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손은 유별나게 투박하고 힘이 셌다. 맨손으로 과일 나무를 전지(剪枝)하고, 아무리 고집센 당나귀도 아버지 손에 잡히면 안장을 써야만 했다. 자[尺]도 없이 판자 위에 정확한 사각형을 그렸다든지, 맨손으로 문에서 쇠 돌쩌귀를 뜯어 냈다는 등 아버지의 손에 얽힌 얘기가 많았다. < 중 략 >

아버지는 글을 몰랐다. 문맹자가 거의 없는 오늘날 아버지가 겪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중 략 >

아버지의 건강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심장병 때문에 여러 차례 입원도 했다. 늙은 의사 그린 씨가 매주 진찰을 하고 약을 주었다. 그 가운데는 심장 마비가 올 것 같은 예감이 들면 얼른 삼키라는 니트로글리셀린 알약도 있었다. < 중 략 >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았다. 예의 그 심장마비 때문이라고 했다.

장례식엔 나 혼자 돌아와 참석했다. 의사 그린 씨가 유감을 표했다. 그는 좀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날도 그가 처방을 써 줘서 아버지가 약국에 가 약을 지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지껏 그 약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그 니트로글리셀린 약만 있었다면 아버지는 도움을 청할 때까지 버틸 수 있어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장례식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 나는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마당가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슬픔이 북받쳐올라 나는 아버지가 숨을 거두신 그 땅을 손바닥으로 훑어 보았다. 내 손가락에 딱딱한 게 닿았다. 반쯤 묻힌 벽돌이었다. 나는 무심코 그 벽돌을 들어 팽개쳤다. 그랬더니 그 아래 부드러운 땅 속에 콱 박혀 있는 약병이 보였다. 뚜껑이 꼭 잠긴 채 알약이 가득 들어 있는 플라스틱 병이었다. 약병을 집어드는 내 눈엔 아버지가 뚜껑을 열려고 애를 쓰다 못해 필사적으로 벽돌로 약병을 깨려고 했을 장면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크고 따뜻한 손이 죽음과의 싸움에선 그토록 맥없이 패배한 까닭을 알고 나니 분통이 터져 미칠 지경이었다. 약병 뚜껑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던 것이다.

― 어린이 손이 닿지 않게 되어 있는 안전 뚜껑.
눌러서 돌리셔야 열립니다.

나중에 듣고 보니, 약사는 바로 그 날부터 새로운 안전병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리석은 짓인 줄 알면서도 시내로 나가 제일 좋은, 가죽 표지의 사전과 순금 펜 세트를 샀다. 그리고 아버지의 명복을 빌면서, 따뜻하고 충실했던 손, 그러나 글자를 못 썼던 그 손에 그것을 쥐어 드렸다.



사랑은 아름다워라, 오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