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가 전시에 저지른 민간인 학살(조직적이었든 개인적이었든)에 대해 진상규명에 나서거나 사죄한 사례가 있나요? 2. 북한(조선)에서 수령숭배(?)의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3.노사과연과 노정협은 무슨 차이가 있는건가요
댓글 10
1. 글쓴이께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들의 학살”이라고 말하시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로버트 콘퀘스트 류의 주장을 들고 오거나, “그 위키”발 자료들에 바탕을 둔 인식이고, 그것을 “사실”로 여긴다면 무의미한 대화가 될 가능성은 농후합니다.
익명(211.36)2022-04-26 01:00
답글
1-1. 홀로도모르 이야기를 하시는 거라면, 학살설은 소련-러시아학계 내부에서도 주류가 아니고, 제노사이드의 정의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민족 자체가 절멸되어야 하는데, 그 당시 1930년대 소련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어 학교의 증가, 출판물 및 매체의 증가는 “의도적 제노사이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죠.
익명(211.36)2022-04-26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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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모 나무위키 편집자는 “아치 게티도 인위적 요소가 어느 정도 개입되어 있으니 홀로도모르는 제노사이드”라고 하는데, 아치 게티는 정책적 맥락에서 지적한 것이고 “제노사이드”에 대해서는 부정합니다. 소련학계가 아치 게티 “만” 있다고 하는 것은 천만의 말이고요.
익명(211.36)2022-04-26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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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카틴 이야기를 하신다면, 이곳 갤에 올라온 자료들을 보시면 실상은 관련 문서(베리아 서신 등)가 상호 모순되고, 그 당시 죽었다고 알려진 사람(폴란드 언론에서 회자되는 쿠길로프스키)이 이후에도 멀쩡하게 독소전쟁 개전 이후까지도 살아있는 경우가 많은 등 “학살”이라고 하기에는 허점이 많죠. 폴란드 장교들에 대해 수감했으되 학살은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익명(211.36)2022-04-26 01:24
답글
1-4. 전시에 “저질렀다”고 선전된 것에 대하여(자유주의 진영의 흔한 “역사학자”들은 그 점에서, 괴벨스 및 나치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이죠.) 부덴코 위원회처럼 조사를 한 경우도 있고, 굳이 부덴코 위원회를 논하지 않더라도, 2010년대 초반 폴란드의 독립 조사단이 “카틴 학살이 일어났다는 곳에서 발견된 것은 독일의 총탄과 유물들이었다”로 설명이 되죠.
익명(211.36)2022-04-26 01:29
답글
사실 학살의 정확한 정의를 알 수가 없는게 저도 누가 말하는거 반박하고 싶어서 물어본 거였습니다 좋은 답변 감사합니딘
익명(125.179)2022-04-26 06:39
웬만한 질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갤 공지에 있는 “반공주의 비판 가이드라인”을 보시면 알 수 있으니 그 역시 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익명(211.36)2022-04-26 01:32
2. 북의 “수령 숭배”는 표면만 부각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정은이 추대되는 과정에서 당과 김정일, 군의 사전 조율이 있었고,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넘어갈 때에도 비슷한 수순을 밟았으며, 장성택 처형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죠. 남한 언론이나 대중 매체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낫다고 봅니다.
익명(211.36)2022-04-26 01:34
답글
2-1. 다만, 북에서는 지도자와 대중을 대립항에 두지 않고, 지도자가 대중의 창발성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강화하는 맥락으로서 논의가 이뤄지죠. 이에 대한 실례로서 대안의 사업체계를 예시로 드는 경우도 종종 나타납니다.
익명(211.36)2022-04-26 01:57
3. 중국 문제에 대한 차이, 러시아 문제를 바라보는 데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있습니다. 노정협이 번역한 사회주의해방당의 글과 노사과연의 중국 글을 비교하면 전자는 문제가 있지만 사회주의 국가로, 후자는 자본주의 국가로 바라보죠
1. 글쓴이께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들의 학살”이라고 말하시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로버트 콘퀘스트 류의 주장을 들고 오거나, “그 위키”발 자료들에 바탕을 둔 인식이고, 그것을 “사실”로 여긴다면 무의미한 대화가 될 가능성은 농후합니다.
1-1. 홀로도모르 이야기를 하시는 거라면, 학살설은 소련-러시아학계 내부에서도 주류가 아니고, 제노사이드의 정의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민족 자체가 절멸되어야 하는데, 그 당시 1930년대 소련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어 학교의 증가, 출판물 및 매체의 증가는 “의도적 제노사이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죠.
1-2. 모 나무위키 편집자는 “아치 게티도 인위적 요소가 어느 정도 개입되어 있으니 홀로도모르는 제노사이드”라고 하는데, 아치 게티는 정책적 맥락에서 지적한 것이고 “제노사이드”에 대해서는 부정합니다. 소련학계가 아치 게티 “만” 있다고 하는 것은 천만의 말이고요.
1-3. 카틴 이야기를 하신다면, 이곳 갤에 올라온 자료들을 보시면 실상은 관련 문서(베리아 서신 등)가 상호 모순되고, 그 당시 죽었다고 알려진 사람(폴란드 언론에서 회자되는 쿠길로프스키)이 이후에도 멀쩡하게 독소전쟁 개전 이후까지도 살아있는 경우가 많은 등 “학살”이라고 하기에는 허점이 많죠. 폴란드 장교들에 대해 수감했으되 학살은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1-4. 전시에 “저질렀다”고 선전된 것에 대하여(자유주의 진영의 흔한 “역사학자”들은 그 점에서, 괴벨스 및 나치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이죠.) 부덴코 위원회처럼 조사를 한 경우도 있고, 굳이 부덴코 위원회를 논하지 않더라도, 2010년대 초반 폴란드의 독립 조사단이 “카틴 학살이 일어났다는 곳에서 발견된 것은 독일의 총탄과 유물들이었다”로 설명이 되죠.
사실 학살의 정확한 정의를 알 수가 없는게 저도 누가 말하는거 반박하고 싶어서 물어본 거였습니다 좋은 답변 감사합니딘
웬만한 질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갤 공지에 있는 “반공주의 비판 가이드라인”을 보시면 알 수 있으니 그 역시 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2. 북의 “수령 숭배”는 표면만 부각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정은이 추대되는 과정에서 당과 김정일, 군의 사전 조율이 있었고,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넘어갈 때에도 비슷한 수순을 밟았으며, 장성택 처형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죠. 남한 언론이나 대중 매체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낫다고 봅니다.
2-1. 다만, 북에서는 지도자와 대중을 대립항에 두지 않고, 지도자가 대중의 창발성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강화하는 맥락으로서 논의가 이뤄지죠. 이에 대한 실례로서 대안의 사업체계를 예시로 드는 경우도 종종 나타납니다.
3. 중국 문제에 대한 차이, 러시아 문제를 바라보는 데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있습니다. 노정협이 번역한 사회주의해방당의 글과 노사과연의 중국 글을 비교하면 전자는 문제가 있지만 사회주의 국가로, 후자는 자본주의 국가로 바라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