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머문자리에 붉은 점이 남았다.
시작이였다.

택시는 오늘도 나를 외면하고,버스는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손을 뻗는 일도 한두번이지 이제는 거동마저 부끄럽게 느껴지는 자신의 초라함에 문득 눈을 감았다.
집은 그다지 먼곳에 위치해 있진 않았다.
드문드문 걷다보면 이미 집은 눈앞에 있었기에 그다지 멀다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답답한 하루에 담배라도 한까치라는 담배의 아이캐치를 기억했다.
바코드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2000원입니다
바코드의 음성에 사랑이 담긴 것은 아닌가 기대했지만
입사이로 흘러내린 걸쭉한 백탁을 짐짓 손으로 닦아내는 그년의 아름다움에 그저
라이터도 주세요라 말할 뿐이였다.
집에는 거울이 없다.
27살 단명한 그의 모습이 비치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나는 그다지 능력도,사랑도,심지어는 돈도없는 이 시대의 많고 많은 금붕어일 뿐인데하고 이미 닳아버린 지느러미를 흔들어 보았다.
닭장에 갇혀서 꽥꽥거리며 머리를 흔들어대는 모습이 어릴적엔 무심코 처량하다“,”불쌍하다말하곤 했지만 지금당장 나에게 필요한건 멍청하게 같이 머리를 흔들 친구와,나를 우리안에 가두어 놓곤 모이를 뿌려주며 나를 피말려 죽일 주인이란 작자였다.

매년실패하는 금연계획은 꽤나 다양한 바리에이션으로 나를 설득시켰는데.
아마 이번년도는 이거인 것 같았다.
닭만도 못한 인생인데 뭐 별일 있겠냐.“
시간은 빠르게만 간다.
누워서 담배 몇까치 피워내다 보면 이미 창밖은 불바다다. 담배연기는 무거운 듯 하다.내 주위에 아우라같은 연기가 자욱히 날 보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퍽 담담하고 꽤나 포근해서 어머니의 품을 기억하게 한다.
몇 개피씩 펴대는 나의 나쁜 습관은 어찌보면 내가 가진 습관 중엔 제일 쓸모있는 듯 했다.
한갑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 질때쯤 겉옷을 입고 밖에 나갈 채비를 했다.
세상은 누군가가 무책임하게 부어놓은 오렌지주스 따위에 가라앉은 듯 보였다.

우리집은 7층에 있고 아파트는 15층 높이이다.
아이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끄럽게 동네를 울렸지만 지금에 와서는 조용한 것이 마치 동네에는 나와 말라비틀어져 푸석푸석해져버린 노인네들 따위만이 남아 세상을 좀먹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엘리베이터는 거침없었다.
1층부터 7층까지 몇초나 걸렸을려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감사한 ”7층입니다라는 여자의 음성은 여전히 조금 울렁거리는 것이 정겨웠다.

1층과 15층의 버튼 사이에서 한참 망설이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기필코 계단을 통하겠다며 스스로에게 핀잔을 주었다.
여자는 ”15이라며 물음표를 던졌다.
엘리베이터의 문은 서서히 닫히고 15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부유감 속에 무심코 왼쪽 주머니에 넣었던 담배갑을 오른손으로 더듬기 시작했다.
15층의 바람은 꽤나 매서웠다.
반쯤 열려있는 창문틈으론 바람이 계속해서 들이닥쳤다.

옥상으로 향하는 문에 부착된 도어락을 보고는 안도와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아마 부질없는 안도와 내가 갈 곳 마저 얼굴모르는 인간에게 거부받는것에 대한 분노가 터져나온 것이리라.
조용히 떨리는 손으로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찍어넣어보았다.

---
삐비비비빅
---
삐비비비빅
---
삐비비비빅

세 번째 비밀번호를 칠때쯤 되자 두려움은 즐거움으로 바뀌여 있었다.
인생은 멀리서보면 희극 가까이서보면 비극이라 했던가하며
누군가의 말을 되내이며 내 인생에서 멀찍이 떨어져있는 지금의 나의 모습에 한심함과 자괴감을 동시에 느꼈다.

문득 해서는 안되는 짓을 해버리곤 말았다.

---
삐리릭

하며 잠금은 해제되었다.
순식간에 나의 위치는 이곳 누구보다 가깝게 이곳 건물의 옥상으로 향하는 문 앞으로 옮겨졌다.

웃기는 장난 이였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실때도 몇퍼센트의 확률의 기회도 주지않았던 하늘위 왕자에서 굽어살피신다는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웬일로 큰 은혜를 베푸신 듯 했다.

건물 관리인이 나랑 생일이 똑같나?’
아냐...그냥 운일지도 몰라...’
기회인걸까?’
도어락의 틈새에서 12월의 차가운 바람이 새어들어왔다.

엘리베이터는 아직 15층에 위치해 있었다.
도어락은 시간이 지나서 그런것인지 기계음을 내며 잠기기 시작했다.
뒷걸음 치기 시작하다 1501호 할머니의 유모차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도망쳤다 다시
맞다 비겁하다.
나같은 놈들은 짓눌려 사는 것에 익숙하고 오히려 즐거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오히려 밟히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완전하게 피해자일 수 있으니까.
오히려 이용당하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완전하게 호구일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오히려 억눌려있는 공간에서 가장 큰 안정을 느낀다.
엘리베이터의 누군가의 목소리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일 층이라며 말할 뿐이였다.
밖으로 나와서는 몇분 지나지 않아서 양말을 신는 것을 잊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엘리베이터를 지나야 한다는 생각에 그저 조금 추울 뿐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밤거리는 시끄러웠다 어찌됬든 누군가의 딸일 저 창녀들도
어찌됬는 누군가의 아들들일 저 병신같은 좆대가리들도
터벅터벅 걷고있는 내 앞을 막아선 누군가는 나에게
기운이 좋아보이시네요...혹시 도를 아시나요?“라며 말을 걸어오는 것이였다.
조상한테 몇 백 가져다 꼴아박으면 세상이 안정에 가득차고 세상의 전쟁이 없어지고 가족간의 관계가 좋아지고 취업이 잘되고...

그딴 놈의 도는 몰라요라며
이제 갓 20을 넘긴듯한 아직은 진한 화장이 서툴러보이는 여자를 밀쳐내며 말했다.

그녀는 따라오지 않았다.

역시 12시를 넘긴 시점에 이르러서는 발의 감각이 사라진 듯 했다.
돌아가는 길도 꽤나 버겁게 느껴진 지금에 와서는 근처 모텔에서 잠을 자는 것이 몇배는 나을 성 싶어 프로방스라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방 하나 주세요 라는 말이 무섭게 지갑을 찾기 시작했지만 지갑은 애석하게도 집의 책상위에 다소곳이 올려져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지금 난 돈이 없다는 것이였다.

프로방스의 늙은 여주인은 티비를 보다 나를 힐끗 쳐다보며
”3만원
이라 말하는 것 이였다.

얼어붙은 입으로 간신히 내뱉은 탈출구는
화장실이 어딥니까?“였지만
여주인의 노련한
화장실은 방 들어가면 있어,3만원이라는 말에
됐습니다라며 도망쳐나왔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도시는 활기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배터리가 50%정도 남은 핸드폰은 12시 반이라며 떡하니 나의 처량함을 보여주었다.

집으론 가기 싫다니...무슨 사춘기 중학생도 아니고...“
스스로의 멍청함에 다시한번 실소가 새어나왔지만 결국 최선책은 집근처 미술관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였다.

‘24시간의 예술이라는 표어의 전시관에서 언 몸을 녹이기로 한 것이었던 것 이였다.
자연스럽게 예술관에 들어가자 따뜻한 온풍기의 바람과 아직까지도 그림을 감상하는 몇 명인가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미술관에 배치된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았다.
...
몇분이나 지났을까.
적어도 30%으로 줄어든 핸드폰과 화난 듯 바라보는 입옆의 점이있는 젊은 도슨트는 나에게 지금이 7시라는 것을 말해줬다.
도슨트는 말했다
여기서 주무신거에요?“
화난 듯 했다.
아니 여기서 주무신거냐고요
추궁을 시작한 그녀의 눈빛은 꽤나 즐거워 하는 듯 했다.
나는
그럼요
그럼 여기서 뭘 했을라고요?“
라며 뻔뻔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당당한 내 태도에 감명이라도 받은 듯
아니...무슨..“이라며 말을 더듬다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웃겨요?“
거지를 보고 웃으시다니 조금 이상한 사상을 가지고 있으신 것 같네요라며 그녀의 화를 돋우는 것이였다.
그녀는 아랑곳 하지않고 계속 웃기만 하였다.
일어난지 얼마 되지않은듯하여 얼굴에는 화장기가 없었고 목소리는 조금 갈라져 있었다.
그녀는 반문했다.
그래도 여기가 거지따위를 위해서 지어진 곳은 아닌 것 같은데요?“
나는 기다렸단 듯이

그럼 누구를 위해서 미술관이 24시간이나 열린다는 말인가요?“
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번엔 꽤나 확신에 차서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열려있는거죠라고 말하는 것이였다.
나는 꽤나 순수한 의문을 가지고
나도 예술은 사랑하는데 왜 나를 내쫓으려 하는겁니까?“라고 질문했다.
그녀는
그정도 교양을 가지신 분처럼 보이시지는 않던데?“
라며 나를 놀리는 것이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어떻게는 반론할 말을 찾으려다.
이내
양말살 돈도 없을 만큼 미쳐있는데,왜 그건 모르시려나?“
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였다.
순간 둘다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녀와 달리 나는 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