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마이단의 대해 쿠데타라 생각하신다면 이유 좀 알려주시길 근거도 달아 주신다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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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마이단이 쿠데타라고 보는 입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내부에서 일정한 절차-헌법재판소와 사법부의 동의가 필요한-를 거치지 않고 야누꼬비치가 탄핵됐기 때문에 "친서방" 정권에 정통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시각이 있고, 올리버 스톤의 다큐멘터리인 "Ukraine on Fire"에서 언급되는 대목이지만, 시위 도중 제프리 파이엇 미국 대사와 파시스트적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던 시위대의 주요 인사들이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서방의 개입을 지목하기도 합니다.
유로마이단은 우끄라이나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탈의 일환으로서, 이들과 일정한 이해를 공유하고 있었던 현지의 자본가들이 배외주의를 내세우면서 일어난 사건이죠. 야누꼬비치에 대한 정통성의 여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친러', '친서방'같은 이분법처럼 본질을 호도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구도 자체가 마이단 이후 우끄라 정권에 끼친 영향은 무시될 수 없는 것이죠.)
레닌기치(narkomnats17)2022-03-03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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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시위 당시 희생자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내서 사태를 격화한 당사자들은 프라비 섹또르와 스보보다를 비롯한 극우 세력으로, 이들을 방조했던 올리가르히들 중에는 뻬뜨로 포로쎈꼬가 있었죠. 비록 극우 세력이 의회에서 다수를 점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레니노파드(레닌 동상 철거) 등을 비롯한 사태들은 광범위하게 일어났고, 시위에 참여했던 우익 단체들은 준군사 조직으로 탈바꿈했죠. 극우 진영이 비록지나친 과격성으로 인해 정치 부문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고 하지만, 파시즘의 지지세를 타산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관건인 군사조직의 규모는 현저하게 늘어났죠.
레닌기치(narkomnats17)2022-03-03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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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이 당시 로씨야의 행보가 그렇다고 해서 선의에 기반한 것은 아니었죠. 로씨야도 해외로 시장을 확대하고 싶어하지만, 가장 최근만 해도 노르드 스트림에 대한 조치들에서 보듯 제국주의 국가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후진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이러한 교착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요했던 수단은 푸틴 당시 지도부의 입장에서 전쟁에 해당됐죠. 최근의 전쟁과 같으면, 독일과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발생했던 간극과 균열도 로씨야에게 전쟁의 동기로 작용했습니다.
레닌기치(narkomnats17)2022-03-0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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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1에서 언급한 맥락에서, 그리고 서방이 실질적으로 개입한 것은 마이단 시위 당시 미국 대사의 대화록에도 여지없이 드러나는 대목이기 때문에 마이단은 서방의 제국주의적 행보라는 측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죠.
유로마이단이 쿠데타라고 보는 입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내부에서 일정한 절차-헌법재판소와 사법부의 동의가 필요한-를 거치지 않고 야누꼬비치가 탄핵됐기 때문에 "친서방" 정권에 정통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시각이 있고, 올리버 스톤의 다큐멘터리인 "Ukraine on Fire"에서 언급되는 대목이지만, 시위 도중 제프리 파이엇 미국 대사와 파시스트적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던 시위대의 주요 인사들이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서방의 개입을 지목하기도 합니다.
올리버 스톤의 다큐멘터리인 "Ukraine on Fire"는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fC7s1A1KjI
유로마이단은 우끄라이나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탈의 일환으로서, 이들과 일정한 이해를 공유하고 있었던 현지의 자본가들이 배외주의를 내세우면서 일어난 사건이죠. 야누꼬비치에 대한 정통성의 여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친러', '친서방'같은 이분법처럼 본질을 호도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구도 자체가 마이단 이후 우끄라 정권에 끼친 영향은 무시될 수 없는 것이죠.)
1 - 시위 당시 희생자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내서 사태를 격화한 당사자들은 프라비 섹또르와 스보보다를 비롯한 극우 세력으로, 이들을 방조했던 올리가르히들 중에는 뻬뜨로 포로쎈꼬가 있었죠. 비록 극우 세력이 의회에서 다수를 점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레니노파드(레닌 동상 철거) 등을 비롯한 사태들은 광범위하게 일어났고, 시위에 참여했던 우익 단체들은 준군사 조직으로 탈바꿈했죠. 극우 진영이 비록지나친 과격성으로 인해 정치 부문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고 하지만, 파시즘의 지지세를 타산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관건인 군사조직의 규모는 현저하게 늘어났죠.
2 - 이 당시 로씨야의 행보가 그렇다고 해서 선의에 기반한 것은 아니었죠. 로씨야도 해외로 시장을 확대하고 싶어하지만, 가장 최근만 해도 노르드 스트림에 대한 조치들에서 보듯 제국주의 국가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후진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이러한 교착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요했던 수단은 푸틴 당시 지도부의 입장에서 전쟁에 해당됐죠. 최근의 전쟁과 같으면, 독일과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발생했던 간극과 균열도 로씨야에게 전쟁의 동기로 작용했습니다.
3 - 1에서 언급한 맥락에서, 그리고 서방이 실질적으로 개입한 것은 마이단 시위 당시 미국 대사의 대화록에도 여지없이 드러나는 대목이기 때문에 마이단은 서방의 제국주의적 행보라는 측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