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이타림들은 성진우와 싸우면서 '성장'하는 것이고, 이 이타림은 성장하지 못한 이타림이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자신의 권능이 부정당하고, 자신의 무력감을 느끼며, 자신이 속수무책으로 밀리며 고전하는 상황에서 이 이타림도 '흥미'와 '즐거움'을 느낍니다. 여태까지 단순한 반복적인 삶과 달리 색다른 경험에 분노를 압도하는 기쁨을 느낍니다.
그리고 베르랑 싸우던 이타림의 창조의 능력이 변화됩니다. 창조의 능력에 단순히 적을 죽이라는 의도로 만들어지는 사도들이었다면, 이제는 다양한 상상력과 변칙적인 능력을 갖춘 사도들을 창조하도록 방향성이 바뀝니다.
이렇게 이타림이 성장한 순간, 성수호와 군주들이 서서히 자신에게 관심을 주고, 이타림은 자신이 '죽을 위기'라는 것을 자각하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피조물들이라고 무시하던 오만하던 아까와 달리 성장한 이타림은 자신의 죽음을 즐겁게 받아들이기로 하며 파괴를 시도합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세계마저 파괴하는 것으로 자신의 육신이 찢겨나가는 고통속에서도 즐거운 전투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 피조물들,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제물로 바쳐 신의 도구를 발동시킵니다. 안타레스는 이를 두고 '영겁의 권태'를 끝낼 '단 한 번의 찬란한 파멸'을 완성시키고, 그 끝에서 가장 뒤틀린 형태의 '창조'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세계가 파괴되는 가운데, 세계와 모든 피조물들, 이타림 본인까지 제물로 바쳐서 발동한 신의 도구인 '고독의 신의 무대'. 이 힘이 성수호를 환영에 가둡니다. 환영에 가두기 전에 이타림은 성수호를 '같은 유희를 즐긴 동료'로 친근하게 말을 걸며 다른 이타림들이 너희 세계를 노리고 움직일거라 말합니다.
환영에 갇힌 성수호는 성진우와 차해인의 아들인 대학생으로 평범하게 지내고, 지구에서 게이트 등 문제는 그림자 군주와 S급 헌터인 부모님이 해결하는 환영에 갇혔습니다.
앞으로 이 환영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이타림이 신의 도구를 사용해서 자신의 세계와 자기 자신까지 제물로 바쳐서 성수호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한 것인데...
이 이타림이 전투 도중에 경험을 통해 창조의 권능이 성장하는 모습이 나온 것처럼(그래봤자 아직 초급 단계인 듯 하지만), 성진우랑 계속 싸우고 있는 이타림들은 '성장'을 하다보니 성진우를 귀찮게 하고 있음을 보여줬네요.
이미 성진우는 이런 이타림들의 변화를 100화에서 언급하고, 골치 아파 하고 있었죠.
이타림의 단일 전투력은 성진우의 마력을 제공 받을 수 있는 베르 이하지만, 창조 능력이 계속 성장해서 골치 아파지고 그 중에선 아예 베르 수준의 사도를 만들어낸 이타림까지 나와버렸으니.
단일 전투력보다 이 창조의 권능이 성장하는 것이 제일 위협적이고, 골치네요.
이타림 설정이 창조신인 걸 생각하면 전투보단 창조 쪽이 더 위협적인 게 맞는 듯?
단일 전투력은 좀 약하긴 하지만, 창조의 권능이 성장하는 것이 성가시죠. 그림자 군단처럼 무한하게 계속 만든다는 것도 그렇고. 사도급들은 그림자 병사로 만들 수가 없어서 성수호도 세계수의 열매를 통해서 룬석으로 만들어버려야 했고요. 성진우는 활용할 방법이 따로 없다보니 베르가 포식하게 해서 사도들의 권능들을 흡수하게 했던 것이 전부였고. 창조의 능력이 점점 더 성장하고, 이타림이 자신이 약자인걸 인지하고 보다 위로 나아가려고 하는 순간이 진짜 위험해지는 때네요. 자기가 강자가 아니라 약자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이타림이 진짜 위험해지는 순간이라는 것이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