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프 스베르들로프(1885.06.03~1919.03.16)
미하일 칼리닌(1875.11.19~1946.06.03)
소련 성립 초기 국가수반을 맡았던 분들이 각각 기일과 생일이 오늘로 겹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기억할 만한 분들이라 생각해서 올려봤습니다.
스베르들로프는 행정가로서 엄청나게 유능한 사람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뭔가 서방에는 알려진게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네요.
칼리닌의 경우에는 옛날 중학생 때 호이2 호이3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음. 처음 봤을 때 "국가원수가 스탈린도 아니고 왠 듣보잡이 나오냐"라고 생각했었죠.
호이4에서는 안정도 15% 주는 장관으로 나왔고요.
(같은 맥락에서 중화민국의 국가원수가 장제스가 아니라 린썬으로 나왔다는 것도 신기했음. 둘이 뭔가 생긴게 닮았었죠.)
그리고 레닌주의(맑레볼레 포함) 유저님들한테 스베르들로프와 칼리닌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스베르들로프는 유능한 행정가지만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죽은 인물이라는 것 이상으로는 잘 몰라서 어떤 업적을 세우셨는지랑 예전에 어떤 로붕이가 말했던 것처럼 레닌의 후계자로서 거론될 급이었는지요?
칼리닌의 경우에는 박노자 씨가 볼셰비키 초기 지도부 중 유일한 노동자 출신이라고(박노자 러혁사 중) 고평가 하시던데 실제로 어떤 분이셨나요?
그리고 꺼무 새끼들은 스탈린이 칼리닌을 괴롭히고 지배하는 것에서 희열을 느꼈다느니 하는 출처불명의 헛소리 같은걸 써 놨던데 칼리닌과 스탈린의 실제 관계는 어땠는지요?
스탈린과 그 동료들(즈다노프 몰로토프 카가노비치 등)에 비해서 칼리닌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못한 이유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dc official App
https://espressostalinist.com/the-real-stalin-series/private-life-of-stalin/
"끄례믈에 자주 방문했던 이들은 보로실로프, 끼로프, 깔리닌이었소. 쓰딸린은 방문객들을 접견하는 데에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었네. 보드카와 꼬냑에 자주 손대지 않았고, 대신에 "치난달리"나 "텔라니"로 불리우는 와인들을 마셨지." - 알렉세이 리빈, "쓰딸린의 곁에서: 어느 경호원의 노트"(1996), 6쪽.
스탈린과 칼리닌 양자의 관계는 전자가 후자를 높이 사서 정중한 대접, 대우를 했다는 데에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되고, 스베들로프는 소련 초기 행정 부문에서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입니다. 칼리닌도 노동조합 출신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한 대표적인 볼셰비키 중 하나고, 막심 리트비노프의 회고에 따르면 1931년에 보로실로프의 휴가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국 위원들과 논의할 때 칼리닌이 유일하게 반대표를 행사했는데 스탈린이 이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칼리닌을 높게 샀다고 볼 여지는 충분하죠. 내부의 중요한 정치적 회의들에서도 칼리닌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을 뿐더러, 사적으로도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 친분을 유지했죠.
나무위키에서 스탈린과 칼리닌의 관계를 두고 새디즘적인 측면이 있다고 하는데, 스탈린에 우호적이거나, 그 반대의 입장에 위치한 당대인들이 남긴 기록들에 따르면 스탈린의 성격에 대해서는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나오는 지점들-예컨대, 아이작 도이처는 자신의 저작 "스탈린 전기"에서 스탈린이 스스로의 입장을 남한테 강요하지 않고도 대중을 휘어잡는 방식을 활용했다고 주장합니다-이 많아서 교차 검증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호사가적인 취미를 가진 이들의 허언으로서 무시해도 좋다고 봅니다. "스탈린이 가족들에게 매정했다"는 이야기처럼 실제 사실과 들어맞지 않은 측면이 강하고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스탈린 - 칼리닌의 관계는 “칼리닌그라드”라는 도시의 이름을 통해서 가늠할 수 있다고 봅니다.
미하일 칼라닌은 이오시프 스탈린 동지가 가장 신뢰한 인물 중 한명입니다. 고참 볼셰비키의 일원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