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하나 끈덕지게 잡고 늘어지는 법이 없었다. 옛날 프랑스 영화를 본 날이면 근본 없는 이상주의자가 되었다가, 며칠 뒤에는 학과 취업률을 살피고는 했다. 목숨을 바친 다짐이 습관이 되었다. 캐릭터를 자주 바꾸는 배우 같다.

일기예보를 보고 우산을 챙기는 녀석들은 속물이라 생각한다. 어느 때고 우산을 챙기는 부류는 비겁한 녀석들이고. 그렇다고 내가 비 맞는 것을 덕목으로 여기는 마초라는 건 아니다. 비를 맞으면 초라해 보일까봐 걱정은 된다.

거리에는 자그마한 폭죽들이 하나 둘 터진다. 천천히 걷는 쪽이 더 불쌍해 보일 듯해서 적당히 빨리 걷는다. 빗방울이 안경에 닿으면 즉시 닦아내는 편이다. 앞을 똑바로 보기 위함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