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에 대한 일들은 이제 나와는 무관하다. 마치 역사서에 기록된 짤막한 사건처럼.
단지 시간의 흐름 뿐만이 아니다. 조금 더 복잡하고 인위적인 느낌.
그러니까, H와의 추억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던 예전과는 분명 다르다. 나는 어쩌면 높은 상공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가 걸었던 길들과 걷지 못했던 길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각자가 걸어가야만 했던.
드론으로 촬영한 모교 운동장을 우연히 보았다. 누가 일러주지 않았더라면 착각했을 것이다.
하늘에선 모든 것들이 초라하게만 보이는 것이다. 제 몸집보다 몇배나 큰 짐승을 향해 낙하하는 까마귀를 이해할 수 있다.
시체의 눈알을 파먹는 것도, 그리 대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역사를 보듯이 본다. 유난히도 추웠던 작년 12월, 고향집에 며칠 다녀온 친구는 어항째로 얼어버린 금붕어를 봤다.
천장부터 얼어붙는 어항 속에서 금붕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만약 그때 집으로 가지 않았다면, 나도 그 차가운 반지하에서 그대로 얼어 죽었겠지?"
"하필 금붕어를 키웠어. 튼튼한 화분이나 키울 것이지"
친구는 금붕어를 묻어주었다. 변기가 얼었기 때문일까 어항이 얼었기 때문일까. 그건 알 수 없다.
'그 해 12월 A의 반지하 방에서 금붕어가 죽었다. A는 그걸 8공학관 화단에 묻었다.'
난 그저 그렇게 쓴다. 보잘것 없는 역사는 그렇게 탄생한다.
H를 증오하기 위해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끔찍한 생각을 했다. 차에 치인 개의 사체, 거기에 엉겨붙은 파리떼, 상한 우유.
이제 그런 노력은 필요하지 않다. 나는 높은 하늘에서 우리의 흔적을 읽는다.
'H와 헤어졌다.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 라고 썼다가 지운 일은 무척이나 마침맞은 일이었다.
그때 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숨이 막힐 때까지 올라간다. 세상은 더없이 작고 초라하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는다.
H와의 시간이 날조된 것은 아닐는지, 그런 생각도 관두었다.
'H와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쓴 글귀도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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