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별로 기대 안하고 있어서

예심 기사가 언제 올라올까 하면서 지난 예심 본심 심사평 기사 보고 있는데


예심 기사에서 언급되면 주로 그와 반대되거나 언급된 소재나 주제에서 벗어난

작품이 당선작으로 정해지는 중앙신인문학상과 다르게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은 예심평에서 이미 힌트를 주고 있는 거 같아


2018 2019 둘다 읽어봤는데



일단 2018 경향신문 신춘문예 예심 심사평


시 응모작 중에는 사물 하나에 집중하면서 내면과 자기 공간을 이야기하는 시편들이 많았다. 신용목 시인은 “관계의 기원을 추궁하고, 관계의 문제에 집중하는 시편이 많았다”면서 “관계에서 시작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통이나 어려움, 난관, 비극을 세련된 방식으로 환기했다”고 말했다.


2018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 박정은 / 크레바스에서



왁자지껄함이 사라졌다 아이는 다 컸고 태어나는 아이도 없다 어느 크레바스에 빠졌길래 이다지도 조용한 것일까 제 몸을 깎아 우는 빙하 탓에 크레바스는 더욱 깊어진다 햇빛은 얇게 저며져 얼음 안에 갇혀 있다 햇빛은 수인(囚人)처럼 두 손으로 얼음벽을 친다 내 작은 방 위로 녹은 빙하물이 쏟아진다

꽁꽁 언 두 개의 대륙 사이를 건너다 미끄러졌다 실패한 탐험가가 얼어붙어 있는 곳 침묵은 소리를 급속 냉동시키면서 낙하한다 어디에서도 침묵의 얼룩을 찾을 수 없는 실종상태가 지속된다 음소거를 하고 남극 다큐멘터리를 볼 때처럼, 내레이션이 없어서 자유롭게 떨어질 수 있었다 추락 자체가 일종의 해석, 자신에게 들려주는 해설이었으므로

크레바스에 떨어지지 않은 나의 그림자가 위에서 내려다본다 구멍 속으로 콸콸 쏟아지는 녹슨 피리소리를 들려준다 새파랗게 질린 채 둥둥 떠다니는 빙하조각을 집어먹었다 그 안에 든 햇빛을 먹으며 고독도 요기가 된다는 사실을 배운다 얼음 속에 갇힌 소리를 깨부수기 위해 실패한 탐험가처럼 생환일지를 쓰기로 한다 햇빛에 발이 시렵다


정확히 들어맞음 크레바스라는 소재 하나 안에서 집중하면서 자기 내면 이야기 하는 시임






201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예심 심사평

짓눌린 아픔, 일상적 비의를 그린 시

일상 속 미시적 순간 짚은 ‘시’

과장된 수식·멋부림 대신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 담아




이게 일단 요약본인데


과장된 수식이나 시적인 멋부림 대신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보였다. 김 시인은 “시는 아름다운 것이라는 굴레로부터 많이 벗어난 것 같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인정받으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느낌이 들었다”며 “ ‘이건 어때’라는 자신감도 묘하게 보였다. 활발하게 행보를 하진 않지만 완전히 지는 자세는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평했다.


2019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 성다영 / 너무 작은 숫자


도로에 커다란 돌 하나가 있다 이 풍경은 낯설다 도로에 돌무더기가 있다 이 풍경은 이해된다

그린벨트로 묶인 산속을 걷는다

끝으로 도달하며 계속해서 갈라지는 나뭇가지

모든 것에는 규칙이 있다 예외가 있다면 더 많은 표본이 필요할 뿐이다 그렇게 말하고 공학자가 계산기를 두드린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렇기에 더 중요합니다 너무 작은 숫자에 더 작은 숫자를 더한다

사라져가는 모든 것은 비유다

망할 것이다

한여름 껴안고 걸어가는 연인을 본다 정말 사랑하나봐 네가 말했고 나는 그들이 불행해 보인다는 말 대신 정말 덥겠다 이제 그만 더웠으면 좋겠어 여기까지 말하면 너는 웃지

그런 예측은 쉽다

다영 씨가 웃는다

역사는 뇌사상태에 빠진 몸과 닮았다

나무 컵 받침이 컵에 달라붙고 중력이 컵 받침을 떼어낸다

물이 끈적인다 컵의 겉면을 따라 물방울이 아래로 모이는 동안 사람과 사물은 조금씩 낡아간다

조용한 공간에 금이 생긴다

되돌릴 수 없다



이 경우에도 너무나 잘 들어맞음. 딱히 멋부리려는 거 없이 하고 싶은 말만 뚝뚝 떼어내서 간결하게 쓴 느낌이고

일상 속에서 균열이 생기는 지점에서 모티브를 얻어 썼다고 말한 인터뷰도 있음.



■ 당선작에 대해서

성다영 = 당선작 ‘너무 작은 숫자’는 상실에 관한 이야기예요. 일상에서 발생하는 상실이 정말 많아요. 뭘 하나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못하는 거니까. 아주 작은 것들이 삶을 바꾸고 간섭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 시를 쓰고 나서 ‘이렇게 몸에 힘을 빼고 쓰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항상 시를 쓰고 있는 자아를 어떻게 버릴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는데 그 시를 쓰면서 알게 된 것 같아요.







이처럼 매년 심사위원의 경향이 달라지고 흐름이 달라지지만

떨어졌을 때 그냥 포기하고 마는게 아니라

이렇게 경향을 살피고 전략적인 부분도 충족하면서 도전한다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떨어지더라도 내가 말이 안되게 떨어졌는지

의도는 어느 정도 들어맞았는데 다른 글 쓰기 스킬이 부족한 건지

내년에 다시 도전해볼 때도 심사위원이 같거나 비슷하다면 웬만하면 들어맞으니까!!



심심하기도 하고

아직 경향신문은 별 소식도 없고 하지만

내가 당선이 됐는지 안됐는지

본심에 올라갔는지 안올라갔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지만


그냥 이런 분석이나 하면서 당선작은 뭘까 궁금해하는 것도 재밌고

벌써 다음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 준비하는 게 속편한 거 같아

그러다 만약 나에게도 연락이 온다면 그건 진짜 좋은 천운이니까 감사하게 받아들일 생각도 있고


무튼 당선 전화가 없더라도 예심 기사를 보고 내 작품이 기사에서 말한 점과 비슷하거나 들어맞는다면

경향신문 심사위원들이 의도하는 바를 충족했구나 하고 만족하면 될거 같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