게 한 것은, 과학자가 아니라 유리세공사였다는 뜻이다.
이처럼 대상적 진리라는 것은 개별 인간의 순수 이성에 의해 파악되는 것이 아니며, 집합적 실천의 큰 흐름 속에서 관측 영역이 넓어지는 것으로 마르크스는 보았다. ……” → https://m.dcinside.com/board/kpd/58351
위 글에 따르면, 자발적 복종에 기반한 규율 있는 당을 만들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질문 두 가지)
1. <좌익적 오류(맹동주의)와 우익적 오류(기회주의)를 극복한, 역사적 상황에 대한 체계적 원칙>이 이데올로기가 이데올로기이기 위해선 갖춰야 할 내용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2. 나아가, 여기 분들이 평가하시기엔 당을 만들기에 이데올로기가 충분히 발달했나요? 남한 내에서 말입니다.
(이하는 글을 읽다가 해본 생각인데, 이에 대해서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남겨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가 100년이 넘어가며 논의가 충분히 쌓였으니 문제는 그 논의를 체화하지 못한, 혹은 중론을 형성하지 못한 현재의 운동에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지만
위 글에선 과학활동의 결과물인 이데올로기(과학적 사회주의)와 집합적 실천(변혁운동)을 서로 개념적으로 분리된 것으로, 이데올로기를 실천의 선결조건으로 파악한 것 같은데요
둘이 개념적으로 분리되는 게 당연하고, 운동의 맨 처음 국면에선 당연히 어느 정도의 내용을 갖춘 이데올로기는 선결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이데올로기의 발전 정도가 완벽한 수준에 비해선 모자람이 있을지라도, 실천을 통해 보완·발전될 수 있진 않을까요? 써놓고 보니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긴 한데..
그러니까, 제가 궁금했던 건 이거였어요: 아직 남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본격적 실천을 전개하기에도 준비가 안된 것인지..?
“ ……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시대까지 지동설이 비과학이고 천동설이 과학이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같은 천문 관측 데이터를 놓고 천동설로 설명하는 것이 지동설로 설명하는 것보다 어거지 설명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지동설이 깔끔하지 못하고 자꾸 ad hoc 설명을 갖다 붙여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천동설이나 지동설이나 천체의 궤도를 완전한 원형 궤도로 보고 있었기 때문인데, 실제 천체의 궤도가 타원형이라는 것은 훗날 케플러가 밝혀낸다. 문제는 천체의 궤도가 타원형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는 것조차 관측상 반례에 부딪혔다는 것인데, 그게 바로 연주시차 문제다. 간단히 말해 천체의 궤도가 타원형이라면 실제 천체가 같은 자리에 돌아오는 시간(혹은 같은 시간에 돌아오는 위치)에 오차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관측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미세한 연주시차를 관측할 수 있을 정도의 정밀성을 가진 망원렌즈가 만들어진 이후에나 해결된다. 즉, 천문학에 있어 영웅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가능하게 한 것은, 과학자가 아니라 유리세공사였다는 뜻이다.
이처럼 대상적 진리라는 것은 개별 인간의 순수 이성에 의해 파악되는 것이 아니며, 집합적 실천의 큰 흐름 속에서 관측 영역이 넓어지는 것으로 마르크스는 보았다. ……” → https://m.dcinside.com/board/kpd/58351
1. 역사적 조건에 입각하여 체계적인 원칙을 입안하는 것은 그 나라가 처해있는 토대에 대한 인식과 분석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 혁명이 당면 과제일 경우 민주공화국의 건설을 제시하면서, 사회주의라는 전망과 연계성을 확보해야 하지요. 당의 전략과 전술, 사상을 구성하는 과정은 하부구조에 대한 분석에서 기본적으로 출발합니다. 좌익기회주의는 역사적 사례들에서 보면 사회구성체에 대한 접근이 미진한 나머지, 이스투리아스 '쏘비에트'나, '사회주의 공화국'의 건설을 즉자적으로 주장하는 경우에 속하며, 우익기회주의는 노동자-농민의 민주독재라는 특수한 이행형태와 민주주의 혁명,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의 유기성을 충분히 맺지 못한 데에서 비롯되지요.
1-1. 사회구성체 논쟁이 80년대에 강조됐던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비롯됩니다. 혁명을 위한 사상이론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실천과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죠.
1-2. 대중의 의식을 토대의 문제와 함께 고려할 필요성도, 이데올로기의 내용적 확립에 있어 상당히 중요합니다. 사회주의를 구호의 나열이라는 방식으로 표방한다고 해서, 혁명이 고양되는 정세나,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충분한 물적 조건이 확립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구호로 남게 되는 것이지요.
1-3. 바로 그렇기 때문에, 1-1과 1-2에서 논해지듯이 대중의 의식 수준과 사회구성체, 생산관계와 생산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혁명적 언사를 나열하며 운동을 펼치는 것은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게 드러나는, 내용이 없는 실천으로 전락하여 좌익기회주의의 위험성과, 더 나아가 혁명의 패배라는 위험성을 앉고 있는 것이죠.
2. 남한 사회에서 전위를 구성할 정도의 이데올로기는 아직까지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1990년대 쏘련의 해체 이후 맑스레닌주의가 부침을 거듭하면서 수많은 선진인자들이 이탈했다는 측면이 있고, 운동 내부에서도 수정주의에 대한 인식의 결여, 그리고 바로 그러한 지점에서 발생한 추미주의적 경향(뻬레쓰뜨로이까에 대한 무분별한 추종 등)도 지대한 요소였죠.
2-1. 바로 그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청산주의를 비롯한 각종 사조들이 들끓고 횅횅하기 시작한 것으로, 흔한 사례가 있다면 맑스와 엥엘스, 맑스-레닌의 분리 등이(강신준 등) 행해지게 된 것이죠. 이데올로기 전선의 붕괴도 중요한 원인인데,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고찰도 지배계급의 관점과 시각에 입각한 평가가 주를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2-2. 노동운동 내부에서 소련 해체 이후에 본격화된 개량주의도, 이데올로기 전선의 해체와 함께 문제적이죠. 이론과 실천의 모든 면에서 현재로서는 붕괴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노동운동 내부에서 우경의 발호는 전노협에서 민주노총으로 넘어갔던 시기에 결정적이었죠. 이른바 “현장파”는 사회적 합의주의에 반대하여 총연맹 본부에서 시위하는 형국이 되겠고요.
2-3. “현장파” 내부에서도, 사상이론적 통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조직의 통일성을 저해하고 개별 활동가들이 양적인 차원에 한하여 집결한(언제든 이합집산할 수도 있는) 조직의 수준으로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위”는 여전히 맹아의 수준으로도 되지 못하죠.
2-4. 노동조합이 레닌적 맥락에서 당적 형태를 의미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죠. 노동조합은 당과 대중을 이어주는 인전대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당원의 대중에 대한 헌신성이 바탕이 되어 지지와 신뢰를 획득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남한의 사정에서 그럴 만한 역량을 지닌 정파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죠.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는 당과 전선체의 부재, 더 나아가 사상적 통일의 부재가 투쟁의 조직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조직을 동호회의 수준으로 만들게 되는 것이죠.
3. 남한의 사회주의 운동은 해방 이후 활기를 띄었다가 이승만 및 미국에 의해 짓밟힌 이후 80년에 이르러서야 맹아의 수준으로 재부상하게 됩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평가도 충분히 소화할 여유는 부족했죠. 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3-4년 후 소련의 해체는 그러한 조건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었던 것이고요.
4. 이데올로기가 실천의 선결 조건이라고 한 것은 실천과 이론이 분리되어 있다는 제언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데올로기는 오히려, 노사과연의 글에서 인용된 레닌의 문건에서 보여지듯, ''실천 속에서'' 검증되고 발전을 이룹니다. 실천의 의의를 살리는 방편에서, '내용이 있어야 실천이 온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지, 실천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거나 개념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데올로기는 또한, 당적 토론과 행동의 통일이 이뤄지는 사상투쟁, 즉 이론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실천의 일환을 통해 형성되어지는 측면도 마찬가지로 존재하고요. 이론과 운동은 본질적으로 하나이기 때문에, “A는 이론 B는 실천”이라고 형식규정이 이루어질 수 없죠.
5. “아직 남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본격적 실천을 전개하기에도 준비가 안된 것인지..?”에 대한 답변을 하자면, 모든 혁명운동에서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사상투쟁이 미흡한 현재의 상황 속에서 제대로 된 실천과 이론은 나올 수 없죠. 기회주의와 청산주의를 폭로하고 사상이론적 기반을 확립하는 과제는 실천과 직결되어 있는데, 아직 그러한 과정은 전반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성답변 감사합니다. 제가 이데올로기와 실천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네요. 좌우익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20세기의 역사적 실험이 지녔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작업이 선행돼야겠네요. 써주신 댓글 두고두고 읽어보면서 고민을 발전시켜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