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을 비워봅니다. 창밖에 은은한 가로등은 내리는 눈을 비추어 더 밝게 보이게 합니다.
나는 누굴 비추는가, 혹은 누가 나를 빛나게끔 할까하는 의문점에 오늘도 소주잔을 비워봅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몸이 오들오들 떨리더라도 나는 참습니다.
이 추위를 견뎌내야 어른이 된다고 누군가 그랬기에,
안주 하나 없이 먹는 이 소주에 누군가 배고픔을 이겨야 어른이 된다 했기에,
오늘도 참고 눈가를 찌푸립니다.
겨울 밤바람은 너무나 차네요.
담배 한 개비 피워볼까 간만에 대문을 열고 나온 나에게
너무도 따가운 밤바람이여, 오늘은 나에게 해답을 주시진 않으신가요.
추위에 온몸을 떨며 희미한 라이터 그 불빛에 온몸을 맡겨봅니다. 생각보다 따뜻한 연기에 내 온몸이 타들어 가네요.
바람은 내 귓가를 타고와 체온을 더 낮춥니다. 바람이여! 나를 아프게 하지 마세요.
불과 몇 달 전 바람은 내 콧등을 간지럽히며 나에게 기분 좋은 웃음을 짓게 하였으면서,
유독 오늘의 바람은 나의 미간에 있는 주름을 더 깊게 새겨 줍니다.
언제나 따뜻했던 태양은 오늘은 더 이상 살아있지 않네요.
아픈 과거쯤이야 모두들 잊는다 하였는데, 더 이상 미래쯤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현실에 와 닿은 나는 담배의 마지막 한입을 태웁니다.
나만 아픈 걸 까요.
혹시 이 겨울 눈 쌓인 바닥에 누워 바닥의 냉기와 지난 계절의 유물과 섞여 발버둥을 치고 있진 않을까요. 내 팔 다리의 손짓이 만든 모습이 나에게 혹은 다른 이들에게도 천사의 실루엣으로 다가올까 더욱 두려워 지는 하루입니다.
그들은 천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깨달아 버렸습니다. 아마 너무도 빨리..
그들은 누군가에겐 이번 계절에 대한 생존걱정을 하게 하는 것이며, 또 다른 이에겐 이미 죽음을 선사하였으며, 나에겐 손익계산을 하게끔 하는 온 몸을 떨게 하는 천사가 아닌 어쩌면 악마에 가까운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내가 어릴 적 어른들은 이 눈사람에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는데,
아마 스물 몇 년째 나이를 더 먹은 나에겐 그 이야기들은 그저 어렸던 나의 울음을 막아주었던 방파제에 지나지 않다고 일러주네요.
어릴 적 보았던 눈사람의 모습에는 떨어져버린 단추의 모습과 누군가 메다 버린 목도리, 어떤 이가 쓰다버린 털 달린 모자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기쁨은 그저 오늘 하루의 의미이지만, 몇 년 전 혹은 몇 십 년 전의 아픔은 아직까지 나의 머릿속 깊이 남아 나의 생각, 기억 한 구석구석마다 남아 나를 간지럽히거나 혹은 꼬집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아픔은 남지 말아주세요 라고 하기엔 나의 삶은 너무도 짧았지만, 항상 기뻐해주세요 라기엔 나는 이미 주름이 가득 찬 늙은이 이군요.
항상 사랑하세요 라기엔 너무 늙어버린 하루입니다.
사랑했습니다 나의 지난 날들이여.
고맙습니다ㅠㅠㅠ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의 시어들도 있지만 그건 그것대로 좋았습니다. 저도 몇 십 년이라는 말을 글에 적을 때쯤 된다면 그 시어들이 과하다고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