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온기를 머금고 만개한 꽃은 하염없이 바라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은은한 봄의 내음을 풍기며 옹기종이 모여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꽃들의 아름다운 자태만이 그 이유는 아니겠다.
언제 그랬냐는 듯, 봄이 지나면 꽃들은 색동옷을 벗어 고이 접어둔 채 조금씩은 다른 푸른 잎의 옷을 갖춰입고, 이내 헐벗은 채로 다시 올 봄을 고대하며 기나긴 가을과 겨울을 맞이한다. 하늘 아래 모든 존재들이 필연적으로 맞이하는 시와 종은 그 길이만 다를 뿐 절대적인 것이고, 이는 꽃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결말이 정해진 시시한 꽃의 로맨스에 내가 넋을 놓는 이유는,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그 불변하는 법칙 안에서 다른 매개체에 자신의 인생을 투영한 채 각자의 행복을 찾고 위안을 얻기 때문이고, 여기에 봄꽃의 참된 매력이 있다.
외로운 이는 봄꽃이 가져다 주는 포근함으로,
행복한 이는 그것의 전성기를 누리는 봄꽃의 화려함으로,
괴로운 이는 겨우내 추위를 견뎌 마침내 만개하는 봄꽃의 비상으로,
사랑하는 이는 봄꽃이 전해주는 은근한 부드러움으로,
각자의 삶을 대입하여 위로와 성취와 치유와 행복을 느낀다.
내가 살아온 삶과 내가 살아나갈 삶은 봄의 꽃이다.
괴롭고 슬픈 날, 행복하고 즐거운 날 또한 모두 꽃이다.
지는 날에는 다시 꽃 피울 날을, 필 날에는 앞으로 즐길 화려함으로 기대하는 꽃은 나의 삶이기에,
나는 뻔한 봄꽃을 즐기련다.
새벽 감성으로 끄적여봤습니다,,,
이내 헐벗은 채로 다시 올 봄을 고대하며 기나긴 가을과 겨울을 맞이한다 ---- 요게 좀 서두른 티
봄처녀가 아닌 봄창녀 아닌가요