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오리진 25화] 시안 할라트
시크릿 파일 - 시안 할라트
무엇 하나 대단할 것 없는 소년의 삶에서 단 하나 특별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검을 향한 열망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소년도 알지 못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 검을 쥐고 있었다.
소년은 매일 같이 검을 휘둘렀다. 손아귀가 찢어질 때까지, 직접 만든 조잡한 목검이 닳아 부러질 때까지 휘둘렀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소년의 몸은 자연스레 검을 따라 움직였다.
소년을 본 마을 사람들은 쓸데없는 일을 한다며 그를 비웃었다.
기껏해야 어린아이의 치기.
그런 날 선 시선 속에서도 소년은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굶주린 짐승 한 마리가 산에서 내려와 마을을 마구잡이로 헤집었다.
누구도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도망치기 바쁘던 그때, 소년이 나타났다.
소년이 팔을 휘두르자 한 줄기 섬광과 함께 짐승의 목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쓰러지는 짐승을 지켜보는 소년의 손에 들린 것은 낡은 목검 한 자루였다.
「내가 한 발 늦었군.」
한 남자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한 때 기사였으나 은퇴 후 고향에서 자경단을 맡고 있는 남자였다.
쓰러진 짐승과 목검을 쥔 소년을 본 남자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렇게 커다란 짐승을 목검 하나로 처리하다니.
그것도 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소년이.
이 아이는 검의 천재다.
남자의 눈에 한 줄기 빛이 스쳐 지나갔다.
「꼬마야. 검을 제대로 배워볼 생각이 있느냐?」
더 이상 자신이 가르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가 소년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검술의 재능으로는 이 나라의 역사에 남을 인재.
하지만 이 나라는 평민에게 친절한 나라가 아니었다.
안전한 둥지에 머무르게 할 것인가, 위험하지만 높은 하늘에 날려 보낼 것인가.
그런 남자의 고민은 소년의 검이 그리는 궤적을 보고 깔끔하게 사라졌다.
아무리 힘든 길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저 재능은 찬란하게 피어나야만 하는 것이었다.
「기사가 되어볼 생각은 없느냐?」
기사.
생각지도 못한 말에 소년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하지만 동시에 가슴 한편에서 차가운 의문이 솟아올랐다.
기사가 될 수 있는 건가?
평민에 불과한 내가?
그 고민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남자가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사 학교에 추천장을 써주마. 쉬운 길은 아니지만 너라면 잘할 것이라 믿는다.」
소년은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추천장을 품에 안고 기사 학교로 향했다.
하지만 소년이 본 것은 그의 상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귀족은 검술보다 친목을 다지는 것에 열중했고,
평민은 귀족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기사 학교에서 평민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귀족에게 머리를 숙이거나, 학교를 떠나거나.
소년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를 시기한 귀족들의 방해에도 결코 멈추지 않았다.
하급 기사.
그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휘장을 보았다.
기사 학교 최우수 졸업생은 중급 기사부터 시작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 쥐어진 휘장은 하급 기사의 약장이었다.
필시 귀족들의 농간일 것이다.
평민에 불과한 그가 자신들의 위에 선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겠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를 향한 방해가 들어올 것이리라.
그리고 그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는 전쟁의 최전선으로 배치되었다.
원래라면 신입 하급 기사가 배치될 리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을 오히려 기회로 여겼다.
최전선에서 공을 세우면 누구도 자신의 앞을 막아서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첫 출진에서 그는 전장의 가장 앞을 내달렸다.
새하얀 갑옷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검을 휘두른 끝에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는 언제나 전장의 가장 위험한 곳에서 싸웠고, 그의 이름은 승리의 일등공신으로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어느 날, 그는 부하들이 자신의 갑옷에 묻은 피를 닦아내느라 늦게까지 고생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에 마음이 쓰인 그는 평소의 갑옷 대신 붉은색 갑옷을 입고 전장으로 나섰다.
붉은 갑옷을 입고 전장을 누비는 기사에 대한 소문은 전장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의 앞을 막아서는 이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고,
그의 검 아래 전쟁은 언제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어느 순간 그는 이름 대신 전장의 붉은 강, 핏빛의 이그리트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야만족의 침략, 괴물의 토벌, 국가 간의 전쟁.
그가 향한 전장은 무엇 하나 쉬운 곳이 없었다.
그가 전쟁에서 목숨을 잃기를 바라는 귀족들의 수작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는 언제나 승리와 함께 돌아왔다.
야만족 족장의 목을 베고 기사단을 무너뜨리고 적국의 성을 빼앗았다.
사람들은 그가 평화를 가져왔다 말했고,
음유시인들은 그를 영웅이라 칭송하며 노래했다.
그가 전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를 보는 귀족들의 시선은 날카로워졌다.
미천한 평민 출신 주제에 언제까지 방만하게 날뛸 것인가.
귀족들의 불만이 높아질 무렵, 그들에게 커다란 폭풍이 찾아왔다.
커다란 전쟁을 마친 이그리트를 위한 개선식.
왕이 이그리트에게 말했다.
「언제까지고 내 곁에 있어주게.」
이그리트를 향한 왕의 지지.
그 말은 귀족들 사이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더 이상 검을 휘두르는 재주 밖에 없는 하급 기사가 아니었다.
왕의 지지를 얻은, 이 나라 제일의 기사였다.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정적이었다.
그리고 귀족들은 그런 이를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손 쓸 수 없게 되기 전에 잘라내야겠지.」
어느 날 이그리트의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소수의 병사를 이끌고 은밀히 움직여 반란군을 처리하라.」
이해할 수 없는 명령.
하지만 편지에 찍힌 것은 분명 왕의 인장이었다.
의심하는 것조차 불경이라는 생각에 이그리트는 굳은 표정으로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나섰다.
편지에 적힌 곳으로 간 그를 반긴 것은 다름 아닌 아군의 화살이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병사들의 기습에 부하들은 저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쓰러졌다.
밀려오는 병사들을 간신히 처리한 이그리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귀족들이었다.
「반역자 시안 할라트를 처단하겠다.」
반역자.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은 이그리트가 검을 굳게 움켜쥐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단숨에 달려들어 벨 수 있다.
이그리트가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그들의 손에 한 여인이 끌려 나왔다.
「아내를 살리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지?」
수많은 시련 앞에 단 한 번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워왔다.
그 끝에 도달한 곳은 물러서고 싶어도 물러설 곳이 없는 곳이었다.
무릎을 꿇은 이그리트의 머리 위로 전장에서 언제나 그와 함께한 검이 드리워졌다.
「처리해라.」
귀족의 그 말과 함께 이그리트의 눈앞에서 아내와 부하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그 모습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토해내려는 순간 그의 목 위로 검이 떨어졌다.
생의 마지막 순간 토해내지 못한 분노는 그의 영혼을 오랜 세월 어둠 속을 떠돌게 만들었다.
풍랑 속에서 난파한 배처럼 위태롭게 어둠을 떠돌던 그는 어느 강대한 기운과 만났다.
눈을 멀게 만들 것만 같은 짙은 어둠. 영혼을 집어 삼킬 것만 같은 찬란한 힘.
그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의 주인이 누구일까. 이그리트는 어둠 속으로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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