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말하자면, 수확량의 감소만이 소련시기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발생시킨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다. 기근이 절정에 달했던 1933년 상반기에 상당량의 곡물을 수출했지만, 대략 22만 톤 정도로 최저 수확량의 추정치에 1%에도 못 미쳤으며, 소련 공산당은 사용할 수 있는 수확한 곡물의 대부분을 인민들을 먹여 살리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앞에서 말한 목적을 위해 필요하고 사용된 실질적 곡물의 양은 대략적으로 추정될 수 있다.


1928년 당시 소련의 무역 담당 위원이었던 A. I. 미코얀은 소련 정부가 마을 및 도시 사람들과, 군인들 그리고 소련 내 기타 집단들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1,120만 톤의 곡물이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다음해에 진행된 급격한 산업화와, 집산화 그리고 반쿨락 투쟁과 더불어, 소련 정부가 식량을 공급해준 소비자들의 인구 또한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1927년과 1928년에 나타난 소위 “식량 위기”라 불리는 흉작과 기근 상황은 소련 공산당 정부로 하여금, 1932년까지 도시와 산업현장 사람들을 포괄한 4,000만 명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설립하도록 만들었다.


추가적으로, 수백에서 수천만에 해당하는 군인과 감옥 및 수용소에 수용된 인원들, 심지어 대다수 소작농과 별 상관없는 또 다른 인원들까지 이 배급제를 통해 소련 정부로부터 식량을 공급받았다. 소비인원의 급격한 증가추세에도 불구하고, 소련 정부의 식량공급 능력은 기근이라는 위기를 겪으면서 감소했다. 정부의 공식적인 추산에 따르면, 식량을 공급하는 시스템은 대략 1,630만 톤의 곡물을 배급제를 통해 1931년 7월부터 1932년 6월까지 인민들에게 공급했지만, 1932년 7월부터 1933년 6월까지는 공급량이 1,450만 톤에 불과한 것으로 나온다.


비슷한 시기에 소련 정부의 곡물 수출은 470만 톤에서 160만 톤으로 급격히 축소됐다. 이러한 통계를 표1과 표2를 통해 조달된 데이터와 비교하면 알 수 있듯이, 공급과 수출을 합친 총합의 양이, 이 몇 년 동안 조달할 수 있는 대부분의 곡물을 거의 다 소진해버렸음을 알 수 있다. 소련 정부는 곡물을 적게 비축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다수의 민중들에게 끊임없이 식량을 공급하는 데에 모든 역량을 동원했다. 소련 전역이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고, 식량 조달 및 유통량에 대한 자료가 의심할 여지없이 정확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면, 소련이 극심한 식량 부족에 부딪혔다는 점에서 기근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1931년과 1932년에 발생한 흉작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Mark B. Tauger, 「Natural Disaster and Human Actions in the Soviet Famine of 1931-1933」, Pittsburgh: University of Pittsburgh, 2001, p.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