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노란 달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요


어떤 손님이 오면 종종 하는 말 이였습니다. 아마도 제겐 어울리지 않는 말이겠죠. 하지만 그 손님 앞에선 어떤 너스레를 떨어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 남자는 맘 속에 인정, 따뜻함, 순정, 아니, 어떠한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이를테면 예수의 사랑이라고 밖엔 설명 하지 못하는, 그런 성스런 모성애 같은 것을 지녔습니다. 남자에게 모성애를 느끼다니 웃기는 일이지요. 애인으로서 삼고 싶은 그런 느낌 보다는, 태초부터 결핍됐던 무언가를 그에게서 잠시나마 느끼곤 그 숨결을 품고 며칠을 따뜻하게 사는 것 이였습니다. 그래도 못하는 말도 많았습니다. 저는 남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악취를 풍기는 몸뚱아리를 가졌으니까요. 독실한 크리스천들이 죽어 예수 앞에 무릎 꿇는다면, 아무리 지켜 보셨다지만, 못 봤을 수도 있는, 그런 더럽고 추악한 자신을 모조리 고할 수 있을까요. 저는 십자가를 어루만지며 기도할 수도 없는, 불결한 체취가 육신에 배어 살갗을 벗겨내도 씻기지 않는 창부입니다.

 

가끔 작은 오피스텔에서 시간이 비면 커튼을 치고 테이블에 앉아 제 처지를 비관하곤 했습니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달빛이 어둑어둑한 실내를 비추면 더더욱 자기연민에 빠져 기분 좋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금은 그 때의 눈물을 상상하는 것 조차도 부끄럽고,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경망스러운 눈물이 있다면 아마 그것이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방에 앉아 비추는 달빛을 바라보자면, 왜 이렇게 나를 돋보이게 하는지, 비련의 여주인공이 아닌 셰익스피어 희곡에서의 악당이 주인공의 단죄를 받고 비참하게 죽을 때의 스포트라이트, 이 음침한 방에서의 나를 더 사람들 눈에 띄게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창녀, 창부, 매춘부, 걸레, 몸 파는 년, 달빛 속에서 저는 관객들의 돌을 무방비로 맞는 기분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