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과 미국의 안보 전략이 처음 맞부딪힌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미 행정부와 의회는 3단계의 주한미군 감축을 추진했고, 펜타곤(국방부)과 정보기관 등 강경파는 이에 반대하고 있었다. 때마침 북핵문제가 불거지자 국방부 등은 그 위험을 과장하면서 주한미군 감축 계획을 막아섰다. 여기서 잠시 북핵문제의 발단을 돌이켜보자.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다른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의 핵심 원료인 플루토늄 '불일치' 문제다.
1992년 미 중앙정보국(CIA)과 국방부는 북한의 비밀 핵무기 개발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를 '기만 계획'이라고 불렀다. CIA에 따르면 북한이 보유한 플루토늄은 IAEA에 신고한 90g이 아니라 핵무기 1-2기를 만들 수 있는 10kg에 달했다. 이러한 '불일치'에 미국이 특별사찰을 요구하지 북한은 "강도적 요구"라며 거부했다.*
이 갈등은 한반도 전체로 번졌다. 그해 10월 미 국방부장관 딕 체니는 한미연합훈련(팀스피릿) 재개를 발표한다. 9개월 전 훈련을 중단하기로 한 한미 정상의 합의를 뒤집은 것이다. 북한은 이에 격렬히 반발하며 NPT 탈퇴를 선언했다. 이른바 '1차 북핵 위기'의 시작이다.
북핵과 미 안보 전략 사이의 두 번째 긴장은 1990년대 중반 미사일방어체제(Missile Defense, MD)를 두고 일어났다. 미 공화당과 군산복합체는 MD를 국가안보의 핵심으로 내세웠고, 막대한 예산이 드는 이 방어 전력의 구실을 '북핵 위협론'에서 찾았다. 뒤집어 말하면 북핵 · 미사일 문제 해결이 MD 구상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은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의 북미 제네바기본합의(제네바 합의) 이행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2000년 대선에서 8년 만에 정권을 탈환한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행정부는 대북 협상을 중단한 채 MD 확대 · 강화에 박차를 가한다. 명분은 물론 '북핵 위협론'이었다.
― 정욱식,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서해문집, 2023, pp. 28~30.
추신. '불일치' 문제의 진실이 드러난 것은 2008년의 일이었다. 영변 핵시설 가동 일지를 검토한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1992년 신고 내용이 맞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2008년 10월 미국이 북한을 20년 만에 테러지원국 목록에서 제외한 결정적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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