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감상하면서 읽어주세요)



마지막 대국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을 어린시절부터 나의 인생은 이기기 위해 목숨을 건 대국의 연속이었다. 나에겐 대국에서 이기는 것만이 전부였다. 바둑판 위로 벗어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결과, 꽤 오랜 시간동안 나는 최고의 기사로 군림할 수 있었다. 나의 재능은 마지막 빛이었다. 아니, 이 바둑판이 케케묵어 더이상 다른 빛이 만들어지지 못한 걸일지도 모른다. 이젠 더이상 아무도 바둑따위를 즐기거나 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대국을 계속했고, 단련했지만, 어렴풋 느끼고 있었다. 그건 마치 어린아이가 나무열매를 따려고 하는 그런 감각이었다. 나는 닿지 못했다. 내가 어릴적 봐왔던 최고의 기사들의 기력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런 내가 바둑계의 일인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바둑인구가 줄고, 새로운 기사는 유입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청자가 없는 바둑 경기에 스폰서들은 더이상 자금을 대주지 않았다. 바둑을 순전히 즐기고 좋아해서 스폰했던 스폰서들도 이젠 더이상 없다. 마지막을 고할 준비를 조금씩 마음속으로 해나갔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한국 기원이 곧 다른 용도의 건물로 팔려나간다. 이 상실감은 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지막 국수(國手)전의 결승전. 이 대국을 끝으로 한국 기원에서의 대국은 없다. 이 대국실이 대국 용도로 쓰이는 것도 마지막일 것이다. 나는 장식하고 싶었다. 국수전의 마지막 결승전 대국의 기보를. 상대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본래는 타고난 공격성으로 공격적이고 변칙적인 바둑을 두던 그가, 마치 상대와 어울려 유려한 춤을 춛추듯 조화로운 바둑을 두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림을 그리는 듯.


나는 그에게 정성스레 응수했다. 비록 내가 어렸을 때의 최정상 기사들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바둑을 두었다.


나에게 바둑이란 마치 투명한 유리같았다. 나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투명한 유리. 난 그 유리를 비추어보며, 내 세상을 그렸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그 유리는 이제 곧 깨질 것이다. 그 깨진 유리파편이 흩날리며 스테인드글라스처럼 햇빛을 반사해 빛난다면 참 아름다울 것이다.물론, 투명하게 빛나던 유리는 없다. 유리와 너무 가까이 있던 내 몸은 날아온 파편에 긁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유리파편에 긁히면서 나는 유리 조각을 모아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었다. 다 깨져버린 유리조각으로 엉망진창의 유리공예라도 하려는 듯. 누군가 꼭 이걸 발견해서 기뻐해주길 바라는, 소중히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남긴 마지막 유산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도 줍지 않을, 날카롭고 볼품없는 그런 물건이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아름다움을 남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길 바랬던 대국의 종반. 어느새 흘러내리는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어린아이가 떼쓰듯, 어쩌면 애인과 헤어졌듯, 혹은 다른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듯이 눈물은 고요하게 바둑판 위로 떨어졌다.


그렇게 오랜 역사의 한 가지 놀이는 끝을 맺었다. 그 뿐이었다... 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