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 같은 이별이었음
 
- 박상순
 
 
 
잃었음. 새 구두를 잃었음. 서늘한 바닥에서 꽃봄이 돋아날 때, 꼭 한번 신어보고 바닥에 내려놓은 새 구두였음. 그런데 사라졌음. 훔쳐 갔음. 도둑맞았음. 초저녁이었음. 새 소리를 들었음.
 
새벽 세 시에 집을 나왔음. 헌 구두를 신었음. 바람이 흘리고 간 밤바람 스타일의 헌 구두였음. 새벽의 꽃봄은 싸늘하고 어두웠음. 떨기나무 덤불숲도 어두웠음. 은빛 점들이 박힌 새 시계도 사라졌음, 도둑맞았음.
 
새벽 세 시 반에 도둑들은 떨기나무 덤불에서 새가 되었음. 날개에 붙은 어둠을 털고 나무 위로 몰려갔음. 정오가 되면 나무에서 내려왔음. 새 구두 신고, 새 시계 차고 식당에 갔음.
 
돈까스 처먹었음, 별 모양의 파스타 긁어 먹었음. 줄줄이 맹탕 커피 사 마셨음. 난 새벽 세 시부터 계속 걷기만 했음. 바닥에 내려놓은, 반짝이는, 은빛 점들이 박힌……
 
종로에서도 잃었음, 통 속에 넣어도 사라졌음, 거미 다리에서도 도둑맞았음. 덤불숲과 나무 위의 도둑들이 날렵하게 기어들었음. 빼내 갔음. 사라졌음. 꽃봄은 바닥에서 쑥쑥 솟았음.
 
패랭이꽃도 시금치도 새 구두를 잃었음, 새 시계도 잃었음. 그렇다고 말했음. 사실은 아님. 패랭이꽃도 시금치도 나 몰래 돈까스 처먹었음. 맹탕 커피 사 마셨음. 별 모양의 정오를 긁어 먹었음.
 
새벽 세 시에 집을 나왔음. 떠났음. 버렸음. 떨기나무 덤불숲은 어두웠음. 발가락이 아팠음. 부딪혔음. 컴컴한 바닥에서 주인 잃은 망치 하나 주워 들었음. 주웠다가 버렸음.
 
새벽 세 시 반에 도둑들은, 꽃봄은 또 새가 되었음. 나무에 올랐음. 내려왔음. 돈까스, 거미 다리, 축축한 별 모양, 망치. 그런 새벽이었음. 그래도 꽃 본 듯, 한참을 더 살아야 할 망치 같은 이별이었음.
 
 
계간 문학과사회 2018년 가을호



* * *


다들 좋은 하루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