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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워홀의 작품 속 '마릴린 먼로'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들어?

간단히 '마릴린 먼로' 라고, 또는 '9장의 마릴린 먼로'라고 답할 수 있겠지.

하지만 정확히 말해 '마릴린 먼로A' '마릴린 먼로A-1' 마릴린 먼로A-2' '마릴린 먼로B-1' .....

이런 식으로 구분해야 맞지 않을까.


같은 방식으로 지금 상자 안에는 햇사과가 가득 담겨 있어.

나는 오늘 아침에 사과 하나를, 점심에 두 개를, 저녁에 역시 두 개를 먹었지.

그러면 나는 사과를 먹은 걸까?

한 개는 살짝 노르스름했고, 두어 개는 속이 문드러져 있었는데도, 나는 사과를 먹은 걸까?

사과A, 사과B-1, 사과B-2 ...이 보다 정확한 표현 아닐까.


황정의 장편 소설 "백의 그림자"에선 시종일관 이런 식으로 개물들에게 독특성을 부여해 나가.


--< 상황1 >--

무재 씨, 나는 가마는 그냥 가마라고 생각했지 거기에 모양이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가마는 가마지만 도무지 가마는 아닌 가마인가요.

무슨 말이에요?

해 보세요, 가마.

가마.

가마.

가마.

가마.

이상하네요.

가마.

가마, 라고 말할수록 이 가마가 그 가마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렇죠. 가마.

가마.

가마가 말이죠, 라고 무재 씨가 말했다.

전부 다르게 생겼대요. 언젠가 책에서 봤는데 사람마다 다르게 생겼대요.

그렇대요?

그런데도 그걸 전부 가마, 라고 부르니까, 편리하기는 해도, 가마의 처지로 보자면 상당히 폭력인 거죠.

가마의 처지요?

가마의 처지로 보자면요, 뭐야, 저 ‘가마’라는 녀석은 애초에 나와는 닮은 구석도 없는데, 하고. 그러니까 자꾸 말할수록 들켜서 이상해지는 게 아닐까요.

그런가요.

가마.

가마.

가마.

어렵다.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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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2 >--

그런데 무슨 국물을 먹으러 가나요?

맑고 개운한 국물이라면 조개죠.

바지락?

바지락도 먹고 다른 조개도 먹고.

다른 조개요?

은교 씨, 바지락 말고도 조개는 많아요.

가리비, 대합, 명주조개, 민들조개, 칼조개, 개조개, 돌조개, 참조개, 동죽, 모시조개, 하고 내가 들어 본 적이 있거나 들어 본 적도 없는 조개 이름을 대면서 무재 씨는 깜박이를 켜고 차선을 바꾸고 속도를 줄였다가 높였다가, 하며 능숙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맑은 오후였다. 도장이 벗겨진 엔진 덮개가 햇빛을 받고 끊임없이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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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로 여기에서 약간이나마 희망을 발견해.

즉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으로는 '파편화' '개인화' '탈중심성' '해체성' 등을 꼽을 수 있잖아.

이러한 담론은 자칫 개인의 무력화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빠질 수 있지. 허무주의자와 염세주의자를 양산할 테고 말야.


하지만, 황정은은 개물들 하나하나에게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주체성(Subject)'을 강조하는 듯해.

비록 거대했던 구심점은 약해졌지만, 그 주위를 따라 회전하던 개인들은 비로소 강해졌다고.


대부분의 포스트모더니즘을 표방한 작품들이 주인공의 죽음 또는 사라짐으로 결론을 맺음으로써 다소 무책임한 반면,

"백의 그림자"가 훌륭한 소설인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해.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 이후 최상위권에 속하는 한국 장.편.이라고 평가하거든.(*단편은 논외)


누가 나를 두고 '한국 사람' 혹은 '남자'라고만 기억하는 건 원치 않아.

OO의 소설을 좋아하고, 취미로는 OO를 즐기고, OO라는 습관을 지녔으며.... 이런 식으로 '독특성(or 단독성)'을 부여해주길 바라.


앤디워홀의 작품 속 마릴린 먼로는 다 같은 마릴린 먼로가 아니고,

내가 오늘 먹은 사과는 사과이지만, 사과는 아니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