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분투했다는 둥, 외롭고 고독한 시간과의 힘겨운 사투였다는 둥 실컷 주절거려 놓고선

아랫줄에 "OOO 선생님(보통 잘나가고 유명한 시인) 감사드린다" 같은 거 없는,


스승이 없다는 분,

12번 떨어지신 분

그리고 최근에 쓴 시들도 좋은,


이분의 글을 읽으면 느껴지는게 많더라

그래선지,

'제 발가락은 발레선수처럼 굳은살이 박여 있으니까요.' 라는 마지막 말을 믿고 싶어지게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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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과 낙선 사이

박은영

당선작 「발코니의 시간」은 5년 전에 쓰고 묵혀두었던 시입니다. 열두 번 도전 끝에 신춘문예 당선을 했는데요. 그간 우여곡절도 많았고 혼자 울기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우체국을 다녀온 후, 그 다음날 원고가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일까지가 응모의 한 수순인데 2018년 신춘문예 영수증은 그냥 버렸습니다. 또 떨어질 거라는 생각에 휴대폰도 멀찍이 두고 나름 이별을 준비하던 중이었죠.

글을 쓰기 위해, 최소한의 노동을 했습니다. 최저임금을 받고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초등피아노강사, 시간제 보육 일을 하며 잠을 줄이고 시간을 쪼갰습니다. 하지만 2017년 12월은 막다른 골목이었습니다. 걸어갈 길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해가 거듭될수록 희망보다는 나에 대한 의심으로 손톱만 자라고 한 문장 끼적거리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죽도 밥도 되지 않는 일을 하는, 못난 나를 묵묵히 응원해주는 가족에게 가장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응모를 하게 되었고 정규직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당선연락을 받던 그날은 무척 허기가 져서 국거리용 소고기 몇 점을 구워먹고 책상 앞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요. 문화부기자님의 둥글둥글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내가 걸어온 길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첫 응모에서 거짓말처럼 본심에 오른 일, 중복투고를 한 어린 소녀에게 최종심에서 밀려 떨어진 일, 다관왕을 꿈꾸며 당선소감을 미리 써놓던 일……그 무수한 날들을 겨우겨우 걸어와 지금 저는 웃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꿈과 현실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마치,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꾸다가 엄마의 호통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늦은 아침 같습니다.

「발코니의 시간」은 필리핀 사가다 마을의 장례풍습과 발코니에서 화초를 기르는 가장의 모습을 동일선상에 놓고 시의 옷을 입힌 글입니다. 저는 인터넷 뉴스를 자주 살펴보는데, 절벽에 철심을 박고 관을 올려놓은 사진 한 장이 눈길을 오래 붙잡았습니다. 관 속의 하얀 유골이 내 눈엔 웃고 있는 듯 보이더라고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반대로 읽히기도 했고요.

어릴 적, 아버지는 엄한 분이셨습니다. 그림자도 무서웠어요. 그런데 지병으로 조기은퇴를 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니 그 어떠한 말로도 설명이 안 되는 감정이 일었고 한동안 여기가 어딘지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먹먹했습니다. 그 옛날의 단단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앙상한 겨울나무를 보는 듯했습니다. 둥지 하나 지키기 위해 바람과 사투를 벌인 나뭇가지, 축 쳐진 어깨가 공허해 보였습니다.


나와 아버지 사이에 놓인 건 통유리 창 하나였는데, 그 거리가 이세상과 저세상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그 뒷모습에서 나의 못난 얼굴이 비치는 겁니다.

저는 아픈 손가락입니다.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철부지였어요. 아버지가 내뱉는 한숨의 팔 할은, 혼자 아이를 키우는 나로부터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아버지가 제 시에 자주 등장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엔 풀어야할 숙제가 많은 것 같기도 하고요. 통유리를 사이에 둔 그날의 장면을 오래 품고 있다가 해산을 하듯 산고를 느끼며 종이에 옮긴 시가 「발코니의 시간」입니다.

저는 스승이 없습니다. 혼자 시를 쓰고 여기까지 무식하게 걸어왔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볼 배짱도 없고 악필이라 필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자문을 구하고 필사를 했더라면 더 빠른 걸음으로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는 수학공식처럼 정답이 없는 거라는 것만 되뇌며 열심히 넘어졌습니다. 무릎이 까지고 멍들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넘어질 때마다 누군가 뒤통수를 치는 것처럼 크고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응모를 멈추지 않았고 지금 역시도 투고의 연속입니다. 그 작업은 나의 이정표고 아직 걸어가고 있다는 표식이나 외침 같은 것입니다. 날고뛰는 시인들을 감히 따라잡을 수는 없겠지만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굽이굽이, 먼 길을 나비처럼 날아갈 거예요. 제 발가락은 발레선수처럼 굳은살이 박여 있으니까요.


-『시인시대』2019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