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났다고 했다. 아버지는 전쟁이 났다고 했다. 아버지는 서둘러 큰 소리로 “전쟁이다!”라고 소리치며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식구들을 깨웠다. 아이는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전쟁이라니? 무슨 소리에요?”
충치로 썩어가는 이빨이 선사한 화끈하게 부은 오른쪽 볼을 감싸 안으며 아이는 물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제대로 말해주는 대신 서둘러 아이에게 옷을 가져다주며 말했다.
“전쟁이 났데! 서둘러 피난 가야지. 자, 옷 입으렴.”
‘전쟁’이라는 말에 아이의 온 신경이 곤두섰다. 아이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본지 채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아픈 볼을 감싸 안으며 억지로 팝콘과 콜라를 쑤셔 넣으며 감상했던 그 영화는 아이에겐 최악의 경험이었다. 차라리 고집부리지 말고 치과에 갈걸, 그랬다면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될 텐데. 낭자하는 선혈과 시끄러운 총소리, 외국인들의 빠른 말투에 긴장이 고조될 때 마다 아이의 부모님은 ‘어쩌면 우리에게도 일어날지도 몰라.’라고 말해며 겁을 주곤 했는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아이가 옷을 다 입자 이번엔 어머니가 서둘러 옷가지를 잔뜩 싸맨 보따리를 들고 왔다. 아이는 서둘러 방에서 네 살 생일선물로 받은 소중한 물고기 인형을 보따리 안에 꾹 눌러서 찔러 넣었다. 커다란 고등어 인형은 어느새 납작한 넙치 인형처럼 되어버렸다. 아이가 무서워서 화장실에 가려는 순간, 아버지가 다시 소리를 치며 나타났다.
“서둘러! 지금 가야 한다. 당장!”
아이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집을 나왔다. 부모는 모두 커다란 보따리나 여행용 케리어를 끌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이가 유치원 보육교사에게 들은 임진왜란 이야기에 나오는 피난민들의 모습과 쏙 빼닮았다.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리려 했지만 아버지는 그런 아이의 입을 막으며 주의를 주었다.
“아직 아파트 안이니까 시끄럽게 하면 안 돼. 나쁜 사람들이 쏜 총에 맞을지도 몰라.”
아이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눈물을 겁과 함께 꿀꺽 하고 다시 배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나 아직도 두려운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두려운 마음은 점점 커져가 마치 암처럼 오른쪽 볼에 전이되었다. 아이는 오른쪽 볼을 껴안고 소리 없이 울먹였다.
가족은 차에 올랐다. 아직 밖은 깜깜했다. 전쟁이 났기 때문인지 주위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차에 시동이 걸리는 동안 아이는 어디선가 혹시 ‘나쁜 사람들’이 집체만한 탱크로 멀쩡한 자동차들을 하나 둘 밟으면서 다가오거나, 아니면 요란한 소리를 내는 전투기들이 창공을 가르며 날아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몸을 움츠렸다.
아이는 차 중앙조작판 위에 달린 디지털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막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버지는 전쟁이 났음에도 다소 긴장되긴 했지만 평소와 마찬가지로 “자, 출발한다. 안전벨트 꽉 맸지?”라고 확인한 뒤 엑셀을 밟았다.
아이는 두려워하며 뒷좌석에 동승한 어머니의 몸에 꽉 달라붙어 떨어지려하지 않았다. 얼굴을 어머니의 몸에 파묻으며 혹여나 바로 옆에서 떨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폭탄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 어쩌면 사나운 개나, 심지어 적들이 풀어놓은 가느다랗고 기다란 키의 팔척 괴물이 자동차보다 빠르게 이들을 쫒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는 도중에 아이의 볼은 더욱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앞 뒤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며 질주하는 차 안에서 아이는 결국 어머니에게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미안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저번 주에 치과 가는 건데.”
아이는 어머니를 꽉 껴안고 비를 맞은 새끼고양이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어쩌면 이미 폭탄이 떨어지고 있으리라, 얼마 가지 않아 모두 불길에 휩싸이리라, 아이는 눈을 틀어막고 머리로 세상을 보며 그 세상에 여러 가지 두려운 것들을 마구잡이로 집어넣으며 눈물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어머니는 침착하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그런 두 모자를 방해하듯 앞에선 아버지의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런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여보, 애한테 너무 심했어요.”라며 꾸중한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어머니 역시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그래서, 전쟁이 나는 것 보다는 치과 가는 게 훨 났다?”
차가 멈춰 섰다. 아이는 두려워 눈을 꼭 감고 어머니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창문을 보고서 눈을 천천히 떴다. 아이가 마주한 것은 키가 팔척 된 괴물도 폭탄도, 탱크도 아니었다. 단지 깨끗한 초록색 십자가가 달린 흰색 건물만이 아이의 앞에 떡 하니 자리 잡으며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아이는 그곳을 잘 알았다. 그곳은, 대학병원에 부설된 치과 병동이었다.
“아들, 내려. 충치 치료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아버지가 운전석에서 고개를 뒤로 내밀며 유쾌하게 말했다. 아이는 그제야 전쟁과 피난이 자신을 치과로 꿰어내기 위한 두 영악한 부모의 술책이었음을 깨달았다.
안도와 후회가 긴장으로 꽁꽁 얼어버렸던 아이의 몸을 씻은 듯 녹여버렸다. 그러면서 아이는 두 번째 후회를 시작했다. 그것은, 너무 급해서 화장실을 다녀오지 못한 후회였다.
아이의 얼굴이 터져 나오는 오줌보와 눈물과 함께 붉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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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갤러리에 쓴 글들을 읽어봤어요.
재능있고 실력있는 사람들이 가득한 사회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남아있을 자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곳이네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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