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레분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시기의 군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함?
1. 군에 계급을 도입해야 하는지, 1955년 이전 인민해방군처럼 직책만으로 충분한지
2. 장교를 선거로 선출해야 하는지, 사병과 별도로 선발하여 사관학교를 통해 육성해야 하는지
3. 마르크스나 레닌이 말한 상비군과 민병대는 서로 어떤 차이가 있으며, 이들이 상비군 대신 민병대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4. 적백내전 초기 볼셰비키의 졸전이 정말 장교를 선거로 선출했기 때문인지, 군의 민주성을 유지하면서 행동의 통일성을 불어넣는 민주집중제식 해결은 불가능했는지
궁금
1. 군에 계급을 도입해야 하는지, 1955년 이전 인민해방군처럼 직책만으로 충분한지
2. 장교를 선거로 선출해야 하는지, 사병과 별도로 선발하여 사관학교를 통해 육성해야 하는지
3. 마르크스나 레닌이 말한 상비군과 민병대는 서로 어떤 차이가 있으며, 이들이 상비군 대신 민병대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4. 적백내전 초기 볼셰비키의 졸전이 정말 장교를 선거로 선출했기 때문인지, 군의 민주성을 유지하면서 행동의 통일성을 불어넣는 민주집중제식 해결은 불가능했는지
궁금
1.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사병들에게 계급장을 부여해도 군대가 군중과 결합되어 전민무장화의 동력원으로 기능하고, 그러한 전제 하에서 상명하복으로 귀결되지 않는 이상 직책과 직위의 구분은 기계적으로 적용될 수 없죠. 오구마 겐지의 책 "일본 양심의 탄생"에 따르면 1940년대 후반 당시 소련군 병사들이 제대로 된 이유가 있으면 항변이 가능했고 임무에 돌입했을 때에야 기능적인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는데, 이는 조직 내부의 민주성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죠. 사병 및 장교에게 계급장을 부여해도 정치위원이 제 기능을 다하는 이상 직책과 직위에 대한 언급은 지엽적인 차원의 논의로 국한됩니다.
정치위원이 제 기능을 다한다는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정치위원은 기본적으로 당과 군대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에 해당되기 때문에 병사들에게 선전 사업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일선 장교들에 의한 월권을 저지하는 역할을 맡죠. 또 다른 예시로는 10월 혁명 이후 군 내부에 설치된 동지법정이 있는데, 그러한 기구를 통해서도 병사들이 장교들에 대하여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는 다분했습니다.
2. "선거로 선출"하느냐, 사병들과 별도로 육성하느냐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 본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경계의 구분법은 모호한 지점이 있습니다. 사병들 중에서 군사에 대한 전문지식을 익힐 의향을 보이는 인원들이 사관학교를 통해 장교로 되는 수순은 적백내전 초기부터 일찍이 존재했고, 선거로 선출된 지휘관들 중에서 사관학교에 편입되어 속성 교육과정을 거쳐 '붉은 지휘관'으로 된 경우도 상당수 존재했죠.
3.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민병대도 지배계급에 의해 쓰일 수 있는 수단이 되는데, 반대로 레닌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군사강령"에서 민병대를 자본주의 복고에 맞서 혁명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편으로 지목한 이유는 무기를 쓰고 배울 수 있는 경로가 노동자-농민에게 확장됐기 때문이며, 이를 습득하는 과정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및 동유럽 각지에서 전개된 파르티잔 전쟁에서 보듯 용이해진 형태였기 때문입니다. 레닌의 글인 "우리나라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의 임무"에서 적시된 것처럼, 민병대 본래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이를 군사적 조직의 제반 측면들과 적절히 융합할 줄 아는 사고도 필요한 것이죠.
민병대 본래의 성격이라 함은 민주성이고, 군사적 조직의 제반 측면과 융합을 하는데 있어 실제 역사에서 핵심적으로 기여한 장치가 정치위원인 셈인가요? 그리고 말씀하신 두 텍스트는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정치위원은 민병대 본래의 성격을 보존하고, 동시에 사병들의 자발성과 의식성을 도약시키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죠. 노동조합처럼 군대도 일종의 대중 조직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데, 사병들의 자발성과 의식성을 도약시키는 것은 군 내 규율의 강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의식성은 자발성을 수반합니다.), 군이 처한 당면 임무나 사업에 대한 의욕을 장려하기 위해 병사들로 하여금 동기를 최대한 이끌어내는 것이 정치위원의 역할입니다. "스탈린그라드: 제 3제국을 무찌른 도시"에서 지적되는 것처럼 붉은 군대가 전투 도중 높은 수준의 조직적 통일성을 확보한 것도 정치위원의 역할이 큽니다. 군사적 조직과 융합도, 군사전문가들의 기능적 요소들을 일정 정도 수렴한다는 점에서 정치위원에게 지분이 있기도 하지요.
첨언으로, 여기서 말하는 '기능적' 요소는 군사전문가(구제국 장교)들이 보유하고 있는 군사적 지식이지, 실질적인 권한과 비슷한 의미는 아닙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군사강령(1916):
https://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16/miliprog/index.htm
우리나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의 임무(1917):
https://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17/tasks/index.htm
정치위원과 군사전문가의 협업을 바탕으로 군사적 조직의 제반 측면과 융합하되, 기능적 측면을 제외한 나머지 부문들에서는 양측 사이에 우위를 논할 때 전자에게 그 비중이 가지요. 실제 역사 상에서도 정치위원이 부재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전투는 이루어지지 못했고, 군의 규율도 이에 비례하여 약화된 사례는 상당수 됩니다.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대단하네요. 볼셰비키 활동가들은 어떤 훈련을 받았길래 그렇게 척척 조직화도 해내고, 대중의 의식성도 끌어올릴 수 있는건지.
4. 초기 붉은 군대의 문제의 주된 양상은 구제국 출신 장교단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죠. 페름의 함락(1918.12)과 러시아 서부 일대의 봉기에서 관찰된 것처럼 구제국 장교단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여, 유사 시 비상상황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붉은 지휘관' 및 정치위원들의 권한이 약화됐기 때문에, 이른바 '군사전문가' 지상주의가 반드시 내전 승리의 해답으로 되지 않지요. 차리친 등지에서 보여진 것처럼, 정치위원의 역할이 전쟁의 판세를 좌우하는 측면도 있고요. 달리 말하면 선거로 선출된 것 자체보다, 선거로 선출되어 적절한 교육을 이수받은 신규 지휘관들의 부족, 그리고 구제국 출신 장교단들의 독단 행동이 맞물려서 생긴 참사가 초기 붉은 군대의 졸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