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아재가 `단시'라며 적은 시 몇 수를 보자.



모기가 바닥을 기듯이 날면서 이 발 피 먹자고 탁 죽임 파리채


여전한 여치 한 마리 저


요새 밥을 많이 먹네


비 쏟아지는구나 모기 두 마리 잡기 진정 마음 없는 때





 겨우 한 줄이다. 이 한 줄로 자기만의 시로서 고유성을 갖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글 좀 알면 따라 쓸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짧은 시, 단 시, 즉. 한 줄 시는 인정받지 못해 왔다.

단순히 짧기 때문에 한 줄 시가 효용이 없는 게 아니었다. 너무 쉽고 무분별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완전히 똑같은 시를 옆 동네 철수가 지을 수도 있어서다. 이런 경우 우연치고 너무 들어 맞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위 ㅀ의 시를 보자. <요새 밥을 많이 먹네> ... 이 시를 옆 동네 철수가 똑같이 지을 수도 있지 않는가? 철수가 아니라면 영희라도.

이처럼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더라도 한 줄은 겹치기 마련이다.

표절 하지 않았다는 알리바이가 있어도 불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이름 좀 날린 시인이라면 전통이나 역사, 나이를 내세워 깊이를 따지거나 `원조'를 주장할 것이다.


 아님, 쿨하게 얘기해서. 시 몇 편 겹칠 수도 있는 거지 생각 할 수도 있다.

"너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구나? 상황은 달랐겠지만"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식이라면, 이렇게 언제 어떻게 겹칠 줄 모르면서 시를 쓰고 시를 만난다면

대량 생산 체제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같다.

고유성이 사라지고 대충 비슷하게 찍어 만든 옷 마냥 걸려있을 것이다.


 긴 시가 단순히 시가 길어서 인정 받는 것이 아니라. 긴 시에 깃든 고유성은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심상이 같을 지라도 글자 만큼은 똑같을 수가 없다. 이땐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동포 알렉스나 제시카가 암만 우겨도 표절이다.

그러나 단시. 특히 한 줄 시에는 고유성이 없다. 당장 흔하지 않더라도 흔할 수 있다. 누가 써도 겹칠 수 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아재는 어쩌다 단어 배열이나 하며 놀음하는 신세로 전락하였는가?

위, 시 중에서 하나 골라와서 얘기해보자.


원문: <모기가 바닥을 기듯이 날면서 이 발 피 먹자고 탁 죽임 파리채>


이 시는, 저공 비행으로 발 피를 물려는 모기를 파리채로 탁 쳐 죽였다는 사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결국에는 `발 피 먹자고 바닥을 기듯이 나는 모기를 파리채로 탁 죽였다`는 얘기다.

이걸 막 시적으로 보이도록 단어 배열이나 해서 만든 게 <모기가 바닥을 기듯이 날면서 이 발 피 먹자고 탁 죽임 파리채> 이거다.

내용적으로는 전혀 불필요한 것인데, 시적으로 보이기 위해 발음 즉 운율만 내는 게 아재의 시란 말이다.


 다른 시도 한번 볼까?


<여전한 여치 한 마리 저>

이건 `저 여치 한 마리 여전하네' 이거다. 전에 봤는지 본듯한 건지 모르겠지만, 단어 배열로써 시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게 아재의 시다.

이쯤이면 시라고 하기 보단 그냥 놀음이며 심심한 아재의 일과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이렇든, 아무리 원래 글이란 게 단어 배열에 따라 문장 배열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고 해도

그건 그저 느낌을 달리 표현하는 한 방식일 뿐이지. 그것으로 시가 될 수는 없다.

누구도 소설을 읽거나 쓰면서 발견한 명 문장을 단시 혹은 한 줄 시라고 일컫지 않는다.

한 줄 시는 허울 좋은 명칭일 뿐이지 시가 될 수 없는 시다. 문장일 뿐이다. 그것도 한 문장일 뿐이다.

책 속의 한 줄 따위와 마찬가지다. 한 줄 시는 시가 될 수 없다.

시를 쓰고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에 의해 계속 한 줄 시 따위가 생겼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는데

다시 말하지만 고유성이 없다. 그것은 존재성이 없는 것이다.


 하이쿠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어떻게 고유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우선 정형을 만들어야 하고 그 규칙을 따라야 한다. 정형이 섬세할 수록 고유성은 배가 된다.

자기 마음대로 글자 수를 비약 해서 줄이거나 늘리는 정형이라면 정형이 없는 것과 같아 고유성을 찾아 보기가 힘들다.


여전한 매뚜기 한 마리 저

여전한 사마귀 한 마리 저

저 방아깨지 한 마리 여전히

저 귀뚜라미 여전히 한 마리

요새 죽을 많이 먹네

죽을 요새 많이 먹네

많이 먹네 요새 밤을

많이 먹네 요새 죽을

요새 많이 먹네 밥을

요새 밥을 먹네 많이

요련, 단어 배열로써 전락한 시라며 쓰는 시의 어디가 시인가, 이건 단어 배열 놀이. 말 장난에 다름 아니다.

한도 끝도 없이 겹치고 아류가 생산되고 너도 없고 나도 없어 흔해 빠지고 닳고 닳아 지루해질 뿐이다.

참신성, 창작성, 독창성, 희소성 무엇이 있나 거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