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시각에 비춰 볼 때 조금이라도 아니꼬우면 상대가 누구든지 기성 문학 비평을 들먹거리며 주정 부린다.  자신은 언젠가 문갤에 이이체의 시에 대한 해석비평을 올린 적이 있으므로, 즉 해석비평 하나 올리지 않고 뭔가 알고 있는 것마냥 글을 올리는 너희들은 모두 가식적인 위선자에 불과하다는 것. 하지만 대부분의 글쓴이들은 먼지의 이런 댓글에 대해 일체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가 쓰는 반박이 글의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닌 글쓴이의 역량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먼지 특유의 나무 가지 뻗듯 논지가 이리 저리 튀는 문체로 자신의 인생 넔두리까지 곁들이며 열 줄 이상 댓글을 달아버리니 글쓴이 입장에선 헛소리로 치부하고 신경을 꺼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먼지 또한 아는지, 그는 자주 \"네가 해석비평을 쓰지 못할 것쯤 알고 있다\"라는 식의 사족을 덧붙인다. 글쓴이가 자신과의 정면대결을 회피한다 정의내림으로써 자신의 자존감을 정립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먼지는 정말로 상대방이 증오스러워서 이런 식의 댓글을 남기는 것일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무지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인처럼 자신의 가치를 정립시킬 수 없는 자신에 대한 한탄이 문갤이라는 작은 공간 속에 분출되는 것이다. 문갤이란 자신의 무너진 자존감에 대한 회복의 도구일 뿐, 그 이상 그 이하의 관심도 갖고 있지 않다. 분노한 것처럼 댓글을 달아도 실제론 먼지쪽이 관심이 더 적다는 말이다. 적당히 만만해보이는 사람을 골라 댓글 달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상대가 불이 붙으면 더욱 좋다. 먼지의 입장에서 볼 때 그는 나보다 \'낮은\' 존재니까.

먼지야. 너의 꼴리는 대로 백스페이스조차 누르지 않는 문체로 보아 추측컨데, 너는 글쓰는 것을 두려워한다. 정확히는 진지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누군가 진지하게 글을 쓰면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굴지마라 위선자야\"라며 비난하는 네 속내엔 내가 못하는 걸 너희가 할리 없다는 자기 기만이 숨어 있음을 알고 있다. 너는 도무지 진지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진지하면 진지할 수록 자신이 초라하게 보이니까. 그럴 바에 자신을 뭐든지 꾸밈없이 말하는 솔직한 존재로 상정하며 또 하나의 위선으로 빠져버리린다. 너는 차라리 그게 편한 것이다. 워드의 존나게 새하얀 공백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보느니, 그냥 휘갈기는 것이다. 남이 그런 너를 보고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말을 해도 너는 상관이 없다. 그 녀석들은 진지해진 네가 쓴 글을 보지 못했으니까.
늘 이이체를 울부짖는 너에게 말한다. 그래서 도대체 \'너\'의 글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미래엔 존재할 수 있는가? 너는 대답할 수가 없다. 오기만 가지고는 글을 쓸 수가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너는 먼지인 것이다. 어느 날 사라졌다가 이따금 돌아와서 글자만 휘갈기는, 있으면서 동시에 없는 그런 \'먼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