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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경 자신이 소유한 토지보상 문제로 불만을 품은 채종기가 숭례문에 시너를 붓고 불을 지른 사건으로, 누각을 받치는 석축만 남긴 채 대한민국 국보 1호가 전소하였다.

-5년 3개월에 걸친 복구 사업을 완료하고 2013년 개방되었다. 2013년 5월 1일에는 숭례문 복구를 고하는 '고유제(告由祭)'가 치러졌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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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질문.

Q) 복원된 숭례문은 숭례문이 맞을까? 숭례문이 아닐까?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1) 숭례문이 아니다. 원본(Original)은 화재로 소실되었다. 저기엔 고유한 아우라가 없다. 모방이고 복제이고 패러디이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허상(Simulacre)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역사를 기억하고 싶다면 잿더미가 된 숭례문을 그대로 두었어야 했다.

(2) 숭례문이 맞다. 원본(Original)에 집착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러한 태도는 과거에 함몰될 우려로 이어질 수 있고, 현재를 자꾸만 부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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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1) 숭례문이 아니라고 말한 당신, 플라톤의 '이데아(Idea)'를 신봉하는 경향이 있군요.

(2) 숭례문이 맞다고 대답한 당신,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Simulation)'을 믿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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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두 개념을 간단히 짚고 넘어갈게.

-이데아(Idea)란, 영원하고 불변하는 사물의 본질적인 원형(原形)이라고 말할 수 있어. 플라톤은 구체적인 현실의 사물은 단지 이데아의 모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 그리고 이데아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어. 예를 들어, '인간'이라는 관념은 이데아야. 반면 A, B, C, D.... 실제 사람들은 '인간'의 속성을 조금씩 나누어 가진 '모사물'에 지나지 않지. 잘 생각해 봐 나는 '인간'이 아니잖아. 검은색 머리칼과 갈색 눈을 지녔고 키는 몇이고 어떤 혈액형이고 좋아하는 게 남들과 다른 A잖아.


-반면 시뮬라시옹(Simulation)이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이를테면, 가상현실 게임이 실제 칼부림으로 이어지는 사건, 관찰예능에서 만난 남녀가 실제로 사귀는 일, 게임처럼 되어버린 현대 전쟁 등 초현실적(Hyper-realism)인 것들을 시뮬라시옹이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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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야기를 시작할게.

오한기의 "햄버거들" 속 인물들은 문학에 대해 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지.

주인공은 문학의 순수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마치 복원된 숭례문은 숭례문이 아니라고 말하는 태도와 가깝다고 볼 수 있어.

반면 친구 한상경은 순수성을 부정하지. 복원된 숭례문이 숭례문이 아닐 건 또 뭐냐는 식으로 말이지. 아래와 같은 문장이 있어.


---< 상황1: 문학에 대한 태도 >---

  그날 밤 나는 그들과 설전을 벌였다. 그들은 문학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거라고 했고, 나는 문학은 분명 의미 있는 거라고 했다. 괜한 반발심이 아니었다. 문학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가치 있다. 이런 식의 사고에 지친 것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가 틀린 거 같았다. 그날의 대화가 문학의 한 종류라면, 확실히 문학은 무의미한 게 맞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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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햄버거들"이라는 제목처럼 시종일관 '햄버거'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져.

앞서 내가 '숭례문은 그 숭례문이 맞을까' 라고 질문을 던진 것처럼, '우리가 먹는 햄버거가 그 햄버거가 맞을까'라는 식의 논리를 통해 '문학'이란 무엇인지 고찰하지.

주인공은 순수성을 중요시 여기지만, 버스에서 한 여인을 만난 이후로 태도의 변화를 보여. 아래 문장 읽어 봐.


---< 상황2 >---

나는 햄버거 이야기를 아무에게나 떠벌리고 다녔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조금 외로웠던 거 같다. 심지어 마산으로 내려가고 있을 때 고속버스 옆자리에 앉은 여자에게도 그랬다. 우리가 어떻게 말을 트게 됐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 내가 그녀에게 지금 우리가 먹는 햄버거는 햄버거가 아니라고 했던 건 또렷이 기억난다. 여자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빠르고 간편하게 위를 채우던 햄버거는 멸종한 지 오래라고, 프랜차이즈화되어 어딜 가든지 같은 맛을 내거나 레스토랑에서 과도하게 고급화되는 등 햄버거는 더 이상 햄버거로만 버틸 수 없다고 그녀를 설득하려 들었다.

  근데 햄버거는 그냥 햄버거잖아요?

  그녀는 이렇게 되묻곤 내가 햄버거에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반박할 말을 떠올리고 있는 사이 그녀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창가에 앉은 그녀 옆으로 달아나는 고속도로가 보였다. 문득 우리가 탄 버스가 고속도로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달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한참 동안 그녀를 따라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고 있었다.

  창밖에서 햄버거라도 찾아요?

  잠시 침묵이 이어진 뒤 그녀가 물었다.

  엉뚱하긴 하지만 소설을 쓰신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당신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사회가 발전하고 생활양식이 바뀌면서 햄버거의 모습도 바뀌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녀가 덧붙였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나와 사고방식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나는 허무해졌고, 우리 사이에는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어색함을 떨치기 위해 그녀에게 마산엔 무슨 일로 가고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마산이 고향이고, 주말에 있을 친구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마산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고향에 가서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 고향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몇 해 전 마산과 창원이 통합한 걸 알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뉴스에서 몇 번 봤다고 했다. 그녀는 통합이 된 뒤 창원시 마산 합포구로 행정구역이 바뀌었고, 그 때문인지 마산이 전혀 다른 도시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니, 순식간에 고향이 사라진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게다가 요새는 다시 마산과 창원을 분리한다는 움직임도 있어 헷갈린다고 했다.

  그럼 다시 고향을 찾는 거네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표정을 찌푸리며 그건 그리 간단한 게 아닌 거 같다고 답했다. 마산이 다시 분리된다 하더라도 왠지 예전의 그 마산이 아니라고 느껴질 거 같다는 얘기였다. 내가 “그럴 수도 있겠군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주억거리자 그녀는 내게 고향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수도권을 떠돌며 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딱히 고향이라 부를 만한 곳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나는 고향은 없지만 당신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고향도 없으면서 이해는 무슨 이해냐고 신경질을 냈다. 화까지 낼 필요는 없지 않냐고 하자 그녀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나는 갑자기 화가 났다. 자신은 이해를 바라면서 정작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그녀의 태도 때문이었던 거 같다.

  당신도 실없는 소리를 한 건 마찬가지야. 마산이 없긴 왜 없어? 그럼 우리가 타고 있는 마산행 버스는 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내가 말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뜨고 나를 노려봤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여 있었다. 나는 마음이 약해져서 미안하다고 했다.

  뭐가 그리 꼬여 있는 거죠?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햄버거, 그깟 불량식품이 뭐가 그리 좋다고.

  마산에 도착할 때까지 화를 삭이려는지 눈을 감고 있던 그녀가 버스에서 내리면서 던진 말이 기억에 남는다.

  마산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넘어서였다. 마산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도시였고, 늦은 신간인데도 꽤 많은 사람과 차가 다니고 있었다. 지방도시의 낭만을 기대했던 나는 약간 실망하고 말았다. 나는 고향이 사라졌다던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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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마산'과 '창원'이 통합되고 분리되는 과정을 통해 고향을 상실한 것 같다고 말하지.

즉 현재 남아 있는 건 헛것, 패러디, 즉 시뮬라크르에 불과하다는 거야.


이제 내 의견을 밝히자면, 나는 이데아를 부정하고 시뮬라크르를 긍정하는 쪽에 속해.

다시 말해 복원된 숭례문도 또 다른 하나의 숭례문이라고 생각해.

근원, 원본, 이데아에 집착할 경우, 나 역시 A라는 인간인데 자꾸만 '나'를 부정하겠지.

주체(Subject)가 되길 포기하고, 자꾸만 '신'을 찾고 '주인'을 섬기고 '구원'을 바라겠지.


개개인이 스스로를 '시뮬라크르' 즉 허상이라는 걸 인정하면 삶의 태도가 변한다고도 믿어 의심치 않아.

더 이상 진짜 '나'를 찾아 헤매지 않고 남들과 다른 '나'를 받아들이게 되겠지.


물론 '숭례문이 그 숭례문이 맞을까'에 대한 답은 없어. 숭례문이 맞다고 해도, 숭례문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어.

삶의 태도는 각기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다만, 내가 어떤 성향을 지닌 사람인지는 고민해보길 바라.


마지막으로, 문학의 순수성을 좇기 보다는 자기만의 문학 세계를 넓혀 나가는, 오한기의 "햄버거들"을 강.력.히. 추천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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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오한기 문학에 입문하고 싶다면 단편집 "의인화"에 수록된 '햄버거들' '새해'부터 읽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