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나는 개인적으로 등단제도를 별로 안 좋아함.


그런데 그 이유가 등단제 자체가 아니라 1명만 뽑는 등단제를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우리나라에 중소규모거나 이름 없는 곳까지 치면 100 여곳 이상일 테지만, 그런 곳들을 제외하면 유명 신문 8곳, 유명 문예지 5~6곳 정도가 있어.


그럼 제대로 대우받는 문인이 각 부문 별로 한 해에 끽해야 15명 정도 뽑힌다는 얘기지. 난 이건 너무 적다고 생각해. 그렇다고 무작정 더 뽑아야 된다는 건 아니야.


다만 1명만 뽑아야 한다는 규정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해. 이 작품을 쓴 사람은 충분히 등단의 자격이 된다, 생각되면 복수로 등단작을 뽑을 수 있다고 봐. 반대로 자격 있는 작품이 하나도 없다 싶으면 당연히 안 뽑으면 되는 거고.


그렇게 하면 충분히 실력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떨어져서 시간 낭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폭 줄일 수 있고, 문단 전체로 봤을 때도 더 풍성한 작품들이 나올 수 있다고 봄. 게다가 여러 사람 뽑히는 데도 내가 계속 안 된다 싶으면 핑계를 댈 거리도 줄어들고, 그네들이 빨리 다른 길 찾아가서 인생낭비도 줄일 수 있을 거야.


여기까지가 현 등단제도에 대한 불만이자 개선했으면 좋겠는 점이고,



이제부터 말하려고 하는 건 등단제도 탓하면서 불평하는 얘들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쓰는 거.


1. "지들이 뭔데 라이센스를 발급해? 다 밥그릇 싸움이다."

--> 누구도 라이센스를 발급한 적 없어. 너가 글써서 어디든 작품 보낼 수 있다는 것만 봐도 그런 게 없다는 뜻이야. 지금도 작품만 잘 써서 보내면 읽고 검토해서 괜찮다 싶으면 실어주는 출판사 많아. 그런데 이렇게 해서 실제로 작품이 실리는 경우가 별로 없어. 왜 그럴까? 밥그릇 싸움이어서 등단 안 한 애들은 안 실어주는 걸까? 전혀. 출판사는 밥그릇 싸움 같은 거 관심도 없어. 좋은 작품 나오면 그 작품이 더 읽히고 많이 팔리는데 무슨 밥그릇 싸움 때문에 좋은 작품을 안 실어주겠어.


논리적으로도, 밥그릇 싸움이라면 이미 밥그릇을 거머쥔 자가 더 이상 후발주자를 안 들어오게끔 하는 게 밥그릇 싸움이야. 등단제도는 매해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게끔 하는 제도인데 뭔 밥그릇 싸움이야. 문단이든 출판사든 밥그릇 싸움 같은 거는 관심도 없어. (대체 뭘 위한, 누구를 위한 밥그릇 싸움인데?? 도무지 이해가 안 감;;) 오히려 새로운 좋은 작품, 새로운 좋은 작가 나오면 신나고 그 사람꺼는 다 돈주고 사서 읽지. 작가들이, 문단이, 새로운 작품 보면서 얘는 어디 출신인지, 어느 대학 나왔는지, 이런 거 보는 줄 알아? 진짜 관심 1도 없어. 그리고 더욱 관심없는 게 하나 있는데 뭔지 알아? 바로 너희들이야. 너희들 같은 문예 지망생들에게 관심이 아예 없어. 그래서 얘네들로부터 밥그릇을 지켜야 한다는 관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2. "차별없이 단편을 실어달라", "미국처럼 하자"

-->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야? 문예지 한 권 나오면 거기 들어가는 작품들이 부문당 끽해야 3~4편이야. 신춘문예 때만 해도, 소설의 경우 한 신문사마다 1천편 가까이 돼. 메이저 신문사 8곳과 각종 지방 신문사 다 합치면 한 해에만 1만 작품이 넘을 거야. 근데 그걸 써주기만 하면 다 실어달라고? 미쳤어? 등단제가 됐든 그냥 일반투고가 됐든 결국 심사는 불가피한 거야. 사실 등단제로 좋은 작품 뽑는 거나, 일반 투고로 좋은 작품 뽑는 거나, 이름만 다르지 본질적으로 뭐가 달라? 뭐가 어찌되어도 안 좋은 작품을 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야. 등단투고 했더니 안 뽑혀서 화가 나? 그럼 일반 투고를 해봐. 근데 그것도 안 뽑혀서 더 화가 나? 그래서 그냥 등단제 다 없애고 차별없이 단편을 실어줘? 어쩌라고, 그건 그냥 니가 못 쓰는 거야.


미국처럼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애들은...아마 미국 문단 풍토를 전혀 몰라서 그러는 거겠지. 미국도 등단이라는 이름이 없을 뿐 한국이랑 똑같아. 미국 유명 잡지에 자기 작품 실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면, 그 유명한 레이먼드 카버나 앤드루 포터도 자기 작품 잡지에 올리는 데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렸고 도중에 포기하고 다른 일 해야겠다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어. 미국은 자유롭게 누구나 투고할 수 있으니까 뚝하고 작품 써서 뚝하고 올라간 게 아니라고. 이게 웬 망상이야. 그리고 지금도 99%의 미국의 문예 지망생들은 몇년씩 해보다가 결국 안 되서 포기해. 한국이랑 똑같아. 미국도 문창과가 있어. 그중에 99%는 자기 글 잡지에 한 번도 못 실어보고 다른 일 찾아가. 아니 대체 어떤 나라가 누구나 글 쓰기만 하면 다 실어줘? 잡지가 무슨 자아실현 봉사단체야?


등단제가 있든 없든 간에,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많은 문예지망생들을 다 뽑아줄 수는 없어. 심사는 불가피한 거야. 그런데 너가 자꾸 심사에서 떨어진다고 해서 등단제도가 잘못됐다고, 차별없이 작품 실어줘야 된다고 주장하면, 잡지사가 그 말을 왜 들어줘야 된다고 생각해? 그럴거면 그냥 아무 블로그에나 가서 대충 소설 비스무리하다 싶으면 복붙해서 잡지 내면 되지. 그게 진짜 차별없는 거지.


3. 이게 다 등단제 때문이라고...?

자기 작품 안 알아주는 건 등단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애들은, 냉정하게 말하면 작품이 안 좋은 이유가 99.9999%야. 그만한 실력이 안 된다고. 등단을 너무 우습게 알아. 실제 등단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쓰고, 공부해서 된 건지, 몇 년이나 여기에 집중하고 몰두해서 된 건지 생각도 해본 적 없겠지. 책 읽는 거 좋아하고 글 잘 쓴다고 칭찬 좀 받아봤다고 되는 일이 아니야. 작품 몇 번 써봤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고. 문학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다 소싯적에 책 좀 읽어봤고, 글쓰는 재능있다고 칭찬받아본 애들이야. 너 같은 애들이 트럭으로 수십 대는 된다고. 다 책 좀 읽어본 애들이고 나도 글 좀 쓴다고 자뻑에 빠져 있는 애들이란 말이야. 그런 사람들 수천 명 중에서 한 두명이 뽑히는 건데 너가 쉽게 뽑힐 거라고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이지. 작품 하나 쓰면 내가 이번에 되겠다는 생각을 막 하게 되잖아. 작품이 되게 괜찮아 보이잖아. 이걸 안 뽑을 수가 없겠구나 싶잖아. 심사위원들이 내 작품 얘기 엄청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마구마구 들잖아. 근데 그런 생각을 너도 하고, 남도 하고, 투고한 애들은 다 해. 전국에 수천 명이 신춘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고. 신춘 때만 되면 내가 뽑히겠구나 김칫국 마시는 수천 명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거야.


화가 나는 건 이해해. 계속 안 되다 보니 너무 화가 나고, 판단력도 흐려져서 모든 생각이 다 자기 위주로, 유아적으로 변하지. 이게 다 누구누구 때문이고, 나를, 우리를 못 들어오게 하려는 수작을 펼치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고... 지극히 자연스러워. 분노가 비논리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말하자면, 그들은 너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아. 아예 너란 존재가 머릿속에 없어. 그래서 차별을 할래야 할 수도 없어. 뭐라도 있어야 그런 생각을 하지. 이게 다 밥그릇 싸움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래서 안타까워. 너가 밥그릇을 차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위협을 느끼기도 전에, 아예 너 자체가 없어.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할 수조차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