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제니친 등이 주장하는 생지옥이 사실인지
[질문] 굴라그라 불리는 수용소 문제 어케 생각하나요
익명(211.36)
2022-07-22 15:03
추천 1
댓글 8
다른 게시글
-
After the soviet - ghost town[일반] 익명(117.111) | 22.07.20추천 2
-
갤주 부부가 번역한 영국의 웹 부부가 쓴 책 [6][질문] 내고향점촌(kdsmart608) | 22.07.15추천 0
-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어떤 사람인가요? [8][일반] 익명(125.142) | 22.06.15추천 1
-
군대 관련 질문 [13][질문] 익명(223.33) | 22.06.08추천 2
-
칼리닌과 스베르들로프 동지에 대하여 [6][질문] 우파가허락..(garshii) | 22.06.03추천 10
-
소련 생명교회는 어떤 단체인가요?[일반] 익명(125.142) | 22.05.30추천 1
-
오데르-나이세 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함? [3][질문] 익명(211.218) | 22.05.27추천 0
-
베트남 라오스에 대한 인식에 대해 궁금합니다 [3][질문] 익명(180.229) | 22.05.22추천 0
-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 조국전선 강령(1942) [1][정보] 레닌기치(zastava1905) | 22.05.16추천 9
-
우크라이나 대기근의 진실-11[연재] 라틴아메리..(safariboy) | 22.05.14추천 8
https://www.revolutionarydemocracy.org/telugu/SUPrisons.pdf
(p. 60부터 참고)
http://www.idcommunism.com/2018/01/gulag-archipelago-exposing.html
솔제니친과 그의 소설 "수용소 군도"에 대한 직접적인 반론.
바딤 로고빈-1990년대 로씨야에서 활동한 뜨로츠끼주의 성향의 역사학자입니다.-과 솔제니친의 첫 번째 배우자인 나딸랴 레쎼또프까야가 표현하는 것처럼, "수용소 군도"와 그 외 여러 소설들은 구술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죠. 더 나아가 1차 진술들이 출판되지 않은 상황에서 저자의 자의적인 해석이 개입됐기 때문에 주관적 요소들이 다분하게 있습니다. 솔제니친이 스스로 간주한 것처럼 "역사학적 연구로도, 과학적 연구로 진지하게 취급될 만한 저작들이 아닐" 뿐더러, '수용소 동화 전집'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어울리는 말이죠. 따라서 그가 주장하는 '생지옥'에 대한 이야기들을 사실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쏘련과 미국의 1차 문헌을 보아도, 수용소에 수감된 이들이 '절멸의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매우 명확하게 드러나죠. 이는 (1) 할당량을 초과달성할 경우 그만큼 보상이 들어왔고, (2)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식량 공급량을 증산했으며, (3) 1930년대에도 일찍이 콜리마(Kolyma) 수용소와 비슷하게 극한의 자연적 요건들을 갖춘 다닐쓰뜨로이 수용소의 사례에서 보듯 평균 10시간 노동이어도 겨울에는 6시간으로 줄어드는 등 제반 환경을 개선하려는 조치들이 취해졌죠. 참고로, (3)번과 같은 경우는 쓰딸린에 반대했던 로이 메드베제프의 책 "역사가 판단하게 하라"에서 나오는 대목입니다. 맨 위의 댓글 링크에도 인용되어 있기 때문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자료이죠.
(1)의 경우 1939년 6월 10일 쏘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포고령에서 수용소 내부의 영양사정을 개선할 것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할당량 초과 달성 시에는 식량으로 추가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었고, 50년대 초반 이래로는 화폐로 지급됐죠. 한 가지 추가로 언급할 점이 있다면, 페니실린과 같은 의약품들이 굴라그에 광범위하게 보급됐는데, 그 결과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반적인 사망률은 0.3% 즈음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관련 자료:
https://i.redd.it/xt09lxjr83q21.jpg)
굴라그가 아우슈비츠에 비견되는 '생지옥'이었다고 하면, 전쟁 시기를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사망률이 낮게 나오고, 의약품이 보급될 일도, (2)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식량 공급량이 증가할 일도 없게 되죠.
(3)의 경우, 형량 감소, 최적의 식량 및 의복 제공, 가계를 부양하기 위한 충분한 급여의 지원이 수반됐고 겨울과 같으면 최대가 6시간, 최소 4시간 정도의 노동이 있었다고 서술됩니다. 이상의 내용들은 "역사가 판단하게 하라" 508쪽에 수록되어 있는데, 내무인민위원회 소속으로 콜리마 수용에서 근무했던 뱌뜨낀(Vyatkin)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복역했던 샬라모프의 구술록을 모두 인용합니다. 솔제니친이 주조한 '수용소 동화집'의 내용과 다르게, 굴라그의 성격은 징벌의 수단보다 사회로의 정상적인 복귀를 위한 기제에 가깝죠. 백해 운하 건설에 있어서도, 성과를 거두면 감형 내지 조기석방의 사례들이 허다했고, 사회주의 노력영웅으로서 대대적으로 부각됐지 그 역의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추신: (2)번의 경우 1957년에 작성된 미국 CIA의 문헌이 참고자료로 되는데,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www.greanvillepost.com/2018/10/09/the-truth-about-the-soviet-gulag-surprisingly-revealed-by-the-cia/
굴라그 문제에 대한 추가적인 글로는 이 글도 좋습니다. 미국의 교정시설 문제와 비교하면 굴라그 문제에 대한 그들의 주장이 실제로는 제 눈에 침 뱉기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https://www.northstarcompass.org/nsc0901/gulag.htm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