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돌아왔습니다. 닳고 닳아 번들거리는 패딩에서 노량진의 컵밥 냄새와 담배 냄새가 납니다. 그 냄새는 어쩐지 먼 타국의 쓰레기 가득한 거리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형은 침묵으로 선언합니다. 패잔병이 왔다. 나를 아무도 건드리지 말아라. 햇수로는 사 년, 체감 세월은 사십 년. 그것은 부모님의 시간입니다. 나의 시간이 아닙니다. 부모님은 정말 개처럼 일했습니다. 개처럼 일해서 개를 먹여 살렸습니다. 형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개가 더 낫습니다. 옆집 똘이는 집이라도 지키니까 말이죠. 형의 눈빛에서 하나의 감정이 두드러집니다. 바로 분노입니다. 심기를 거스른다면 그게 누구라도 물어버릴 듯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 한 달 동안 형의 시야를 피해 살아왔습니다. 어떤 위로의 말도 하지 않고, 어떤 비난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집은 조용했습니다. 뭐, 지금도 조용하긴 합니다.

손톱을

물어 뜯습니다. 습관입니다. 자라난 손톱이 불경스러워 보여 어릴 적부터 뜯었습니다. 사람들이 뭐라해도 그때 뿐. 습관은 반복되기 때문에 습관인 것입니다. 형이 돌아온 뒤로 나는 손톱뜯기에 더 몰두했습니다. 잘근잘근. 형의 방문 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멘솔 냄새가 집 곳곳으로 퍼집니다. 냄새는 바닥으로 가라앉아 그렇지 않아도 묵직한 공기를 더욱 끌어내립니다. 나는 형을 죽이고 싶어집니다. 패잔병이 되버린 형, 투명인간이 되버린 형, 부모의 시간을 죽인 형. 날씨가 화창합니다. 아무 상관없이. 곧 개강입니다.

맥주를

배가 터질 정도로 마시고 나서야 모임은 끝이 났습니다. 가기 싫었지만 집에 박혀 있는거에 비하면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나는 취해서 얼마간 기분이 좋았습니다. 집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지만 가족을 보면 취기가 깰 거 같아 혼자 근처의 피씨방으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형이 있었습니다. 형은 헤드셋을 낀 채, 예의 분노에 찬 눈빛으로 적의 머리를 노리는 중이었습니다.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리며 수류탄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고민하다 슬그머니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형은 주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는 피씨에 로그인을 하고 같은 게임을 켰습니다. 곁눈질로 형이 들어간 방을 확인하고 빈자리가 생겼을 때 재빨리 들어갔습니다. 형과 같은 팀이었습니다. 나는 형의 앞을 왔다갔다하며 시야를 막았습니다. 개새끼가. 귓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낄낄거리며 웃습니다. 참다 못한 형이 헤드셋을 벗어 던집니다. 그리고 방을 나갑니다. 코에 닿는 멘솔 냄새. 형을 부릅니다. 놀란 얼굴이 보입니다. 나는 여전히 웃으며 말합니다. 왜 나왔어? 놀란 얼굴은 곧 노한 얼굴로 바뀝니다. 침착하게 눈을 마주 봅니다. 취기가 용기를 불어 넣어준 덕분입니다. 게임을 끄고 형과 같이 밖으로 나갑니다. 사람 하나없는 공원을 나란히 걷습니다. 화가 조금 가라앉은건지. 먼저 말을 꺼냅니다. 답답해서 나왔어. 집에 있으려니 눈치도 보이고. 그래, 잘했어. 깜빡거리는 가로등이 보입니다. 불빛 아래로 날벌레가 천지입니다. 얽히고설키다 떨어지기도 합니다. 다 죽었으면 좋겠다. 그 말에 내심 놀랐지만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형이 누구를 죽일 위인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니 게임에서나마 사람을 죽이며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라고. 벤치에 형을 앉히고 편의점으로 가서 맥주 두 캔을 샀습니다. 맥주를 안주 삼아 이야기를 나누다 자정이 되서야 집으로 갔습니다.


유리창이

부서졌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내 머릿속에도 금이 갑니다.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형의 팔에 매달렸습니다. 그만해, 개새끼야! 형은 본능적으로 집을 박살냈고, 나는 본능적으로 그런 형을 말렸습니다. 얼핏 본 부모님의 얼굴에는 실망감마저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형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씩씩거렸습니다. 개새끼가 된 형과 그 아우인 나와 어미개와 아비개. 우리는 개같은 가족. 개같은 패밀리가 떴다! 이 상황에 예능 프로그램의 이름이 떠오른 나도 훌륭한 개새끼였지요. 나는 두 팔로 형의 허리를 끌어안고 밖으로 향했습니다. 뒤뚱거리며 걷다 유리조각이 발바닥에 푹, 박혔습니다. 악소리 나오게 아팠지만 참아야 했습니다. 형은 그 와중에도 팔을 휘둘러 사기그릇과 유리잔을 깨뜨렸으니까요. 용을 쓴 끝에, 결국 집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혼이 나가있는 어머니께 문을 잠그라 말하고 가까운 거리로 갔습니다. 쏟아지는 시선을 받아 내면서. 쪽팔리게도 울음이 나왔습니다. 형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소리치고, 발바닥의 통증은 심해지고, 피가 나고, 행인들은 그런 우리를 보며 수군거리고, 트럭은 쌩쌩 잘도 달립니다. 그 앞으로 형을 밀치고 싶습니다. 십 톤 트럭의 바퀴에 깔려 묵사발이 된 형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일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집이 조용해질수 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 평 짜리 고시원과 노트북, 책상위에 쌓여 있는 교재. 강의를 듣고 돌아 오면 아무도 없어. 그게 전부라니까. 얼마나 숨막히는 공간인지 알고 있어? 관용구가 아니야. 정말 숨이 턱, 막혀. 너는 대학다니면서 술도 마시고 여자도 만나잖아. 물론 나도 여자는 만나지. 접점은 공시생이라는 신분 하나가 전부지만.

형만 그런거 아니야.

그렇지.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말이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그 고통이 엔분의 일이 되는게 아니라고.

참아야지. 별 수 있나.

넌 손톱 물어 뜯는 짓 왜 못 참는데?

이건 습관이니까.

좋은 핑계다, 새끼야. 나도 참아보려 했어.


하지만. 형은 참지 못했습니다. 기어코 집을 떠났습니다. 나는 널려 있는 유리를 피해 형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백팩 안으로 쑤셔 넣다 만 옷가지가 눈에 보였습니다. 시원한 기분. 박힌 유리조각을 빼낼 때 이상으로 시원한 기분. 어머니와 내가 쓰레받기에 유리조각을 담는 동안, 아버지는 베란다에서 담배를 태우셨습니다. 청소가 끝난 집의 풍경은 형이 오기 전과 같이 깨끗했습니다. 찬 바람이 드나드는 유리창만 뺀다면. 추위에는 젬병인 아버지가 바로 샷시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창문은 빈틈없이 메워졌습니다. 그리고 저녁, 남은 세식구가 밥상 앞에 모였을 때입니다. 형의 소식을 알리는 전화가 왔습니다. 투신이요? 경찰에게 되묻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옅게 떨립니다. 울음을 참지 못하고 오열하는 어머니. 나는 격한 슬픔을 느끼는 동시에 안도합니다. 자연스레 손톱을 입에 가져갑니다. 잘근잘근. 피맛이 혀를 타고 번집니다. 뭐, 괜찮습니다. 손톱이야 다시 자라나니까요. 하지만 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