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은 어때? 스베틀라나는 베리야 아들이랑 결혼 문제로 싸운거 빼면 스탈린과 사이가 원만했다던데. 서비스 책보다 스탈린과 가족들의 삶을 잘 반영한 편임?
[일반] 스탈린 딸래미 자서전 읽을만 해?
익명(i49gkz6a9c0i)
2023-05-08 2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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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베뜰라나가 집필한 저서들 중에서 쓰딸린이 1950년대 초반 쏘련 내부의 반유대주의적 조류에 반대했다는 서술이 등장합니다. 세간의 각종 매체나 미디어, 출판물에서는 이른바 '의사의 음모' 사건에 대해 논할 때 흔히 쓰딸린이 유대인 의사들에게 혐의를 전가했고, 대규모 체포가 이뤄졌다는 주장을 유포하는데, 쓰베뜰라나는 정반대의 서술을 남겼지요. 대표적으로, ≪친우에게 보내는 서신 20선≫의 207쪽에서 "쓰딸린은 의사들이 '불손'하다는 말을 믿지 않았고, 의사 찌마슈끄(Timashuk)의 '보고' 이외에 이렇다 할 증거는 없었다"고 증언한 바 있으며, '의사의 음모'의 주동자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고 진술합니다. 고장난 시계도 한두번쯤 맞는 말을 할 때가 있는데, 그에 대한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되지요.
쓰딸린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쓰베뜰라나의 저서보다, 알렉세이 리빈(A. T. Rybin)의 ≪쓰딸린의 곁에서: 어느 경호원의 노트(Next to Stalin: Notes of a Bodyguard)≫와 부두 스바니제(Budu Svanidze)의 ≪나의 삼촌 이오씨프 쓰딸린(My Uncle Joseph Stalin)≫을 추천합니다. 기본적으로 쓰베뜰라나가 집필한 저서들과 다르게 전반적인 논조에 있어서 쓰딸린을 의심병 많은 편집증 환자로 간주하지 않고, 지적 교양과 대중성을 겸비한 정치인이자 개인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전자의 경우, 쓰딸린 생전에 경호 업무를 책임졌던 인물이 집필한 만큼, 당대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도 심도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쓰딸린의 개인사나, 성격적 특징에 대해 언급하면서, 동시에 대숙청과 전쟁, 그리고 “의사의 음모” 당시 쓰딸린의 행동에 대한 흐루쇼프의 근거 없는 비난을 당사자의 시각에서 조목조목 반론하지요. 일례로, 알렉세이 추야노프 쓰딸린그라드 지구당 제1서기가 대숙청 당시 무고한 당원 및 비당원들의 신원을 회복시켰다는 이유로 말렌꼬프에게서 질책을 받자, 볼쉐비끼로서 본연의 소임을 온전히 다하고 있다고 추야노프를 두둔하고 치켜세운 사람이 쓰딸린이었다고 진술하는데, 대숙청의 원인이 쓰딸린의 '의심병'에서 기인했다는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알렉세이 리빈에 따르면, 쏘련 보위성의 초대 장관을 지냈던 제르진스끼가 고전 음악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고 말했을 때, 쓰딸린은 음악에 대한 교양을 쌓고, 작곡가들의 작곡 기법들과 창법들을 익힐 것을 주문했었지요. 실제로 쓰딸린은 로씨야 혁명 이후에 모든 극장들을 폐쇄하고, 볼쇼이 극장마저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좌경주의자들에 반대하여, 무용수들과 작곡가들을 보호했고, 오페라 ≪이반 쑤사닌≫과 ≪예브게니 오네긴≫의 공연을 장려하며 레닌과 함께 예술의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예컨대, 막심 미할로프가 ≪이반 쑤사닌≫의 노래들을 제대로 부르지 못했을 때 목소리를 온전히 낼 것을 제언한 적이 있었는데, 그와 같은 세심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일류 오페라 가수인 골로브쓰노프 등이 귀국하여 재능을 펼칠 수 있었지요.
후자의 경우, 정치나 사회 문제보다 쓰딸린의 가정사에 대해 전자보다 많은 비중을 할애합니다. 부두 스바니제는 쓰딸린의 첫째 배우자로 1907년에 사망했던 예까쩨리나 스바니제와 친인척 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쓰딸린이 유년 시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지녔던 다양한 면모들을 저서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아울러, 쓰딸린의 두 번째 배우자였던 나데즈다 알릴루예바의 사망에 대해서도 지면을 상당 부분 할애했는데, 흔히 세간에서 회자되는 쓰딸린과의 정치적, 사상적 "불화" 때문이 아니라, 불면증과 평소에 지니고 있었던 여러 정신적 질환들의 영향이 컸다고 말하고 있지요. 기본적으로 당대인의 시선에서 '인간'으로서의 쓰딸린에 대해 조명하기 때문에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도서입니다.
알렉세이 리빈의 저서인 ≪쓰딸린의 곁에서: 어느 경호원의 노트(Next to Stalin: Notes of a Bodyguard)≫는 다음의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michaelharrison.org.uk/wp-content/uploads/2018/08/Next-to-Stalin-Notes-of-a-bodyguard-AT-Rybin-1996.pdf
부두 스바니제가 집필한 ≪나의 삼촌 이오씨프 쓰딸린(My Uncle Joseph Stalin)≫ 역시, 다음의 링크에서 PDF로 볼 수 있습니다.
https://michaelharrison.org.uk/wp-content/uploads/2018/07/My-Uncle-Joseph-Stalin-Bude-Svanidze-Putnam-NY-1953.pdf
쓰딸린의 개인사에 대한 추가적인 자료로는, 로씨야의 언론사 ≪자브뜨라(Завтра)≫에서 쓰딸린의 양자인 아르쬼 쎄르기예프(А. Ф. Сергеев)와 나눈 인터뷰들을 연재글 시리즈로 묶은 ≪쓰딸린을 기억하며(Вспоминаю Сталина)≫가 있습니다. 쓰베뜰라나 알릴루예바와 바실리 쓰딸린에 대한 일화들과, 쓰딸린과 쎄르게이 끼로프의 친분 관계에 대해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며, 쓰딸린의 하루 일과와 생활 방식을 유심하게 다룹니다. 바실리 쓰딸린이 이오씨프 쓰딸린 생전에 아버지의 후광으로 특권을 누렸다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데, 그에 대해 반론을 전개한다는 점이 특기할 만 합니다.
예컨대, 바실리가 당대 쏘련의 장교들과 다르게 이렇다 할 전공 없이 고속으로 진급했다는 주장은 (1) 독일 공군기가 므첸쓰크 비행장을 폭격하려 했을 때 전투기를 조종하여 적군 폭격기를 격추시키며,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분전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지요. 아울러, 그 당시 바실리 쓰딸린은 (2) 독일 공군기에 맞서 완전히 충전되지 않은 상태로 전장에 뛰어들었는데, 이는 오히려 그만큼 긴박한 상황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기습 공격이라는 긴박한 상황에서, 연료를 완전히 충전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됐고, 최대한 쥐어짤 수 있는 만큼의 대처를 해야 했던 당대의 상황을 고려해야 하지요. 바르바로사 작전 초기의 일이었고, 쏘련의 육군과 해군, 공군이 그 당시에 기습으로 인해 괴멸 위기에 있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아르쬼 쎄르기예프의 진술에서 추가적으로 언급할 만한 소재로는, 바실리 쓰딸린의 청소년 시절에 역사 과목을 가르친 마르찌쎼프와의 일화가 있습니다. '쓰딸린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바실리 쓰딸린의 성적을 부당하게 높일 것을 학교 교장이 요구했을 때, 그에 반발하여 쓰딸린에게 서신을 보낸 사건이지요. 마르찌쎼프의 항의에 대해 쓰딸린은 사과하는 태도를 보였고, 오히려 이를 장려하기까지 했습니다. 이후 바실리가 1937~38년 겨울 내내 역사 수업을 다시 들어야 했다는 데에서 보듯, 한 번의 사과로 끝나지 않았고, 그 점에서 이오씨프 쓰딸린은 진정성을 보인 것이지요. 바실리 쓰딸린 역시 마르찌쎼프에 대해 '두려움을 모르는 정직한 사람'이라고 칭찬한 바 있는데, '반성을 하지 않는 망나니'는 아니었다는 방증으로 됩니다.
바실리 쓰딸린이 이오씨프 쓰딸린 사후에 배반죄와 직권남용죄로 1953년 4월에 재판에 회부됐을 때, 그에 대한 근거들이 비정합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았다는 사실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전자의 경우, 다름이 아니라 베리야와 흐루쇼프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죄목이 추가됐고, 후자와 같으면 수심 50미터의 수영장을 모쓰끄바 인근 공군 기지에 만들어서 군기 문란을 초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지요. 그러나 문제는 그와 같은 규모의 수영장이 당대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르쬼 쎄르기예프의 반어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바실리가 수심 50미터의 수영장을 처음으로 짓기 시작한 셈"이지요. 그만큼 바실리가 이오씨프 쓰딸린 생전에 '직권 남용'을 했다는 데에는 충분한 근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아르쬼 쎄르기예프의 진술이 수록되어 있는 ≪쓰딸린을 기억하며(Вспоминаю Сталина)≫의 인터넷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stalinism.ru/zhivoy-stalin/vspominayu-stalina.html
잘 읽었습니다. 아무리 가장 가까이에서 가족이 쓴 자서전이라도 스탈린의 개인사가 정확히 반영되지는 못하나 보군요. 길고 유익한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