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쏘호즈 꼴호즈는 농업의 사회주의적 혁명의 조직이다. 국영농장이나 집단농장을 물론하고 각각 그 규모의 대소의 차는 있을지언정 조직의 원칙성과 활동의 지향은 규모에 따라 다른 것은 아니다. 꼴호즈의 대표적 실례로서 끼로프주(州)의 꼴호즈에 의한다면 전지농업(田地農業) 축산업 소채업 및 많은 부업부문이 고도로 발전한 것이다. 즉 2개소의 제유공장 제분공장 발전소 온상 마구공장 제화점 가구점 빵제조소 식당 전화국 라디오중계소 문화궁전 도서관 영화관 아동공원 탁아소 및 휴양소가 설치되었으며 온방장치 수도 및 목욕탕을 가진 벽돌주택의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한다. 이것은 한 도시를 축소시켜 놓은 셈이다. 공산주의사회로 이행하는 고자어에서 농촌과 도시와의 문화적 차이를 없애는 과정인 것이다.
각 꼴호즈에서는 교육 및 문화기관이 급속도로 발전되고 있으며 간부교양을 받은 지도자 및 조직자들이 농촌을 공산주의사회로 전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꼴호즈 쏘호즈 제도의 출현은 농업생산체제의 사회주의적 혁명으로서 대규모적인 생산조건을 창설하고 농업의 경제적 기술적 낙후성을 영원히 청산함으로써 세계사상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농업혁명의 승리를 가져온 것이다.
(...) 꼴호즈 조직의 창조자인 쓰딸린의 창안에 의하여 1927년 12월 제 15차 당대회에서 농업집단화의 방침이 결정되었던 것이며, 1929년부터는 꼴호즈 조직이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전전인 1940년도의 쏘련농업은 벌써 7천여 개소의 농기지정소와 53만대의 뜨락또르와 18만 2천대의 꼼바인 22만 8천대의 화물자동차가 작업하였다. 그리하여 농업기계화의 수준이 미국을 훨씬 능가하였다.
2.
1940년도에 쏘련 꼴호즈에서는 쏘련 토지경작의 4분지 3과 모든 파종면적의 절반 이상을 뜨락또르로 수행하였고 곡물면적의 절반을 꼼바인으로 추수하였다. 1940년도에 미국에서는 대지주의 자본주의적 농업체제로서 토지경작의 절반과 파종면적의 3분지 1만을 뜨락또르로 수행하였던 것이다. 또한 농업기계의 능률에 있어서 미국 뜨락또르의 1마력이 5.8헥터의 면적을 경작한다면 쏘련 뜨락또르의 1마력은 32.6헥터를 경작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농업노동의 기계화는 농업노동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제고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쏘련의 꼴호즈 조직은 농업생산의 가장 선진적인 형태의 것이며 세계사적인 농업조직의 혁명적 재편성인 것이다.
꼴호즈 조직의 생산적 위력은 평화적 건설기 뿐만 아니라 쏘련의 위대한 조국전쟁 당시에도 더욱 그 위력을 발휘하였던 것이다. 즉 전쟁시기에 있어서 꼴호즈농장은 쏘련 인민과 쏘베트 군대를 위한 식량공급과 경공업에 대한 원료공급을 계속적으로 보장하였던 것이다. 독일파쇼 강점자들은 쏘련 농업에 대하여 1,810억 루블리에 해당한 손해를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막대한 손해와 파괴는 종래의 낙후된 농업 기술로는 도저히 회복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쏘베트정부는 대독전쟁을 세계사적으로 승리한 이후 새로운 전후 5개년계획에 있어서 꼴호즈와 쏘호즈의 생산조직을 재건할 뿐만 아니라 전전의 수준을 초과하기 위한 모든 방책을 쓰고 있던 것이다. 이 전후 5개년 계획을 수행하는 동안에 농업부문에 있어서 1940년도에 대비하여 1950년도의 말기에는 토지경작의 기계화가 70%에서 90%로 장성하게 되며 기계화된 춘기 및 추기 파종은 59%로부터 70%로 곡물에 대한 꼼바인의 추수는 43%로부터 50%로 장성하게 되어 있다. 1949년도의 농업부문에서는 15만대의 뜨락또르와 2만 9천대의 꼼바인과 160만대 이상의 견인기계 기타 농업기계를 받았다. 농기 농구의 거대한 기술적 발전은 그 품질의 개진과 새로운 구조형을 가져온 것이다. 그리하여 1949년도의 농촌경제는 전전인 1940년대보다도 4배 이상의 뜨락또르 기타 농기를 받았던 것이다.
3.
이.브.쓰딸린은 농촌의 전기화에 관한 레닌의 사상을 발전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농업의 기술적 혁명의 수행수단으로서 뜨락또르를 농촌에 최대 한도로 공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 끝으로 농촌과 도시를 접근시키고 그들 사이의 대립성을 절멸시키는 수단으로서 전기화 계획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1950년도에는 모든 쏘호즈 농기-뜨락또르 저장소 및 7만개 소의 꼴호즈가 전기화될 것이라 한다. 농촌발전소의 전력생산은 약 200만 킬로와뜨로 되며 전력의 소비량은 350억킬로와뜨 시(時)로 될 것이라 한다. 그리하여 발전소의 위력과 동력의 수요는 1940년도에 비하여 거의 10배나 증가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쏘련 농업의 전기화는 급속도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쓰웨르들로프스크주의 꼴호즈 전 면적의 전기화는 10월 사회주의 대혁명 30주년 기념일까지 벌써 끝났던 것이며 모쓰크바주의 전 농업 면적의 전기화는 1949년도에 완수된 것이며 몰로또브주 첼야빈주 고리끼주 기타 각주와 우크라이나 백로씨야 기타 공화국에서도 농업의 전기화 과정이 급속히 진전되고 있는 것이다.
쏘련 농업의 전기화는 노동생산력을 본질적으로 재고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력을 놀랠 만큼 절약시키고 있다. 예컨데 타곡(打穀)을 위한 전기이용은 노동력의 60% 관개를 위한 전기이용은 노동력의 80% 착유 및 예모를 위한 전기이용은 노동력의 50% 곡물저장작업을 위한 전기이용은 노동력의 60% 급수작용을 위한 전기이용은 노동력의 75%를 절약시킨 것이다.
농업의 전기화는 꼴호즈원들의 기술적 숙련과 기술적 수준을 재고시켰으며 농촌문화의 강력한 발전을 위한 조건을 지어 주었다. 즉 영화관의 증설 라디오의 보급 기타 문화의 장성은 그 실례인 것이다.
또한 농업생산의 계획적 체제와 집단노동의 창조력은 자연을 지배함으로써 무수지 또는 소택지를 사회주의 농업지대로 전환시킬 가능성을 부여한 것이다. 꼴호즈의 소택지는 오늘날 꽃피는 과수원으로 전화된 것과 중앙아세아공화국의 불모지를 전지로 전환시킨 사실과 북(北)깝까브까즈의 관개시설과 초원지대의 안정한 수확을 보장하기 위한 방위림 식수와 목초순환파종과 토지개량법의 적용과 저수지의 건설 등등은 농업생산력의 제고를 위한 국가적 시책들인 것이다.
출처: 백남운, 《쏘련인상》, 111~1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