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화창한 날에, 정확히 말하자면 봄에서 여름으로 산뜻함에서 무더움으로 넘어가는 그런 날이었다. 그렇게 덥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덥지 않다고는 할 수 없는 날씨였다.
그 애는 평소처럼 집을 나와 혼자 걸어서 학교를 가다가 육중한 몸집의 황소처럼 달려오는 볼보 차량에 부딪혔고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져 나가버렸다. 여중생의 육체는 이리저리 뒹굴며 도로바닥을 피로 적셨고 결국 얼마 못가서 숨이 끊겼다. 그 육중함을 견디기엔 너무 연약했던 거다. 그 애는 앰뷸런스에서 죽었다. 지나가던 시민들의 신고를 받고 달려온 앰뷸런스 속에서 그 아이의 심장과 폐, 간, 모든 혈관은 그 기능을 멈추었고 두뇌는 진작에 멈추어서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하더라도 제 기능을 못했을 것이다. 만약 그 상황에 내가 놓여졌었더라면 과연 나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닐거다. 나 또한 아직 몸이 다 성장하지 못한 십대 남자아이에 불과했고 볼보의 덩치와 속력은 일반 성인 남성도 죽음에 이르게 할만큼 위협적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애한테 달려오는 차를 막을 능력도 없었고 성난 볼보가 그 애를 향해 죽일듯이 달려오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난 그 애가 차에 치여 죽었다는 소식을 그날 오후에서야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그 여학생은 학교에 오지 않았고 나를 비롯 다른아이들이 중학교 졸업장을 받을때까지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 아니 오지 못했다는 편이 적절한 것 같다. 그 애는 분명히 학교에 오려고 등교중이었으니까.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눈에 오똑한 코, 아담한 입술을 가진 애였다. 당시 나는 서서히 성적 흥분에 눈 뜨고 있었던 시기였다. 지나가는 치마입은 여자의 다리만 봐도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언가 끌어올라오는 뜨거움이 느껴졌다. 곧바로 그 뜨거움은 나의 신체에서 가장 예민하고 섬세한 부위에 응축되었고 그것은 서서히 묵직해져서 나는 견디지 못하고 그만 발기라는 것을 해버렸다. 물론 이건 은유다. 그만큼 그 때는 성적 호기심에 서서히 눈을 뜨고 있었고 조그만 자극에도 내 육체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는 성적으로 미숙하지만 빠르게 팽창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그러한 시기에 난 그 여자애를 알게 됬다. 그녀의 눈은 어딘가 내 기억속 유치원 선생님의 것과 닮아있었다. 어릴때는 그저 아름다운 눈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아이의 눈을 보는 순간 내가 어렸을 적에 다녔던 유치원에 근무했던 이미 세상을 떠난지 오래인 매력적인 미소의 그 여선생님의 눈이 그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어딘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애의 눈과 알 수 없는 이유로 원룸에서 홀로 시신으로 발견된 유치원의 선생님의 눈은 정말 닮아있었다. 눈만 놓고 본다면 선생님의 어릴적 모습이 그 아이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살짝 우수에 찬 눈을 가진 그녀에게는 아쉽게도 다섯살의 내가 목격했던 유치원 여교사의 차밍한 미소는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었다. 눈을 가린다면 사실 전혀 다르게 생겨서 그 애를 보고 선생님을 떠올리진 못했을 것이다. 미소는 없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흡사했다. 아직 어린 나이었지만 평소의 발랄한 모습과는 다르게 순간순간에 아주 조금씩 이제서야 막 발현되기 시작한 우아한 여성적인 모습이 비칠 때가 있었고 대화는 몇번 안해봤지만 그러한 모습들이 날 매료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바로 성적인 느낌으로 전달된 것은 아니다.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한다는걸 인정하는 데엔 시간이 걸렸다(그때의 나는 미숙하고 어렸다). 중학교 입학 전에 내게 일어난 여러가지 일들 때문에 나는 사람들을 잘 믿지 못하는 상태였고 외로웠으며 스스로의 마음에 대해서조차 의심을 품고 있었다.
중학교 이전에 일어난 여러가지 일들은 내 인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들로부터 시작된 파동은 아직까지도 내 인생에 남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안좋은 일들을 한번씩 혹은 한번 이상 겪는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내가 열 살이 되었을때 우리 부모님은 이혼하셨다. 두 분의 이혼은 결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두 분이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걸 목격해왔고 언젠가는 두 분의 관계가 파탄날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열 살이라는 나이가 감당하기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부모님의 이혼은 조금 버거운 것의 종류에 해당되었나보다. 두 분의 이혼 후에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을 택했다. 물론 이것도 완전히 나의 결정이라고 보긴 어렵다. 나는 우리 가족이 결속을 유지하기를 원했고 두 분이 서로를 미워하는 것을 멈추고 다시 좋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했다.
하지만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다. 중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나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어머니는 내가 그 어쩔수 없던 상황에 익숙해지길 바라셨겠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이혼을 겪고 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비뚤어진다고 느꼈다. 육체의 성장을 따라 현실의 고통을 자각할 수 있는 정신적인 인식범위도 동시에 넓어지면서 중학교 시절의 나는 내가 느끼기에 아주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자살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무척이나 외로웠고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한 것만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 그 애를 본 것이다. 지나가는 여자의 치마자락과 조그마한 미풍에도 아주 단단히 발기할 정도로 육체적으로 민감했던 것과는 별개로 내 정신은 그때부터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 여자아이를 봤다.
너를 봤다. 너는 아주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매력적인 얼굴에 밝고 명량했지만 두 눈에는 웬만한 보통 사람들의 감각을 가지고선 볼 수 없는 우수가 있었어. 난 널 처음 보았을때부터 그걸 알아차렸어. 아마 그것 때문에 널 좋아했던 것 같아. 이유는 나도 몰라. 하지만 그게 중요한건 아니야,
서서히 현실을 자각하고 있지만 덤덤하게 넘길 수 있는 멘탈은 가지고 있지 않았던 시기에 나는 너의 두 눈에서 처음 가능성이란걸 본 것 같아. 하지만 너는 내가 널 좋아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나버렸어. 그건 어쩔수 없는 사고였어.
그래 그건 사고였다. 나는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사고였다. 가끔씩 횡단보도를 지나갈 때면 그 애가 생각난다. 내게 처음으로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내게는 하나의 상징처럼 굳어져버린 그 애는 교통사고로 죽어버렸고 그건 내가 겪은 두 번째 죽음이었다. 다만 유치원 선생님의 죽음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선생님의 죽음은 그저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인식된 것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죽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좀 더 개인적이고 더 강렬하고 아주 가까이에서 부정하고 싶을만큼 아프게 다가왔다. 한 가지 다행인 건 내가 아직까지 그 애의 눈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걸 위안으로 삼는다.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아직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건 분명 불행 중 다행이다.
비록 그녀의 육체는 이미 썩어버렸을지라도 내 정신이 기억을 유지할 수 있을 동안만큼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눈에, 오똑한 코, 아담한 입술을 가진 내가 좋아했던
그 여자아이는 내 기억 속에서 살아남았고 자신의 모습을 유지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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