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렇게 쓰면 안되는거 아는데 머리통에서 안나온다 진짜... 앞부분이라도 함 봐줄래





언젠간 개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건조하고 텁텁한 사료를 오독오독 씹어 삼키며 크고 텅빈 검은 동공으로 무언가를 주시하는 삶. 나는 늘 위에서 아래로 듬성 듬성 털이 빈 살갗만 보고있어서 몰랐다. 아래서 위로, 그가 보지 못한 걸 다 보고도 말한마디 못하는 삶이란 대체 무엇일까. 배게 밖으로 빼꼼 나와있는 신경이 검게 모여있는 발톱과 그 옆의 개기름 진 발자국. 그 흔적들. 어디서나 있을것 같았는데 그건 어디에서든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 개는 강 상류에 묻었으니까 지금쯤이면 하류 어딘가 토양의 양분으로 영글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개를 묻어준 당일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하러 다녔다. 열심히는 말고 평소처럼 적당히. 키우던 강아지처럼 사람 눈치 보며 적당히 게으름피우고 넉살을 부렸다. 아버지가 자주하는 말이 있지. 사람은 일을 안하면 죽은거나 마찬가지다. 근데 그런 말을 한 당사자가 과로로 쓰러져 기계에 빨려든 다음 나는 일을 적당히 하기로 했다. 어디만큼? 내가 살아있을 때 만큼만. 나는 서른살 크리스 마스에 죽을것이다. 엄마는 딱 그 나이에 집을 나갔다.

개의 종류는 푸들. 하얀색이었다. 털 뭉치 같아서 안으면 손가락이 털에 폭 박혔고 털을 빼면 앙상한 골자가 드러났다. 이름은 발발이. 잘 발발 거리게 돌아다닌다 해서 발발이다. 발발이는 세살이 되자 주둥이가 길어지고 잔짖음이 줄어들었다. 딱 인간 나이로 삼십이 되는 거야. 아빠는 강아지가 다가오면 발로 툭툭 차서 밀어내며 말했다. 나름 점잔을 빼는 게야. 발발이는 푸들이라서 똑똑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은 냄새로 알정도였다. 그러면서도 아무 사람이나 다 따라가서 병신같이 꼬리치고 다녔다. 아빠는 아무 사람이나 따라가서 안겨있는 푸들을 보면 갖다 버리고 싶다고 했다.

아빠는 물론 나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우리 엄마가 딴 남자랑 바람 났다는 걸 알았다. 엄마가 집을 나가기 전에도 아빠에게 비밀이다, 라는 말을 배고프니? 라는 말보다 더 많이했으니까.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화장을 마치고 향수를 뿌리셨다. 그리고 나가서 오래토록 연락이 없었다. 나는 그 차가운 식탁에 남은 배달 음식을 돌려먹고 치우지 않은채 멀뚱이 세시간이고 네시간이고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는 아빠의 퇴근 시간 삼십분 전에 돌아와 나를 본채도 하지않고 상을 치웠다. 나는 눈알이 뽑히도록 엄마를 노려보고있었다.


원래는 푸들이 흰색이 아니래
그러면
얘 조상 중 잡종이 있었던거지. 말티즈가 섞인거야.

한참 개의 혈통이라는게 유행하고 있을 때 데려왔다. 우린 순수 혈통이라는게 얼마나 끔직한 유전병을 가져오는지 모르고 발발이가 순수한 푸들이라는 것이 뿌듯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발발이가 이른바 푸들이 아닌 말티푸 일수도 있다는 가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약 서른살이 된 중년의 발발이는 오래토록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았다. 밤이면 새된소리로 낑낑거리다가 꼬꾸라지는 소리가 들리면 밤새 선잠을 자고 발발이를 끌어안고 자기도 했다. 그릉그릉하며 몸 전체의 진동이 오면 나는 반사적으로 잠에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몸에 열기나 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면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한다. 딱 서른을 넘긴 지점에 발발이는 어릴때부터 다니던 동물병원에서 수술받다 결국 죽었다. 나는 그때 밀려드는 짐을 차곡차곡 내려 쌓고 있었다. 밥먹을 때가 되서야 뒤늦게 아빠에게서 유전병이라 어쩔 수 없대, 라는 문자를 받았다. 나는 그제서야 처음 부터 품고 있었던, 발발이에 대한 묘한 기분의 정체를 깨닳을 수 있었다.

결국 우리탓인가?

아빠는 딱 열한시에 퇴근해서 삼십분 뒤에나 집에 왔다. 나는 거실에 발발이를 냅두고 방에 들어가 자는데, 발톱이 다닥다닥 긇히는 소리가 들리면 아빠가 퇴근했다는 걸 알았다. 그 좁은 집구석에 반겨줄 사람이 발발이 밖에 없다고 말하던 아빠가 제일 발발이에 대한 죽음에 담담했다. 그리곤 일밖에 없다는 말을 하셨다. 십년동안 죽어라 일하고 그렇게 또 십년을 일하시다 결국 사고로 돌아가셨다. 딱 발발이 죽은지 십년째 기일이 되던 날이었다. 어쩌다 그렇게 죽었냐고 목격자에게 경위를 듣게 되었다. 아빠는 작업장 들어 올때부터 술에 절어있었다고 했다. 일차적으로 손질을 마친 무와 함께 섞여들어 커팅기에 손이 말려들고, 스위치를 껐지만 소용이 없었다. 버저에 붉은 빛이 들어오고 잠시간 사람들은 어수선했지만, 그가 실려나가고 그 라인만 기계가 멈춘채 다시 공장이 가동됐다. 그는 그 날의 기억을 나에게 털어내고 버리고 싶다는 듯 말하곤 서둘러 도망가 버렸다. 나는 그의 뒷모습에서 서른살에 날 버리고 떠났던 엄마 생각이 불현듯 났다.

엄마는 엄마라는 기능으로서 엄마도, 엄마의 감상으로서의 애틋함도 주지못했다. 뭐랄까. 남 같았다. 내가 아닌 타인. 딱 가족 같은 사람. 다시말해 가족은 아닌 사람. 늘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자라고 커갈때도 나는 그녀가 조심스럽고, 방을 가진 다음 부턴 아침에 나와 밥을 먹는게 새삼스러웠다. 엄마는 늘 자신의 삶을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나는 스물 여섯까지, 약 육년동안 다녔던 공장을 관두고 상하차를 다니기 시작했다. 아웃 소싱 업체에서 날일을 다니다가 일주일 넘게 도망가지 않는 모습을 보고 소장의 눈에 들어 정규로 채용되었다. 공장과 달리 상하차는 출근 만큼은 자유로워 좋았다. 공장처럼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아무일 없다는 듯 무를 썰거나 벗겨내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일은 꽤나 능숙한 편에 속했다. 두툼한 무를 하루종일 옮겨서 기본 근력은 특출나게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